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삶

[공성전에서 봅시다!]

대화를 나누던 워치콘의 기사가 말한다.

[공성전에서 봅시다.]

나 또한 그에게 대답해 줬다.
우리는 무사히 중립지역으로 탈출하여 콘키스타 길드의 본진으로 되돌아왔다.
리스폰지점에서 아이템을 잃어버린 기사에게 아이템을 떨궈주자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아이템을 받아간다.

[가이아스님이 돌아오셨다!]

좀 전에 있었던 작은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콘키스타 길드 전체에 퍼져나갔다.

[혼자서 12명을 상대했어!]

[오히려 워치콘 길드놈들이 가달라고 사정을 했다니까!]

내 무용담들이 하나씩 과장되어 퍼지더니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높아졌다.
이제 콘키스타 길드는 워치콘 길드를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가이아스가 되돌아온 만큼 다시 예전처럼 [리버스] 전체에 명성을 휘날리는 날이 온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그들의 환호성에 응대하며 조용히 로그아웃을 했다.

***

나는 다시 내 아이디로 [리버스]에 접속했다.
한가지 게임은 일이었고 다른 한가지 게임은 삶을 배우는 학원과 같았다.
그저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던 때와는 입장이 바뀌었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절실하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나는 옆자리 올백이 도와주는 바람에 5억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

이대로라면 난 평생 이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차트를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차트를 보고 주식을 투자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다.
우주질서의 비밀을 밝혔던 천재적인 뉴튼 마저도 주식시장에선 커다란 손해를 보고 말았다.
예측이 불가능한 변동성, 그래서 주식시장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수많은 주식관련 프로그램에서 그래프차트를 보면서 설명하는 사람들, 그들의 설명과는 달리 그들조차도 판판이 깨져나가는게 현실이다.

그래프 차트를 보고 투자를 한다는 것은 멍청한 바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프 차트를 분석했다.
내가 찾는 것은 가격이 오를 종목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주식투자는 천재지변, 국가부도, 분쟁과 같은 국제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철저히 멘탈게임이었다. 수많은 인공지능들이 주식시장을 분석하지만 투자를 결정하고 안하고는 펀드매니저 또는 개인 투자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찾으려는 것은 바로 ‘작전주가 탐내는 종목’이었다.
가격이 하루사이에 급등했다가 다시 원상회복되는 그러한 종목들 수십억 수백억을 들고서 한 종목의 주가를 마음대로 조절하여 단타성 수익을 노리고 뛰어드는 개미들의 피같은 돈을 갈취하는 그들, 내 옆에 앉은 올백은 그 작전세력에 뛰어들어 짭잘한 수익을 얻고 있었다.

분석할 필요도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주식전문 저널과 손을 잡은 그들은 모두가 연합해 시나리오를 짜서 개미들이 걸려들기 좋은 함정을 파놓는 것이다. 그리고 개미들이 그 함정에 걸려들면 단물만 빨아먹고 모두 도망가버린다. 그들이 함정을 만들었지만 투자는 순전히 개미들 자신이 하는 것이다.

난 그들의 투자 패턴을 연구했다. 작전주가 손을 댔던 종목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동일한 패턴을 연구했다.
어떤 종목이 갑자기 급락을 하고 일주일동안 잠잠하다가 새로운 소식이 연이어 발표되고 당장 한 열흘은 상종가를 칠 것처럼 들썩인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급락한 종목’이 바로 내가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HTS를 찾아다닌 끝에 세개의 종목을 찾을 수 있었다.

‘환0전자’, ‘유0건설’, ‘J0유통’

세개의 종목이 근 일주일 새에 30% 가까이 주가가 빠져나갔다.
작전주가 손대기 좋아하는 종목들은 대부분 주가가 5000원에서 20000원 사이의 종목들이다.

너무 값싼 주식은 위험한 주라서 개미가 뛰어들기에 불안할 수 있고 너무 가격이 센 주식은 가격변동성이 크지 않다. 만원 전후의 가격이면 변동성도 크면서도 불안하지도 않다. 작전주들이 노리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문제는 그중에 어느 것이 제일 먼저인가였다.

“다음 번에 혹시 ‘환0전자’아니야?”

은근슬쩍 옆자리의 올백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소식이 바로 전날이나 아침에 오거든···”

올백은 자신은 정말 모른다는 듯이 착해 보이는 얼굴로 대답한다.
하지만 그게 뻥인건 나도 알고 지놈도 안다. 작전이 시작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통지가 될 것이다. 그래야 가격을 떨어뜨릴 테니까···

내가 올백에게 질문을 하며 노린 것은 녀석의 표정 변화였다. 만약 다음번이 ‘환0전자’라면 녀석은 아주 작은 낌새라도 놀라던지, 얼버무리던지 또는 과장된 행동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철면피라고 해도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은 불가능 한 것이다.

나는 ‘유0건설’에 주목했다. 조만간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대한 정부발표가 있을 예정인데 ‘유0건설’의 주가가 터무니 없이 낮았다. 한달동안 14000원대를 웃돌던 주가가 7500원까지 떨어졌다.

둘중에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고 난 7500원짜리 ‘유0건설’을 선택했다.
게임상 시간이 11시였을 때 7450원에 100만주를 사들였다. 그게 실수였다.
누군가 한 꺼번에 100만주를 산다면 모든 관계자들이 주목한다.

그래봐야 주가 총액의 0.3%도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그렇게 한꺼번에 사들이는 경우는 없었다.
장이 마감되도록 주가 변동은 없었고. 그대로 장이 끝나버렸다.

***

나는 집에 오자마자 HTS를 핸드폰에 깔았다.
그리고 내가 [리버스]에서 본것과 비슷한 성격의 종목이 있는지 찾아봤다.
오랫동안 가격변동이 별로 없었던, 최근에 특별한 이유없이 가격이 떨어진 종목들,

가격이 5000원에서 2만원 사이의 종목들중 뉴스를 확인하고 외국인 투자여부와 게시판까지 확인해야 하는 일이어서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두시간 가까이 꼼꼼이 뒤져나가자 두개의 종목을 찾을 수 있었다.

‘이0소프트’, ‘반0제약’

‘이0소프트’는 게임회사였고 ‘반0제약’은 건강보조식품 전문회사다.
게임회사나 제약회사 모두 변수가 있는 곳이었다. 게임회사는 만들고 있는 게임의 흥망성쇄에 따라 제약회사는 신약이나 건강식품의 선호도에 따라 변수가 있다.

그것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엔젤리스 PC방 사장에게서 받은 355만원은 지금의 내게 매우 소중한 돈이었다. 이걸 엄마에게 주면 엄마는 정말 중요한 곳에 쓰리라.
그런데 [리버스]게임을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력했다. 혹 355만원을 모두 날려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0소프트’의 그래프차트를 보다가 근 2주 동안 12000원대에서 8500원대로 순차적으로 내려간 것이 확인되었다. 이 종목이다. 게시판을 살펴보면 만들고 있는 게임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었는데 200억짜리 엔진을 사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그 결과가 신통치 않은 듯한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와 있었다.

실제 게임이 훌륭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난 돈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355만원에서 비상금 30만원을 뺀 325만원이면 8500원짜리 ‘이0소프트’주식을 380주를 살 수 있다. 한 주당 2500원씩만 이익을 얻게 된다면 95만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폰뱅킹으로 355만원이 입금되어 있는 계좌를 HTS에 연결시키고 내일 아침 장이 개장되자 마자 주식을 사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주식계좌로 연동이 되지 않는다. 미성년자는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주식거래가 가능했던 것이다.

“엄마 신분증하고 핸드폰좀 주세요. 내가 뭘 하려고 하는데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대.”

내 말에 어머니는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나 지갑과 핸드폰을 던져주신다.

“오성아 엄마 내일부터 일 나간다.”

엄마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 좀 더 쉬라니까.”

“그래도 이대로 가만있으면 안될 것 같아.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엄마의 몸상태는 예전같지 않아 보인다. 하루종일 누워계시는데도 엄마의 얼굴이 피로에 찌들어 있고 무엇보다 지쳐보이는 데다가 허리도 좋지 않은지 움직일 때마다 가는 신음을 뱉으신다.

“엄마! 정말 부탁드려요. 엄마 조금만 더 쉬어 내가 돈을 벌께. 엄마 지금 나가시게 되면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제대로 일도 못할 것 같아.”

게임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이지만 그것도 엄연히 일이다.
엄마는 지친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오성이가 정신을 차린것 같아서 엄마는 그거면 만족해.”

엄마의 쓸쓸한 눈빛, 이세상에 온전히 버틸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사람이 느끼는 책임감, 아빠가 돌아가신 지 불과 한달여 지났을 뿐인데 엄마는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엄마! 내가 열심히 해서 칠천만원 갚을 테니까 엄마 제발 조금만 더 쉬어요. 엄마 이상태로 나가면 엄마 죽어.”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그럴거 같았다. 몸도 마음도 엉망으로 헝클어진 엄마가 이대로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는 한동안 내 눈을 힘없이 바라보셨다.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그래 알았다.”

엄마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걸 내게 보일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리신다.

***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인 진채영의 집으로 가면서 HTS에 8500원 380주의 매수주문을 예약해 놨다.

주식거래에 대해서 불과 몇일전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그런데 경제를 잘 아는 어른들만이 가능한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찍 왔네? 아함”

문을 두드리자 진채영은 헐렁한 티와 반바지를 입고 하품을 하면서 문을 열어준다.

“좀 미리 씻고 옷 입고 있으면 안돼?”

아무리 예쁘고 잘빠지면 뭐하겠나? 진채영의 실제모습을 알지 못하는 남자들에겐 진채영의 모습이 매력적이겠지만 물론 내게도 진채영은 매력적인 여자였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얘가 오자마자 잔소리야! 내가 그 잔소리 싫어서 나와서 혼자 사는건데···”

난 일터로 들어가 가방과 외투를 벗고 [리버스]에 접속할 준비를 했다.

“커피랑 요거트 좀 먹을래?”

진채영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됐어!”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 이리 나와봐! 같이 먹자.”

여자라는 동물이 특이하다는 것은 동생 연지를 지켜보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진채영은 정말로 특이했다. 잔소리가 싫어서 가족들과 티격대격하기가 싫어서 독립을 했다면서 또 음식을 혼자 먹는건 싫어한다. 내가 출근한 아침이면 같이 음식을 먹자고 졸라대는게 가끔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됐다고! 난 먹었어!”

[리버스]의 공성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채영의 캐릭터도 만렙이 되었지만 아직 더 키워야 했다. 난 마음이 급한데 진채영은 제멋대로다.

“아~잉 같이 먹자아”

진채영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낀다. 그 바람에 브라를 하지 않은 진채영의 가슴이 팔꿈치에 닿는다.

“알았어 놔! 알았어”

만약 거기서 끝까지 버텼다면 또 어떤 민망한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아잉 내가 남자친구 하나 잘뒀다니까.”

“누가 니 남자친구야?”

“너잖아.”

“누가 그래?”

“내가!”

아 요망한 것, 진채영은 남자를 홀리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몇번 홀림을 당하기도 하면서 충분한 방어력이 만들어졌기에 망정이지 정신 못 차릴 뻔했다.

“누구 맘대로.”

진채영의 말을 무시하고 식탁을 향해가는데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이0소프트 8500원에 380주 매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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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2 09:21 | 조회 : 664 목록
작가의 말
씨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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