모두가 바랐던 것(3)

빗줄기는 어느샌가 유리없는 창 안까지 들이칠만큼 거세졌고 날은 저녁빛깔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비명소리를 쫓아 복도를 달렸다. 소리가 들린 곳은 그리 멀지 않은 바깥. 수도원은 어떤 건축물이든 출입구가 하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별다른 고민없이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대로 달려 입구에 도착해 우리가 맞은 건 무지막지한 바람이었다.

분명 책에서는 분지는 높은 고지에 움푹 파인 곳이라 바람이 없다고 봤는데 왜 이러냐...
날아들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겨우 눈을 뜨자 마당앞에 쓰러져있는 야우라가 보였다.

"야우라?!"
"야우라 님!"

목소리가 전해진 것인지 어떻게된 것인지 우리가 가까이 가려고 해보기도 전에 야우라가 자리에서 꼼지락 거렸다.
어라, 괜찮은 건가.
가서 도와줘야하는 거 아닌가 싶었던 에반젤린과 나는 우뚝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 비바람 속에서 무얼 하시려고 했던 것인지 야우라는 일어나서 앉아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니는 머리를 훔쳐내었다. 그런 다음에는 아래에 깔려있던 뭔가 일으켜세웠다. 뭘 가지고 나와서 저러고 있나 했더니 사람이다.

그것도 어린애.
피츠?

어제 숲에서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그 아이.
피츠는 웬 얇은 밧줄을 잡고 바로 섰고 야우라는 아직 앉아서 땅바닥에 팔을 눌러 체중을 싣고 있었다.
일단은 괜찮은 건가.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
피츠는 팔을 여기저기 뻗고 흔들면서 설명을 이어나갔고 야우라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짧게 의견을 교환하더니 갑자기 결연한 표정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쪽이야 비맞으면서 뭔 달밤의 체조냐 싶지만 저쪽은 나름대로 긴장감이 느껴진다.

때가 온 걸까. 피츠가 먼저 달리기 시작한다. 그 애는 밧줄을 잡고 바람이 오는 방향의 반대 쪽으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뒤이어 야우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리며 일어나는 그 애의 손에 또 뭔가가 들려있다.
그건 넓적하게 펼쳐진 갈색 가죽으로 보였고 끄트머리에는 알록달록한 꼬랑지가 여러개 붙어있었다.

"레이크 님 저거..."

에반젤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지만 차마 그 정체를 말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황당무계하다.

연이다. 연. 그 있지 않은가하며 말 할 필요도 없는 그 연!

피츠를 따라 뛰던 야우라가 손을 놓자 연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훅 날아올랐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앞서 달리던 피츠의 몸이 뒤로 쏠릴 지경이다.
넘어질뻔한 피츠를 야우라가 붙잡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피츠는 이제 달리기는 그만두고 높이 솟은 연이 도망가버리지 못하도로고 밧줄을 잡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연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하기야 이 바람이면 안 뜨는 게 더 이상하겠다만은...

그 순간, 더 강한 바람이 훅 불어닥쳤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던 그 사이, 또 한 번 비명소리가 들렸다.
눈가를 닦아내고 다시 그 애들이 있던 곳을 보자 피츠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애가 갑자기 하늘을 나는 힘을 얻었을 리는 없고 연에 실려 발이 허공에 떠버린 거다.
화들짝 놀란 야우라가 재빨리 아직 날아가지 않은 밧줄을 잡았지만 바람이 연을 날리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따라 뛰고 있었다.

"야야야야!"

야우라보다도 더 놀란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소릴 내며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하여-

본당의 미사실, 원래라면 쓸 일 없을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야우라랑 피츠를 말렸다.
진짜 그건 두 가지 의미 모두 담아서 말리고 있었다.
쓰던 장작이 아직도 남아있던게 그나마 다행이다.

"굉장하지 않았어?"

아직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는 것인지 눈을 반짝이며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굉장해서 승천할 뻔 했잖아!"

괜히 안 맞아도 되었을 비를 맞은 게 억울한터라 나는 버럭 소리쳐버렸다. 그렇게 말해봐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인지 야우라는 옆에 있는 피츠에게 감상을 묻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땠어? 굉장했어?"
"엄청 멋있었어! 다 누나 덕분이야!"

"그래? 그래? 그 정도야? 아 아깝다. 나도 해봤어야 되는 건데."

물론 그 연, 피츠에게 손을 놓게 시키는 바람에 이젠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둘은 좋다고 흥분해있었다.

"레이크 너 때문이잖아. 거기서 연을 놓으라고 하면 어떡해에."

곧 죽을 경험 못해본 게 그리도 아쉬운지 야우라는 대뜸 나한테 짜증을 내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할 말 많았다.

"야, 너 지금 빨리 가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비슷한 기분일걸?"
"얘 말하는 것좀 봐? 그게 사람한테 할 소리냐!"

야우라가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아직 남아있는 물기를 나한테 털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과 목덜미에 튄다.
아이 저게 진짜...!
성질을 긁어대니 한 판 또 붙을까 했지만 그냥 그만둬버렸다.
다 젖은 꼴로 무슨 우스운 짓을 더 하겠다고.

"야우라 님, 노는 것도 좋지만 전 이번엔 너무 심했다고 생각해요."

에반젤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도 밧줄 잡으러 나간지라 흠뻑 젖은 모습 그대로였다. 겉에 입는 제의는 의자 위에 널어놓아 평소랑은 분위기가 달랐지만 그래도 내용물은 평소 그대로였다.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는 걸요. 거기에 피츠 형제님은 아직..."
"하지만 사제님!"

참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이의를 제기할 게 있는 야우라는 설교 사이를 비집고 소리쳤다.

"이런 고원에 이런 바람에 그렇게 큰 연이라니. 그건 무조건 해봐야하는 거라고. 아니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거 덕분에 피츠는 오늘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됐다니까? 잠깐이지만."

하긴 안카라 분지에서 폭풍우에 연을 날리다가 하늘을 날다니 어디가서 얘기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그런 얘기지 않은가.
그 정도면 정말 돈 주고도 못 겪을 사건이었다.

"...진짜 재밌었냐?"

나는 슬그머니 피츠에게 물었다.
그 애는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 정도였단 거냐...!

"레이크 님!"

그 장면을 놓치지않은 에반젤린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하, 근데 레샤는? 같이 간 거 아니었어?"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나오자마자 방으로 돌아갔는데? 몰랐어?"

대꾸는 야우라가 해주었다.

"아, 그래?"

물어보면서 생각난거지만 왠지 그랬을 거 같았다.
아저씨도 잠자러 간다고 했고 레샤는 혼자 틀어박혔다면 뭘 하는진 몰라도 한동안 잘 있을 것이다. 그 애는 그 분야에 관해서는 전문가였다.

"이제 할 게 없네..."

내가 중얼거렸다.

비는 그치기는 커녕 더 거세지기만 하고 언제까지 여기 있게 될지도 모를 상황. 좁고 어두운 수도원안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라니, 갑자기 기분이 착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왠지 뒤숭숭하기도 하고 뭔가 깨름칙하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이런 현상을 타파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가서 낮잠이나 잘까?"

조금은 갑작스럽게 선언해버린 나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애들은 또 다른 걸 찾아볼 요량인듯 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혼자 본당의 계단을 올라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를 보자마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마음 속에 가라앉아 있던 칙칙한 것들은 금새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니까.
나는 주섬주섬 몸을 이불 안으로 구겨 넣었다.

아 너무 좋아.







복도는 동굴과 같았다.
방은 감옥과 같았다.
벽은 둥지와 같았다.

하늘에서 빌려온 어둠, 빛은 땅으로 돌아가고.
원수의 향기만이 남은 곳.

거꾸로 선 사냥꾼은 눈을 잃었어.
향기를 지우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이상한 꿈을 꿨다.
좁고 어두운 구덩이 안에 혼자 빠져있는 그런 꿈.
나는 이걸 어떻게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게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건지 아님 구덩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건지, 거기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하고 싶어했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혼자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을 덮을정도로 커다란 연이 나타났다. 그 연에는 야우라가 타고 있었다. 그 애는 왠지 짜증나게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그냥 가버리려고 하길래 화가 난 나는 걔 뒤통수 한 대 치러 연에 달린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깼다.

...이게 뭐야.

코웃음인지 뭔지 모를 헛바람만 피식피식 나오는 그런 개꿈이었다. 도대체 뭐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몸을 일으켜 뻑뻑한 눈을 비볐다. 얼마나 잠들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날씨는 자기 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 가득 덮고 빗줄기는 줄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그것들의 소리가 너무 커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현듯 번쩍이는 섬광.

쿠르르... 쿠구궁....!

뒤이어 천둥소리가 울렸다.
간격이 짧고 소리가 크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근처에 내려치는구나. 설마 수도원에 떨어지지는 않겠지.

괜한 생각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돌로 만든 건물은 번개를 맞았다고 불타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배가 고프다.
그걸로 얼추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복도로 나왔다. 어둡고 조용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신경쓰였다.
시야가 깜깜한 건 아니지만 복도가 너무 어두워서 발광 마법으로 앞을 비추었다.
아래층은 비교적 밝았다. 햇빛과 비슷한, 따뜻한 색의 빛이 미사실을 비롯해 몇몇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예의 그 솔쥬얼이 여기에도 알게 모르게 박혀 있었던 걸 여태 못본 것 같다.

"누나가 꼭 한 번 저 돌에 손을 대보고 싶었거든? 네가 대신 만져보고 따뜻한지 말해줘!"

여태까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야우라와 피츠는 여전히 미사실에 있었다. 높은 벽에 박혀있는 솔쥬얼을 만져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거 대장이 손 대지 말라고 했는데 해도 괜찮을까?"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저 녀석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엄청나게 무책임한 소릴 하더니 기어코 피츠를 어께 위로 올려 목말을 태운다.
오늘 죽이 잘 맞는 상대를 만나서 말썽의 꽃을 화사히 피운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마라."

나는 미사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갑자기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리니 야우라는 움찔 놀라며 몸을 틀었고 그 덕에 위에 앉아있던 피츠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누나아!"

그대로 떨어져버리나 했는데 피츠의 다리를 잡은 야우라가 용케 그 무게를 버텼다.

"아 뭐야 레이크 너였어? 난 또 밥 말아먹은 놈인 줄 알았네."

약오른 표정으로 칭얼거리던 야우라는 도로 벽의 솔쥬얼에 집중했다.

"가자, 피츠. 실험 속행이다!"
"누나아아...!"

그 때까지도 어께 위에 무릎을 걸고 거꾸로 매달린 피츠가 죽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나는 얼른 달려가 피츠를 잡아 똑바로 바닥에 세워주었다.

"지금 몇 시야?"
"몰라. 여긴 시계가 없더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솔쥬얼엔 벌써 싫증이 난 건지 야우라는 평범하게 내 물음에 대꾸해주었다.

"아저씨랑 레샤는 봤어?"
"레샤는 한 번 봤는데, 스태로 씨는 모르겠네?"

그 사람들 징해도 정말 징하다.
어째 전성기의 나보다 틀어박힘성이 심한 것 같지 않은가.

"에반젤린은?"
"밥 말아먹은 놈한테 간다 그랬는데?"

"또?"
"왜? 질투나냐. 질투나?"

또 무슨 건수를 잡으셨는지 야우라가 실실 웃으며 어께동무를 해왔다.

"너한테 관심을 안 주니까 질투나?"
"아우, 좀 떨어져."

나는 야우라의 팔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그 애는 반대손으로 자기 손목을 잡고 버텼다.

"에헤. 화났어, 화났어?"

아니, 아 진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에반젤린은 계속 그렇게 살갑게 굴면 선도사가 져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던데."

내 생각엔 그럴 거 같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선 혼자 곰곰히 생각해보던 야우라는,

"피츠 넌 어떻게 생각해?"

이젤 선도사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대장은 절대 안 져, 누구한테도."

피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호하다고 해야할까, 확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고만. 그럼 우리가 찾으러 가야지."

야우라는 내 목에 팔을 감은 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히 내 목도 딸려 올라가는 지라 나도 일어났다. 피츠도 따라 일어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도원 곧곧을 돌아다녔다.
본당의 미사실이야 처음부터 보고 있었으니 더는 볼 필요가 없었고 그 다음은 2층의 방을 하나하나 전부 보았다. 혹시나 싶었지만 그곳에 에반젤린은 없었고 스태로 씨랑 레샤도 나가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층은... 정확히는 알 수없지만 얼핏 기도실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좀 더 가능성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락으로 통하는 문은 잠겨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피츠가 수도원의 길을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1층에선 다시 식당과 수사용 사무실, 준비실을 차례로 돌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수도원은 방과 방 사이가 멀었고 좁고 긴 통로가 많았다.
왜 그런고 하니 피츠의 말에 의하면 복도가 길수록 사색이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처는 대장이란다.
애가 참 별 걸 다 알아.

그리고 그 어느 복도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레샤를 조우했다.
조우라는 표현이 그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없었다.
수도원에서 정령술사를 조우했다!

"다, 다들... 어디 가는 겁니까...?"

레샤는 처음부터 음영 잔뜩 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반젤린 찾으러, 너는?"

내가 되묻자 레샤는 뭔가 이런저런 소릴내며 목소리를 더듬더니 야우라랑 나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나한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인가 하여 가까이 귀를 기울였더니 작게 속삭인다.

"화장실이요..."

어휴, 난 또 뭐라고.
하도 유난을 떨길레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별 거 아니었다.

"화장실? 화장실은 밖헤엑...!"

친절하게 설명해주려던 난 명치를 치고 들어오는 레샤의 주먹에 헛숨을 삼켰다.

"아앗...! 야우라는 그냥 말해버릴 거 같아서 레이크한테 말한거였는데!"
"어우...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너무 억울했다.
아무튼 우리는 레샤가 원하는 대로 다 함께 화장실로 갔다. 물론 레샤는 왜 다 따라오는 거냐며 질색을 했지만 우리는 따라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피츠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대장은 수도원 안에 있는 소사용 오두막을 자주 가니까 그 쪽도 한 번 들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굉장히 그럴듯한 얘기여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소사용 오두막은 수도원 뒤편에 있었다. 그곳은 본당을 방패삼아 다른 곳보다 바람이 훨씬 적게 불었다. 때문에 더 고요했고 괜히 더 삭막하게 느껴졌다.

피츠의 예상이 맞은 걸까. 소사용 오두막엔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는 냉큼 오두막으로 갔고 문에 노크부터 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작은 창문의 안 쪽을 들여다봤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불을 끈 걸 깜빡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안 쪽을 살피던 나는 바닥에 흐트러져 보이는 연보라빛과 흰색의 제의 자락을 발견했다.

"잠깐만! 문 열어봐!"

황급히 소리치자 야우라가 얼떨결에 문을 밀었다.
작은 나무문은 아무런 걸림거리 없이 쉽게 열려버렸고 레샤와 야우라가 동시에 헛숨을 들이키며 외쳤다.

"사제님...!"

피츠는 그저 어리벙벙할뿐, 야우라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나도 얼른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에반젤린은 바닥에 쓰려져 있었다.

왜?

처음으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왜 쓰러져 있지? 왜?
그러니까, 왜? 뭐지? 왜?
왜? 왜? 왜? 왜?

"레이끄...!"

레샤의 목소리였다.

"어, 왜?"
"사제님 그냥 기절한거래요."

"확실해, 숨소리가 들려."

야우라는 그렇게 말하며 레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에반젤린을 들쳐업었다.

"여기 말고 본당으로 옮기자. 여긴 너무 추운 거 같아."
"어, 어."

나는 얼른 비켜서서 오두막 밖을 나왔다.
조금 놀랐다. 조금 놀랐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옮긴 발자리에 뭔가 눌려 부러졌다.
그냥 나뭇가지, 그렇게 생각하고 본 막대의 끝에는 깃털이 붙어있었다. 집어들어 확인해보자 반대 쪽엔 촉이 달려있다.

뭐지...?

...일단은 에반젤린을 옮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0
이번 화 신고 2019-02-14 21:09 | 조회 : 127 목록
작가의 말
죄수번호53425854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