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시선이 힐끔힐끔 가는 곳
그곳에는 상하와 그의 엄마가 있다.
상하는 자신의 엄마와 길거리를 걷고 있다.
괴물을 퇴치한 두 번을 제외하고 그가 사적인 일로 외출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차로 가지 왜 걸어서 가는 거예요.”
“너 요즘 집에만 있잖아. 좀 햇빛도 쐬면서 걷고 그래야지. 너 그러다가 몸 건강 해친다?”
“아니 미세먼지 때문에 더 안 좋아질 것 같은데…”
“조용히 하고 따라와!”
“네.”
모자가 향한 곳은 대형 서점이었다.
상하는 수없이 많은 정렬된 책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상하의 엄마인 김하영은 소설가이자 평론가였고 엄청난 책 마니아다.
상하 또한 그녀의 끼를 조금 물려받았고, 그녀 못지않은 독서광이었다.
그래서 둘은 종종 서점에 가서 쇼핑을 즐겼다.
하영은 책 한권을 꺼내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번 꺼내들면 웬만해서는 놓지 않는 그녀였기에,
상하는 일단 서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상하는 마법을 쓴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가 능력을 사용한 곳은 다름 아닌 그의 팔이었다.
이때까지 상하는 마구 움직이는 팔 때문에 몇 명을 치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상하는 미안함으로 얼룩졌고,
친 대상이 여성이었으면 상하는 무서웠다.
자신이 한 짓이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성추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상하는 누군가를 칠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보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지금은 자신의 마법으로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경직된 팔들을 고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풀릴 것만 같았고
팔에 멋대로 힘이 들어가서 팔이 좀 아팠다.
상하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멀쩡하게 보일 수 있단 사실에 충분히 만족했다.
상하는 시집 코너로 갔다.
사다리에 올라가 책을 정리하는 종업원이 있어서 상하는 더욱 조심히 들어갔다.
상하는 들어가서는 한숨을 내쉬고 잠시 마법을 풀었다.
“휴~”
상하는 소설 쪽보단 시가 더 좋았다.
짧은 글 안에 담긴 세계를 파악하고 그걸 음미하는 맛이 있었고,
염력이 없었을 때 상하는 발로 책을 넘겨봐야 했기에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시집을 즐겨봤는데 그러다보니 시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젠 책은 염력으로 얼마든 편하게 볼 수 있으니
상하는 오늘은 한번 소설 시리즈물을 사볼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일단 컬렉션을 장식하기 위해 시집 한권은 사고 싶었다.
“음… 뭐 사지…”
상하는 시집 진열대를 둘려보다가
“이거 좀 끌린다.”
시집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은 제목은 ‘이타적 틈’이었다.
상하는 책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상하 아니야? 안녕 상하야,”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하는 놀라서 옆을 봤다.
그곳에는 상하의 고등학교 친구인 양슬하가 있었다.
슬하는 상하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었다.
검은 생머리에 빨간 핀을 살짝 찔러 넣은 그녀는 정석적인 예쁘장하고
착한 모범생의 이미지였다. (실제로도 공부는 상위권)
상하와는 같은 반인 것 외에는 전혀 접점이 없는 그녀였지만
상하를 보면 줄곧 인사를 해줬고 상하 또한 인사를 좋게 잘 받아줬다.
그건 반이 달랐던 올해에도 변함없었다.
“어?! 안녕.”
“어떻게 여기서 보네? 방학은 잘 보내고 있어?”
“그러게, 나는 뭐 그냥 지내지. 너는?”
“나도 뭐 그럭저럭 보내고 있지, 근데 지금 시집사려고 하는 거야?”
“응.”
“나도 요즘 갑자기 시가 좋아져서 한 권 사려고 하는데, 한권 추천해줄 수 있을까?”
“나도 시집 잘 모르는데…”
“에이 일 학년 때 학교에서 종종 시집 읽었잖아”
“알았어, 뭐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 있어?”
“나 ○○ 읽어봤는데 좋더라!”
“그건 시가 아니라 글귀가 아닐까 싶은데…”
“그건 시가 아닌 거야?”
“나는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아 그래? 그럼 네가 좋게 읽었던 시집 중에 추천해줘!”
“그럼 검은 엉덩이의 자연인 읽어봐.”
“어디 있어?”
슬하가 상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상하는 슬하에게 닿을까봐 두려워 허겁지겁 옆으로 빠지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툭
“어! 어!”
상하가 뒤로 빠지면서 종업원이 올라가 있던 사다리를 모르고 친 것이었다.
그 직후 사다리는 흔들렸고. 종업원과 함께 넘어지려 했다.
위급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냥 넘어진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잠시 후
상하도, 종업원도 놀랐다.
특히 슬하는 더 그랬다.
종업원이 바닥에 닿기 바로 직전에 잠시 1초가량 공중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상하가 무심코 마법을 써버린 것이었다.
상하는 아차! 싶었지만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고 애쓴 채 종업원에게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신가요?!”
“네… 네 괜찮아요.…”
“진짜 죄송합니다.”
종업원은 쓰러진 사다리를 주우려갔고
상하는 일단 종업원이 다치지 않았단 사실에 안도하며 뒤를 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슬하가 있었다.
상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일어난 이상 현상을 모르는 척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먼저 당황한 척하여 시치미를 뗄 것인가.
“상하야 봤어?”
“뭐? 어떤 거?”
“방금 저분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잠시 멈춘 것 같았는데.”
“에이, 말도 안 돼 하하하하”
“저분도 너무 멀쩡해 보이잖아.”
“그건 진짜 다행이네… 슬하야 근데 지금 몇 시야?”
“응? 지금 2시 반!”
“아! 2시 반에 엄마랑 만나기로 했는데! 나 먼저 가볼게 안녕!”
상하는 다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개망한 상하였다.
슬하는 그런 상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상하는 엄마가 있던 곳으로 갔다.
하지만 하영은 그곳에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엄마는”
상하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런데 얼마안가
-위이이이잉~
경고음 같은 소리가 서점에 울려 펴졌다.
상하는 또 괴물이 나타난 게 아닐까 라는 불길한 생각을 했다.
-지금 건물 안에 흉기를 든 괴한이 침입했습니다.
서둘러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지금 건물 안으로 흉기를 든 괴한이…
“휴… 괴물이 나타난 게 아닌 건가, 다행…”
…
“아니 뭐! 괴한!? 엄마! 엄마!”
서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니고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하는 돌아다니다가 어느 행인이 치고 가는 바람에 넘어졌다.
“아야…”
그런데 주저앉은 상하의 팔을 누군가 잡았다.
“상하야 괜찮아?!”
상하가 옆을 돌아보니 슬하가 있었다.
슬하는 상하의 팔을 잡고 상하가 일어나는 걸 도와줬다.
“고마워.”
“아니야. 근데 이제 어쩌지? 너희 엄마는 어디 가셨어?”
“모르겠어. 갑자기 사라지셨어. 걱정 되는데”
“전화는 해봤어?”
“아니 내가 지금 핸드폰이 없어서…”
“그럼 내가 해줄게 어머니 번호 불려봐.”
-꺄악!!
상하가 번호를 부르려던 때였다.
어디선가 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상하는 깜짝 놀라며 비명이 들린 쪽으로 갔다.
슬하도 얼른 상하를 따라갔다.
비명이 시작된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상하는 불안한 마음에 인파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사람들 시선이 닿는 곳을 봤을 때 상하는 잠시 정신이 띵해졌다.
경찰들이 총을 들고 있었고
총구가 향한 곳에는 괴한이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엄마!!”
상하가 소리쳤다.
괴한이 사로잡은 인질은 바로 상하의 엄마인 하영이었던 것이었다.
“상하야!!
“조용히 해!”
슬하가 인파를 뚫고 상하의 옆으로 왔을 때
괴한이 칼을 하영의 목 쪽으로 칼날을 들이밀자 그녀의 목에서 약간 피가 났다.
하영의 목에서 피가 흐르는 순간 상하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상하는 침착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염력으로 괴한의 두 팔을 뒤로 꺾었다.
칼이 툭 떨어지고 괴한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아아아!!!”
하영은 그 틈에 빠르게 빠져나왔다.
상하는 괴한의 팔을 꺾은 것에 만족했어야 했지만
다혈질이었던 탓에 그만 괴한을 벽 쪽으로 내던졌다.
벽에는 금이 갔고, 괴한은 그대로 벽에 튕겨 앞으로 꼬꾸라졌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영도 잠시 멍하게 있다가 상하에게 달려갔고
경찰들도 뒤늦게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상하야!”
“엄마!”
모자가 격하게 껴안았다.
“괜찮아요?”
“응.”
하지만 감동의 재회는 잠시
상하는 옆에 있던 슬하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전까지 무서운 얼굴을 한 상하를 지켜보고 있던 슬하였다.
상하는 또 아차! 싶었다.
슬하는 놀란 듯 보였지만 별말 없이 상하의 엄마인 하영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아요. 근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상하의 엄마인 하영은 상하가 학교를 다닐 때 그의 등하교나 학교애서 소풍 같은 걸 갔을 때 줄곧 도와주었는데, 사교성이 좋았던 하영은 상하의 동기생들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상하는 그런 하영이 약간 부끄러워 몇 번 그녀를 말렸지만 결코 고쳐지지 않았다.
하영은 분명 슬하와도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하랑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양슬하 라고 해요.”
슬하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상하 친구구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
“네! 근데 정말 괜찮으세요? 피가 나는데…”
“약간 베었을 뿐이야.”
“휴…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게 그나저나 저 사람은 뭐고 왜 자기 혼자 저렇게 된 건지… 혼란스럽네.”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슬하는 상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집에 얼른 가서 좀 쉬어요.
상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자.”
하영이 옷매무세를 정리하던 때였다.
경찰관 한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잠시 시간 있으시면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되겠습니다.”
상하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뛰었다.
“가셔서 잠시 진술서만 써주시면 됩니다.”
“아 진술서요? 네, 알겠습니다.”
상하는 안도했다.
“나는 어떻게 해요?”
“잠시니까 같이 갈래?”
“어…”
불안감에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상하였다.
“아주머니 집이 어디세요?”
“우리? 드센 아파트에 살아. 왜?”
“저도 드센 아파트 사는데 제가 상하 집 가는 거 도와줘도 될까요?”
“어??”
그 말을 들은 상하는 당황해 했다.
“아니야. 부탁하기 미안한 걸.”
“상하랑 대화할 것도 있고 해서 제가 집 가는 거 도와주고 싶어요!”
“아니야! 괜찮아! 엄마랑 갈게!”
“상하야 우리 이야기할 게 있잖아? 다른 사람한테는 말 못한단 말이야. 그치?”
상하는 다 끝났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하가 그렇게 입이 가벼운 아이는 아닐 거라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결국 상하는 슬하와 함께 가겠다고 하고 서점 밖을 나섰다.
****************
둘이 서점을 나서고 얼마동안 슬하는 자신의 핸드폰만 만지작댔다.
상하는 그런 슬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걸어갔다.
잠시 후 슬하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상하에게 보여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너지?”
핸드폰 화면에는 빨간 로브를 입고 가면을 쓴 상하가 소 형태의 마물인 타우린에게 무치별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상하는 역시나 들켰나 싶었지만 일단 한 번 더 숨겨보려다가
문득 리샤를 떠올렸다.
“(어?! 그래! 리샤님이라면 기억을 조작하는 마법도 쓰실 수 있을 거야! 일단은 슬하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리샤님한테 부탁해보자!)”
“휴, 응. 그거 나 맞아.”
“뭐!?”
“왜 그렇게 놀라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야 그럴 것 같았지만 대답을 직접 들었으니 놀라지!”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아줘 부탁이야.(어차피 곧 잊을 테지만)”
“알았어, 대신 내 질문에 답해줘!”
“그래 해봐.”
“너는 정체가 뭐야?”
“평범함 따위 털끝만도 남지 않은 사람.”
상하는 꿈속에 나타난 제르 이야기를 시작으로 슬하의 궁금증을 해소해갔다.
상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상하의 집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슬하의 눈은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해져있었다.
“와! 멋지다!”
슬하는 영웅을 동경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멋지긴… 아무튼 이건 비밀이다?”
상하는 쑥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야기를 다 털어놓자 왠지 마음이 편해진 걸 느꼈다.
“응 당연하지! 근데 상하야!”
“응?”
“나 싸인 해줘!”
슬하는 가방에서 상하가 추천해준 시집과 펜을 꺼냈다.
“뭐?”
“나 진짜 팬이야!”
“에이 무슨 싸인이야”
“해줘! 안 해주면…!”
“아 알았어!”
상하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염력으로 슬하가 가지고 있던 시집과 펜을 들어올렸다.
“와! 짱 신기해!”
“뭐라고 써줘…?”
“슬하의 친구 좀비 히어로…앗! 좀비라는 말 싫어할 수도 있겠다, 미안”
상하는 공중에 뜬 시집을 한 장 넘기고 펜으로 휘갈긴 다음 슬하에게 넘겨줬다.
“별로 신경 안 써.”
슬하의 시집에는
슬하의 친구인 좀비 히어로 란 글자가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슬하는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니야! 나야 말로 고마워! 그럼 잘 들어가!”
“너도 잘 들어가.”
슬하는 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섰다.
“상하야! 정말~ 정말~ 누구한테도 말 안 할게!”
“그래주라~!”
“그리고 나중에 연락할게! 안녕!”
“그래~”
…
…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