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다이!"
"..."
"한다이!! 저기요, 한다이씨?!"
머엉...
지금 가빈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 한다이!"
"어...응?"
"얘가 아주 혼이 빠졌네. 아직 솔로가 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나 봐?"
"아니, 뭐 그건 이제 덤덤하지..."
이별의 상처도
일주일이 지나니 무덤덤하졌다.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원래 강 산이란 존재는 다이의 인생에 없었다는 듯.
"내가 걔를 목숨걸고 좋아한 것도 아니고.."
"많이 좋아하긴 했다며"
"그건 그거고.."
"그럼 마감 때문에 그러신가!"
마감은 정우 덕분에 2일은 빨리 제출할 수 있었다.
"마감 끝나서 행복해 죽겠거든."
"근데 왜 그렇게 멍때리고있어. 진지한 표정으로"
"그거... 이제 와서 생각하니까 막막해서"
"뭐가."
"미채린 결혼식 때... 혼자 가?"
뭐 대충 둘러댄 말이었지만, 말하고 보니 진짜 걱정되긴 했다.
그 악녀의 결혼식에 혼자 갈 생각에 앞날이 막막했다.
걔가 어떻게 나올 지 뻔했기 때문에.
"아, 그거 때문이였어? 내일인데 포기해~"
"별 거 아니라는 듯으로 얘기하지 마. 난 심각하다고."
"하긴, 미채린이 널 유독 괴롭히긴 하더라."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원수였다.
모임 때마다 헐뜯기 욕하기.
다이를 괴롭히지 못 해 안달난 애였다.
"흐아... 어떡하냐."
"자긴 결혼하는데 너 혼자 있는 거 보면 꽤나 좋아할 것 같은데."
"아오, 어떡해에에"
"수고해.."
"나 미채린 결혼식 안 갈래, 안 가!!"
"안 가면 뒷담화 할 껄? ''''어머, 다이 남친있다는 거 거짓말이였나 봐. 있었으면 데리고 와서 자랑했겠지, 무리하게 남자친구 있다고 안 해도 없는 거 다 아는데~''''라는 식으로."
진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남을 애였다.
"...아, 야 너 진짜 미채린 같아서 재수없는데 한 대만 때려도 되냐?"
"날 왜 때려, 친절하게 예도 들어줬는데"
"필요없거든"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친한 남사친한테 부탁이라도 해봐."
그런 말을 해 봤자...
"나 남사친없는데..."
"대학에서 남사친도 못 만들었어?"
"남사친은 무슨. 여사친도 못 만들어서 혼자 다녔거든."
친구도 없이 혼자다닌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우울했다.
"에고, 불쌍한 것."
"...진짜 어떡하지. 내 근처에는 남자가 없는데."
"오빠 있잖아. 너희 오빠 너랑 1도 안 닮았던데."
"내가 오빠 데려갈 생각을 안했겠냐? 당연히 제일 먼저 했는데..."
"근데."
"미채린 걔가 우리 오빠 안단 말이야."
"엥. 어떻게 아냐?"
바로 그 분이 다이가 미채린을 만나게 된 계기이자,
미채린이 다이를 죽도록 싫어하게 된 계기였다.
"미채린이 우리 오빠 좋아했어서 나한테 친한 척하다가 오빠한테 차이고 나 싫어하게 된 거라고... 근데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냐?"
"아 맞다."
"암튼 그래서 오빤 포기했고... 너 부탁할 사람 어디 없냐?"
"없는데? 그러게 강산이랑 화해했으면 좋잖아."
얘는 이럴때보면 참 마음에 안들었다.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지.
왜 자꾸 과거를 들추는지.
"싸우고 싶냐? 됐고. 너 아는 괜찮은 남자 없냐?"
"괜찮은 사람들이면... 울 남친 친구들?"
가빈이... 남친친구들이면...
"...사양하고싶다."
"왜~"
"너 남친은 그렇다치고... 좀 사양하고 싶다."
"너 문신 때문에 그러지."
"으응..."
등, 팔, 손목 등등...
온 몸에 문신에 그려진 사람은 선입관이라고 해도...
좀 무서웠다.
"에휴, 무서운 사람 아니래도."
"알아, 아는데..."
"그럼 니가 알아서 찾아봐. 아, 너 남자후배있잖아."
"정우?"
"그래, 걔 데리고 가 반반하니 잘생겼더만."
"아, 그러네! 부탁해 봐야겠다."
진작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정우는 꽤 잘생기기도 했고,
대학도 좋은 데 나왔다고 했다.
직업은 뭐... 똑같고.
객관적으로 꽤 좋은 남친감 이였다.
"좋아. 물어봐야겠다."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정우야, 이번주 일요일에 바빠?]
"바쁘다 그러면 안되는데, 망하는데..."
"시간 있길 빌어야지."
살 수 있는 유일한 끈은 정우 뿐이였다.
5분 쯤 기다렸을까.
[시간 있어요. 왜요?]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있대!"
"올~ 살았네."
[다행이다. 정우야 그럼 그때 시간 좀 남겨둘래?]
[...왜요? 갑자기, 수상하게 파일 날렸어요?]
하필 파일 날렸다는 재수없는 소릴...
가 아니라
[아니, 부탁이 있어서.]
[뭔데요]
[그건 비밀...! 그냥 정장으로 멋지게 차려입고 나오면 되는 일이야!]
[알... 아니 정장 없는데요.]
이게 지금 장난하ㄴ....
가 아니라
널 데려가는데 그깟 양복하나 못 빌려주겠니.
"남자새끼가 정장하나 없데?"
"그럴 수도 있지! 왜 우리 애 기를 죽여!"
[내가, 하나 빌려줄게. 그니까 일요일에 시간 비워 놔!! 꼭이다!]
[작가님꺼 주시려고요? 저 남잔데요...]
"설마 여자껄 빌려줄까 봐.."
"풉. 얘 너무 귀엽다."
"넘보지 마. 내 후배는 내가 지킨다."
"됬거든. 귀여운 애는 나한테 남자도 아니야."
"정장은 빌려줘야겠다."
"너 남자 정장도 있어?"
"아니..."
[..남자꺼 빌려줄거야.]
[알았어요. 일요일 시간 비워둘게요.]
[고마워, 그럼 일요일 11시에 우리집 앞으로 와!]
[네.]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게되었다.
정장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정장은 어떡하려고. 사게?"
"어쩔 수 없지..."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하고 벌떡 일어섰다.
"훔친다."
"뭐? 양복점에서 훔치게? 도둑이야?"
"아니... 뭐래 얘. 오빠꺼 빌려줄거야 우리 오빠 오피스텔 가서 가져오려고."
"걸리면 너 바로 죽는 거 아냐?"
안 들키면 그만이었다.
들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집 청소도 본인이 안하는 다우가 알리가 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가자."
"...뭐라고...? 나도 같이?"
"응."
"...그거 같이 죽자는 소리로 들리는데."
"나 혼자 죽으면 너 쓸쓸할까 봐 그러지."
같이 죽자는 소리에
표정을 굳힌 가빈이가 진지한 목소리 말했다.
"너 죽으면 내가 장례는 치뤄줘야 되니까 너만 죽으렴."
"나쁜 뇬..."
[지이이잉]
"어머 때마침 남친이 부르네, 솔로는 혼자 죽으라는 신의 계시다. 바이바이~ 낼 봐~ 예쁘게 손 꼭잡고 오고♥"
"...! 야!"
죽음 앞에서 의리라곤 눈곱 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흐어... 진짜 죽음을 각오해야겠군."
비장하게 가방을 매고 카페를 나섰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도착한 이곳.
다우의 오피스텔.
"후우.. 딱 봐도 비싼 오피스텔에서 사네."
멋들어진 오피스텔 4층
그곳이 다우의 집이였다.
"비밀번호는.. 뭐지."
일단 되는대로 찍어보기로 했다.
다우생일, 19820223
[삐이-]
은, 아니였다.
엄마생일도 [삐이-] , 아빠생일도 [삐이-]
오빠 전여자친구 생일도 [삐이-]
오빠 전화번호도 아니였다. [삐이-]
"아, 뭐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마하며 찍어본 숫자.
"설마, 내 생일?"
[삐이-]
는 역시 아니였다.
"에이 씨... 은근 기분 나쁘네. 생각나는 건 이제 이게 끝인데"
그리고 이건 진짜 아니겠지
하면서 찍은 마지막 숫자.
"오빠가 이렇게 단순하게 할 리가 없는데."
12345678
[삐리릭]
"헐, 12345678 이라고...?"
하긴
다우는 어렸을 때 부터 비밀번호는 전부
1234 아니면.
12345678 이였다.
"여간 중요한 서류 아니면 이렇게 해두니 원."
그래도!
적어도!
"집은 좀 어렵게 해둬야지!"
덕분에 집에 들어오긴 했다만,
왠지 괘씸했다.
"내 집에는 비밀번호 겁나 어렵게 해뒀으면서."
다이도 헷갈리는 자기 집 번호를 설정해놓은 다우였다.
"...정장이나 가져가자."
옷장을 여니
색깔별, 브랜드별로 정리된 가지각색의 정장이 넘쳐났다.
"정장만 샀나... 정장밖에 없어!"
궁시렁대면서도
덕분에 나중에 들킬 걱정은 하지 않고 마음껏 3벌이나 고르고 가져갈 수 있었다.
양심에는 아주 많이 찔렸지만...
나중에 책하나 나오면 시계나 하나 사주기로 했다.
"오빠 미안~"
그 상태로 뛰어
버스에 골인.
"휴, 살았다."
집에 돌아와선 셀프 피부관리를 시작했다.
"팩부터 하고... 다크서클 패치가 어디있지?"
내일의 완벽한 복수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