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삶

12시가 다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을 했다.

내가 들은 모든 것을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지친 얼굴로 말씀하신다.

“보상금이라도 제대로 나와서 치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마 그게 문제예요? 아빠를 저렇게 만든 놈이 다른 놈이라는데···”

나는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아빠 살리는게 제일 중요하지 않니?”

엄마의 힘 없이 포기한 듯한 말에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엄마의 말씀이 맞다. 아빠가 다시 건강해 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돈을 받고 사고를 뒤집어 쓴 운전사나 그걸 알고도 뒷돈을 받고 사건을 축소하는 경찰이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빠가 무사히 깨어나시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엄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빠의 병실밖 복도에 혼자 앉아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퉁퉁 부어있는 아빠의 얼굴을 보자 너무나 미안해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빠는 과격하고 엄격했지만 나를 사랑하셨다.

가끔 매를 들곤 하셨지만 엄하기만 할 뿐,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었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난 이후 아빠랑 제대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항상 혼이 나야 했고 욕을 먹었고 가끔은 회초리에 맞기도 했다.

아빠가 내게 바란건 공부를 잘 하라던지 성적을 올리 라던지 하던게 아니었는데,

'학교를 빠지지 말고 가라.', '엄마의 지갑이나 연지의 저금통에서 돈을 홈치지 마라.'

대부분 맞을 짓이었지만 그 마저도 아빠는 때리려고 회초리를 들었다가 집어던지곤 하셨다.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포기했던 사건.

수능고사장에 가지 않았던 일로 아빠는 폭발하셨다.

아들 하나 잘 되라고 모든 걸 꾹 참고 인내해 오셨던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서 평생 희생을 해 온 아빠가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것이다.

중환자실에선 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있다.

나는 물끄러미 유리창 너머로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생 가족과 자식밖에 모르던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만 보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난데, 마음속에 헤아릴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있었던 곳에서 벗어나고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우리가족 모두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와 달리 난 사고를 일으키고 도망가버린 대신한공의 막내라는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어엇”

중환자실밖에서 아빠를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 여기요 여기..”

간호사를 부르자 간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방금 우리 아빠가 움직이셨어요 권영달씨요.”

잠시후 의사가 달려오고 플래쉬같은걸 아빠의 눈에 비춘다. 의사의 검진이 끝나고 난 이후에야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

“오, 오성아..”

아빠는 나를 알아보시고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난 아빠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미, 미안해 아빠 미안해”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빠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죄송한 마음에 벅차 오르는 눈물이었다.

“녀, 녀석 정신차렸냐?”

“응 아빠 이제 열심히 살게, 정말 열심히 살게.”

붕대를 감고 퉁퉁 부은 얼굴로 아빠는 미소를 지으신다.

“그래,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간호사가 나가야 한다고 할 때까지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빠에게 손을 흔들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 깨어나셨어요 조금전에···”

[그래? 살았다. 얼마나 다행이니···흑]

하루종일 병실을 지키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잠결에 전화를 받으신 엄마는 눈물부터 흘린다.

“엄마 푹 쉬고 내일 오세요 푹 쉬시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둠속에 가려졌던 세상의 반이 환해진 것 같았다.

틈틈이 중환자실 유리창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면서 새벽쯤 되었을 때 였다.

간호사와 의사가 허겁지겁 중환자실로 들이닥친다.

“무, 무슨 일이예요?”

내 질문에 대답도 없이 생전처음 보는 의료 기구들과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의사들이 줄줄이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아빠의 침대에서 한참동안 바쁘게 움직이던 의사들은 갑자기 정지된 화면처럼 모든 동작을 멈추고 서 있다.

그리고선 의사한명이 중환자실을 나와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를 향해 말한다.

“아버님, 04시 45분에 운명하셨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떨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 아니예요 좀, 좀전에 저랑 말씀도 나눴는데.. 깨어나셨는데···우리 아빠 좀 전에 살아계셨는데 우리아빠 절대 죽을리가 없는데....으아악..”

나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비명과 함께 오열하고 말았다.

***

[뇌출혈에 의한 쇼크사]

의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다.

병원에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하셨다면 보다 안전하게 머리속에 고인 피를 제거하고 압력이 감소되었을 텐데 의료진이 재빨리 대응하긴 했지만 충격을 받아 돌아가신 것 같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선 장례식장도 무료로 쓸 수 있게 해주고 병원에서 손을 써 화장장과 납골당도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것이 행여나 발생했을 지도 모를 자신들의 귀책을 숨기기위한 더러운 수작인지도 모르고 그저 감사하게만 생각했었던 것이다.

아빠의 장례식엔 일가친척 몇분이 오셨다.

대신항공 임원이라는 사람과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여자가 얼굴을 비췄지만 그들을 원망할 힘조차 없었다.

아빠는 화장을 해 납골당에 모셨다.

평생 묵묵히 일만 하시던 아빠가 영정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한 너무나 죄송했다. 아빠는 못난 자식 때문에 명대로 살지 못하신 거였다.

그 후의 일은 시궁창이 되었다.

원래는 뺑소니에 의한 사망사고가 되어야 하는데 가해자의 입장을 대리한 대신측 변호사는 아빠가 중간에 의식이 돌아왔고 별다른 이상없는 갑작스런 죽음이라 교통사고가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 의료사고가 의심된다고 했고

병원에선 사인을 밝히기 위해선 부검을 해야 하는데 이미 화장을 마친뒤였기에 그것을 증빙할 수 없으며 병원에선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다 했기 때문에 교통사고에 의한 쇼크사로 판명된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퇴직금으로 사채빚과 병원비를 대고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보상금이던지 뭐던지 법원에서 결론이 나야 지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연지는 나를 사람취급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지에게 나는 있어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연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빠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나 였다.

어쩔 수 없이 영향받고 어쩔 수 없이 흔들리겠지만 고3이 되는 연지가 스스로 잘 헤쳐가기만을 바라며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앓아 누우셨다. 20년 이상 같이 살아온 배우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어머니를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리석고 멍청한 나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

“그 가방을 나에게 넘겨 러키.”

이번 미션은 가방을 꼭 전달해야 하는 미션이다. 가방이 없다면 미션을 진행할 수도 없다.

남자는 할 수 없다는 듯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눈다.

“러키, 자네와 난 친구잖아. 누가 친구인지 정도는 구별해야지! 이곳에선 깜박 한 눈을 팔거나 정신을 못차리면 순식간에 시체가 되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그렇잖아 러키? 네가 그 가방을 치노에게 갖다줬다간 어떻게 되겠어? 너나 나나 다 죽은 목숨이 되는 거야.”

난 할 수 없이 남자에게 가방을 건네주었다.

남자가 가방을 받으려는 순간 권총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을 잡고 한바퀴 비틀어 버린다.

“총 버려!”

내 말에 남자는 총을 떨어뜨린다.

“부탁을 할 때는 정중히 해. 그리고 총을 들이대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야.”

나는 남자가 떨어뜨린 총을 줏어들고 남자로부터 가방을 다시 빼앗았다.

“러키, 제발 그 가방을 치노에게 주어선 안돼.”

남자는 울상을 지으면서 말을 한다.

“가방안에 뭐가 들었는데?”

그게 궁금했다.

“이런 맙소사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갖다주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뭐가 들었냐고?”

“하하하하”

남자는 이제 어이없다는 듯 한 바탕 웃는다.

“네가 죽을, 그리고 내가 죽을, 이 거리의 남자 대부분이 죽어야 할 이유가 들어있지. 하하하”

남자는 조롱하듯 말한다. 무엇이 들었는 지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나는 남자를 남겨두고 다시 가방을 들고 윈처호텔로 향했다.

한 200미터 정도 가까이 걸어가져 윈처 호텔의 네온싸인이 보인다.

가방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려고 했지만 가방은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열수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가방을 들고 호텔로 다가갔다. 호텔 현관을 지키는 도어맨이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를 한다. 러키라는 존재는 이 구역에서 유명한 사람인듯 했다.

호텔로비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려있다.

“치노씨에게 가는 거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아직 십대로 보이는 벨보이가 묻는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신은 죽을 거에요”

내리기전에 벨보이가 내 등뒤에서 하는 말이다.

“뭐?”

“나라면 아무도 발견 못할 곳에 총을 숨기겠어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

벨보이는 철망으로 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곳에 총을 숨기라고?’

벨보이가 한 말을 다시 상기해봤다. 내 호주머니엔 리볼버 두자루가 있었다.

짧은 순간, 어디에 총을 숨겨야 발견할 수 없을 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똑똑]

504호에 다달아서 노크를 하자 문이 열리고 내 몸의 두배는 될 것 같은 덩치가 나타난다.

“러키 데 폰티!”

내 이름은 러키 데 폰티였다. 남자가 들어오라고 자신의 몸을 뒤로 빼 빈틈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코드 벗고 팔 벌려”

남자의 말에 난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은 채 팔을 벌렸다.

덩치는 발목부터 꼼꼼히 내 몸을 뒤진다. 사타구니까지 주물럭거리며 니글니글한 미소를 짓는다.

내 주머니와 가슴, 허리, 겨드랑이까지 꼼꼼히 뒤지고서야 가도 좋다며 고갯짓을 한다.

소파와 맞은편에 커다란 책상이 있고 그곳에 하얀 머리의 험상궂은 남자가 시거를 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가 남자를 향해 말한다.

“코트에 리볼버 한 자루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덩치는 코트에서 리볼버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러키! 러키 어서오게?”

“이 가방을 전해드리라고 해서···”

책상에 앉아 시거를 물고 있는 남자의 눈앞에 가방을 내려 놓았다. 곧바로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덩치가 나를 가로막는다.

“내가 가라고 하기전엔 아무도 이곳을 나갈 수 없지, 거기 앉아서 술이나 한잔 하라고.”

나는 할 수 없이 소파에 앉아 탁자위에 놓인 위스키를 잔에 따라 마셨다.

치노라는 남자는 가방의 암호를 맞추더니 가방을 연다.

“으으으으···.”

찢이겨진 소름끼치는 소리가 치노라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신음같기도 하고 비명같기도 한 소리였다.

“후우~”

치노는 한숨을 쉬더니 나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온다.

“자네 보스 마테오 모레티는 잘 있나?”

러키는 짐작대로 마피아의 일원 인듯 하다. 마테오 모레티가 러키의 보스인 것이다.

나는 처음 가방을 내게 넘겨줬던 남자를 떠올렸다. 아마도 그 일 것이다.

“네···그런듯 합니다.”

치노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서성리며 말하다.

“FBI놈들이 우리 패밀리에 개를 심어 놨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 그놈들 작전은 우리도 잘 알고 있었거든, 우리도 FBI에 개를 심어놨으니까, 우리가 심은 개가 얼마전에 소식을 전해줬어, 우리 스폰짜 패밀리와 모레티 패밀리에 분쟁을 만들어서 서로가 치고 받게 만들어 박살이 나게 만드는 작전을 말이야.”

치노는 위스키를 병째 들고서 꿀꺽 꿀꺽 마신다.

“나는 그 작전이 무엇인지 궁금했어 도대체 뭘 이용할지, 그리고 어떤 놈이 FBI가 심어 놓은 개일지 말이야.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지···그런데, 그런데···내 아들을 이용할 줄은 몰랐어”

치노가 서류가방을 내쪽으로 돌린다. 그곳엔 커다란 반지를 낀 남자의 잘린 팔뚝이 들어 있었다.

“이러고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러키 데 폰티?”

치노라는 남자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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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6 09:45 | 조회 : 85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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