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어리석고 지혜로운

“뭐야-”

내가 대체 무슨 계약을... 신을 파괴할 계약을 했다. 내 입으로, 그럴것이라 말했다. 말도 안돼! 그럴 리가..

패닉에 빠져 덜덜 떨고 있는 레이크의 모습에 에렌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의 양 어깨를 꽉 붙잡았다.

“정신차려. 네가 무슨 계약을 했는지 알아. 네 내면이 신을 강하게 부정한다는 사실 역시 알게되었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데도 괜찮아. 이해할수 있어.”

속삭이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에렌의 두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레이크의 등에 닿았다. 붉은 빛이 반짝 일더니 사라졌다.

“잠 재웠다..후..”

고개를 약간 든 에렌이 허공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제 슬슬 나와도 될 것 같아, 데이. 도와줘서 고마워.”

허공에서 나타난 흐릿한 형체가 선명해지자 확실히 구분이 갔다. 데이의 표정은 살짝 구겨져있었다. 그의 표정을 눈치챈 에렌이 이유를 깨닫고 웃기 시작했다.

“데이, 너 설마 레이크가 내 품에 안겨있다고 질투하는 거야? 푸흣..!”

“이익...”

할말을 잃었는지 데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에렌이 쿡쿡 대면서 말투를 길게 늘였다.

“아아~ 데이~ 화 풀어~”

데이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땅바닥을 응시했다. 제법 귀여워서 일까 에렌은 거의 땅을 치며 웃었다.

“크흠, 아무리 신이라도 여기서 연애질은 그만 두죠. 곧 리크도 시간을 멈춘 것을 알게 될겁니다.”

강의실 문을 세게 열어젖히고 들어온 레온의 눈동자가 에렌의 품에 잠든 레이크에게로 향했다. 순간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레이크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요”

차가운 눈동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렌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레이크를 바닥에 가지런히 눞혔다.

“별 짓 않했어. 기억을 조금 들여다 봤을 뿐-”

“그게 별짓인데.”

레온이 레이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확실히 잠든게 맞았다. 괜한 일로 한숨을 돌린 레온이 고개를 들어 에렌과 데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두분, 여기 계셔도 되나요?”

에렌과 데이가 서로를 마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리안한테 이를 거라며 장난스런 목소리로 레온이 말하자 두사람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리안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외출금지 당했다구..”

에렌이 양 볼에 바람을 꾹 불어넣으며 말했다. 데이가 키득거리며 에렌의 볼을 찔렀다.

“흐음.. 그럼 빨리 가시는게 좋을 텐데에~”

레온이 말하자 에렌이 데이의 손목 카라를 슬쩍 잡아당겼다. 데이가 고개를 돌려 레온을 보고 피식 웃더니 에렌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곧,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수업시간 쯤에는 다행히도 레이크가 깨어난 덕에 무난하게 시작할수 있었다. 문제는 그 무난이 시작할 때만 이였다는 것이다.

첫교시 수업 내내 레이크는 패닉 상태였다. 교수는 매우 당황했다. 얼굴 안색이 굉장히 창백했기에 누가 보면 어디 아픈 아이 같았다.

결국 3교시를 맡은 힐턴 교수가 입을 열었다.

“레이크 학생, 어디 아픈 겁니까? 보건실로 가보는게 어떻겠어요.”

레온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냥 봐도 그의 상태는 심각, 그 자체였다.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치료가 우선이였다.

“마법사들은 믿을 수가 없어.”

낮게 레온이 중얼거렸다. 교수의 눈동자가 놀라며 레온에게 옮겨갔다. 마법사를 무시하는 발언이였기에, 마탑에서 처벌이 내려올 계기로 충분했다.

“그게 무슨..!”

“그 조그만 입 좀 X쳐”

레온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학생들이 레온의 뒤로 획획 쓰러졌다. 레이크의 상태로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다.

“라이트리스 힐턴 교수, 무례는 용서해줘. 나는 신좌의 주인의 사자, 레오나르 카레벨이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아량으로 베풀기를.”

레온이 전혀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말을 내뱉고는 레이크를 업어올렸다. 힐턴교수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대답”

“알겠습니다.. 신의 사자.”

레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차원의 문을 만들었다. 그때, 강의실로 교장, 리크가 뛰어들어왔다. 숨을 마구 헐떡이는 걸 보면 마법을 쓸 생각도 없이 뛰쳐나온 모양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아, 레온?”

“리크, 중요한 일이야. 수업 중이지만 이것도 감안해 줘.”

리크가 뒷목을 잡으며 신음을 뱉더니 레이크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눈을 크게 치켜 떴다.

“뭡니까, 레이크. 잠식인가요?!”

“잠식..?”

레온이 되물었다. 리크가 답했다.

“리안 신의 사자가 잠식에 대해 모른다니 조금 실망입니다. 잠식은 다른 마법사가 타인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능력인데, 대대로 반신만 가능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레이크는 신의 아이인 상태니까, 역시 반신 상태군. 누가 노린 거지..”

레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리크가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휙 저었다.

“신에게 잠식 당했어요. 어떤 신이지는 모르지만 발칙하군요. 이정도 힘은 신계에서도 고치기 힘듭니다. 어쩌면.. 이번에도 계승은 실패가 될지도요.”

레온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신계로 간다. 딱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차원의 문 사이로 레온과 레이크가 사라졌다. 리크는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멀뚱이 서있는 힐턴 교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웅-)

교수가 쓰러져 내렸다. 죽인건 아니다. 기억을 지운 것 뿐. 리크는 한숨을 내쉬며 교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식에, 알타르에, 예언의 눈에.. 조만간 일이 한번 터지겠는걸...”

*

5
이번 화 신고 2019-05-24 00:54 | 조회 : 1,367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무단휴재 죄송합니다..!!! 반성할게요..ㅠㅠ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