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삶

“어떻게 이런 건지는 모르지만 넌 가이아스야!”

여우는 내가 한 게임을 다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여우와 토끼를 앞에 앉히고 사실대로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데이모스를 죽이고 난 이후에 새로운 게임이 열리고 현실가상게임이 되어버렸다고

지금에 와선 돌아가고 싶어도 과거의 가이아스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이아스가 이제 가이아스가 아니라 그저 초급 캐릭과 같다고?”

토끼가 묻는다.

“우리 길드는 끝났군 이 사실을 말해줘야겠어 가이아스가 끝났다고.”

“안돼!”

“왜? 가이아스가 없는데, 가이아스가 없으면 그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야지.”

“세진아! 지금 성을 두개나 빼앗기면서도 우리 길드가 남아 있는게 무엇 때문인거 같아?”

“그야···언제든 가이아스가 돌아오면···. 아하 가이아스가 없으면 우리 길드는···”

“그래 박살이 나고 말거야! 죄다 탈퇴하겠지.”

“그럼 어떻게 해? 가이아스가 가이아스가 아닌데···”

“그건 우리 둘만 알잖아.”

두 여자는 나를 두고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고 있다.

“음 길드원 한테는 끝까지 비밀로 하자는 거지?”

“응 가이아스가 되돌아 올 때까지. 그 동안 얘는 내가 특별훈련 시킬테니까.”

“그게 가능하겠어? 버텨봐야 두달인데···”

“스파르타로 훈련시켜야지! 내 캐릭이 55레벨로 중상급이니까 그걸 키우면 성장이 빠르겠지..”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지네들 멋대로 결론을 짓다니.

“미안한데 난 그거 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 전 돈을 벌어야 합니다.”

“누가 공짜로 시킨대? 얼마가 필요한데?”

“지금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요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해서 한달에 280만원 법니다.”

여우는 조금 쎈데 하는 표정이다.

“그럼 그거 맞춰줄게 대신 일주일에 이틀은 쉬게 해주고 오케이?”

“아직 한 달이 안돼서 일주일은 더 일해야 하는데. PC방에서도 새로 직원 구해야 할 테고.”

“알았어 일주일 더 기다려줄게 그러면 되잖아!”

뭔가 찜찜했다. 그게 뭔지 생각해보니 내가 일해서 돈을 버는게 아니었기 때문인 듯 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지금 이래저래 신경쓸 것도 많고···”

“왜 또?”

현실가상게임을 하면서 간신히 중심을 잡은 것 같았다.

지금 간신히 게임세상이 아닌 현실 세상을 살아가는 감각과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는데 다시 가상현실게임 리버스에 접속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릴 것 같았다.

나를 지켜보던 여우가 갑자기 내게 달려든다.

“웁 웁”

입을 맞추더니 입안으로 부드러운 자신의 혀를 집어넣는다. 상큼하고 달콤했다.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쭉 빠져버린다.

“시키는 대로 잘 하게 된다면 더 좋은 보상이 있을 거야.”

여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윙크를 한다.

키스는 달콤했지만 갑자기 능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하는 거야 젠장.”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저 두 여자를 상대하는게 아니었다.

“가이아스! 가이아스! 이리와봐!”

여우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집을 향해 걸어가며 여우의 침이 묻은 입술을 닦았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NPC를 제외하곤 난생 처음으로 여자와 제대로 키스한 것이기 때문이다.

***

다음날 출근하자 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오성아 힘들지?”

청소를 하다가 사장님에게 불려간 나는 당황했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다니.

“아니요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다. 몸이 좀 불편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오성아 이거 받아라!”

사장님은 봉투 두개를 내민다.

“이게 뭔가요?”

“음, 하나는 니가 그동안 일한거 3주 조금 넘어서 220만원 넣었다. 그리고 이건 니가 선불한 게임비 135만원.”

“이걸 왜 절 주시는 거죠?”

사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작심한듯 말을 한다.

“힘들다는거 알아 임마! 니가 약하다가 지금 끊었다며?”

“네? 약이라뇨?”

“괜찮아! 말해도, 어쩐지 살도 갑자기 빠지고 몸이 좋아졌다고 했더니, 니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너를 계속 쓰고는 싶은데···알잖니 우리가 음식점으로도 신고가되어서 보건증도 받아야 하는데 약한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거든.”

“사장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오성아 미안하다. 니 사정도 사정인데 내 사정도 좀 이해해다오.”

사장님은 거의 빌다시피 말을 한다. 알바비를 주고 선불로 낸 게임비까지 주는 것은 PC방에 아예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약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사장님의 표정이 너무나 간절해서 차마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 없었다. 난 할 수 없이 돈봉투를 챙겼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사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쨌든 전 약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래, 그래..”

사장님은 내가 약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등까지 토닥거려준다.

처음으로 얻은 직장인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잘리게 된 것이다.

아니라고 제대로 설명만 한다면 사장님도 이해하실텐데 사장님의 표정이 너무 간절했었다. 그 상태에서 사장님을 이해시켜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서로 찝찝한 감정이 남을 듯 했다.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했다. 마피아 게임이 내게 알려준 교훈이다.

355만원이면 당장 급한 카드 빚들은 갚고 한달쯤 생활비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앞으로 [리버스] 게임은 어떻게 할지 막연했다.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가상게임은 절대로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아니라면 [리버스]가 있는 곳은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은 떨어진 곳을 가야 했다.

머리속이 복잡해 진 상태로 건물 밖을 나오는데 낮익은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안녕?”

여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사장님이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 사장님에게 나에 대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게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 짓이었어?”

“왜에?”

내가 인상을 쓰며 묻자 여우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깜찍한 표정이라는 듯 예뿐척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PC방 사장님이 한 말이 당신 때문이냐고?”

“재밌지 않았어? 재밌잖아?”

“뭐 재밌냐고? 인생이 놀이야?”

여자를 지나쳐 가려던 순간이었다.

“어제 말한 제안 유효한데···”

“됐어!”

내가 단호하게 돌아서자 여우는 혼자말 처럼 투덜거린다.

“이러면 나는 유영진하고 자야 한다고!”

유영진? 유영진? 머리속의 연산속도가 빨라졌다. 어디서 들었던 이름이다.

매우 중요한 이름이어서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원한이 깊게 서린 이름이다.

“유영진? 대신항공?”

“응 너 영진이 알아? 세진이 동생이잖아. 그 자식이 나랑 내기를 했었거든 이번에 하나 남은 성까지 빼앗기면 난 걔랑 자야한다고 어떻게 해.”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 대신그룹 막내아들 유영진, 내가 그 이름을 어떻게 잊겠는가? 게다가 여우와 함께 왔었던 토끼가 대신그룹의 딸이자 유영진의 누나인 유세진인 것이다.

“어디서 해야 하는 거야?”

“뭘?”

“게임 캐릭 키우는거···”

여우의 표정이 갑자기 활짝 핀다.

“할래? 정말 하는 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나이스, 그, 그런데 왜 갑자기 태도가 변한거야? 조금 이상한데···”

“누나가 너무 예뻐서···”

내 대답에 여우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좋아한다.

“따라와!”

여자는 앞장서서 건물주차장으로 간다.

여자가 리모컨을 누르자 2인승 페라리가 깜빡거린다.

***

적은 동지가 되기도 하고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눈에 보지 않는 숨어있는 적이다.

모두를 경계하고 모두를 조심하라.

배신은 너의 적이 아니라 한때 동지였던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마피아게임을 하면서 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이 흡수되고 이해가 된다.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어릴때 말고는 누구와 사귀어 본적이 없었다.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 아는 것, 그리고 현실속에서 그 모든걸 판단하고 경계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마피아 게임이 내게 안겨준 교훈이었다.



원수는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리버스] 게임이 그러한 연결고리가 될 지는 몰랐다.

“여기야!”

여자의 차를 타고 30분쯤 가자 1층은 명품숍이 있었고 2층은 주택으로 꾸며진 한눈에 봐도 이름난 건축가가 지었을 만한 넓은 건물이 나타난다.

강남 대로변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정도의 땅이면 40층 50층 건물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1층에 있는 옷과 신발 여성용 백들이 전시되어 있는 명품 매장은 ‘쁘띠앙주’라는 청동 간판이 걸려 있었다.

“여기 옷가게 사장이야? 요즘 옷장사 힘들다고 하던데···”

옷가게와 가방가게들이 힘들어 한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본것 같았다.

“뭐? 옷가게? 하하하하. 여기는 VIP만을 위한 쇼룸이야. 예약된 손님만 받는 곳이지. 대부분 한국에 있지도 않은 물건들이고 여기있는 가방 하나면 ‘프0다’, 0치’같은 서민브랜드는 스무개는 살 수 있어.“

여우가 하는 말이 뭔지는 몰랐지만 뭔가 대단한 곳인 듯 했다.

여자를 따라 2층에 올라가자 넓직한 공간에 운동기구들과 책들이 어질러져 있다.

길을 향한 기억자로 된 두 개의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흩어져 있는 쇼파와 TV, 그리고 주방을 발견하고서야 이곳이 생활공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집이야! 오늘은 아줌마가 안 오시는 날이라 좀 더럽지···”

바닥에 떨어져있는 브라와 팬티들을 주으면서 여우가 얼버무리듯 말한다.

“부자네.”

그건 차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2인승 페라리를 몰다니

“우리집도 좀 나가. 이리로 와봐 니가 일할 곳이 여기야.”

여우가 여러개 있는 방문 중 하나를 열었다.

세상에···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60인치 대형 티브이 두개가 설치된 컴퓨터. 초기버전부터 모아 놓은 ‘엑스0스’와 ‘플레이스00션’들 그리고 그란투00모와 같은 운전게임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와 한편에 1000만원이나 하는 [리버스]용 가상현실플레이어가 두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100석이 넘는 엔젤리너스 PC방에서도 겨우 두대를 들여 놓을 만큼 비싼 기계였다.

게다가 한쪽 변면을 장식한 피규어들, 보통 이런 방은 성공한 덕후들이나 가지는 것인데 내 눈앞에 금수저 덕후가 있었던 것이다.

“자 여기 피곤하면 안마도 하고 좀 쉬라고 침대랑 안마기도 있어.”

작은 1인용 침대와 안마기까지 한편에 놓여 있다. 내 평생 소원은 이런 방을 가지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번은 내가 결정해서 쉬고 오후 근무는 6시까지, 그 뒤에 어떤 게임을 하던지 나머지는 내 자유.”

나는 오면서 말했던 조건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우는 알겠다는 듯 사라지더니 금세 종이 두장을 뽑아온다.

“자 니가 말한 조건이랑, 여기 부대조건도 있어 성을 지키면 300만원 성을 하나 빼앗으면 500만원.”

여우가 내민 계약서에 서로 싸인을 하고 한장씩 나눠가졌다.

“온김에 한번 로그인 해봐. 나는 다른 아이디도 하나 있으니까.”

여우가 이끄는대로 커다란 원형으로 된 리버스 플레이어 안으로 들어갔다.

장비를 착용하고 기계를 온 시키자 여우의 아이디가 떠오른다.

“푸하 이게 뭐야?”

웃음이 터질 뻔했다.

‘가이어스 와이프’

여우의 아이디다. 그런 아이디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 올랐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런식으로 아이디를 만들곤 했었다.

“네 풀레이가 너무나 멋져서 그랬으면 했었지, 이런 어린애 인지도 모르고. 자 가봐!”

여우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리버스]의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푸른 초원이 눈안에 들어왔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리웠던 곳이었다.

[가이어스 와이프님 남편 찾았어요?]

[오늘 또 혼자 오신 것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55레벨의 중상급 캐릭터였다. 두 달정도면 가이아스 만큼은 아니어도 100위 안에 들 수 있도록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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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9 10:03 | 조회 : 66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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