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전치 18주가 나왔다. 모든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는데 의식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의사말로는 걸으려면 6개월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해자는 병실에 찾아와 모든 치료와 보상을 하겠노라며 계속 고개를 숙이고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이상한데 그 사람은 좀 호리호리했는데···”
아빠가 대리운전하던 차에 타고 있던 차주인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고가 난 와중에 상대방 차를 봤던 것이다.
사고를 낸 차는 2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였다.
스포츠카의 블랙박스에 메모리 카드는 사라졌고 아빠가 운전했던 차의 블랙박스는 화질이 희미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20년 동안 지각한번 결근한번 한적없는 아빠의 젊음을 바친 직장이었는데 아빠는 반강제로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 퇴직금으로 집안에 붙은 빨간딱지를 떼고 급한 병원비를 대야만 했다.
아빠는 의식이 없지만 반드시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만 했는데
낯시간은 엄마가 아빠를 간호하고 밤엔 내가 엄마와 교대해 아빠를 돌봐주기로 했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낯익은 두 사람이 아옹다옹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눈에 띄였다.
“얼마받았어요? 다 아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무슨 운전사가 2억짜리 스포츠카를 몰아요.”
“그날 제가 회장님께 급히 서류를 전달해 드려야 해서···”
“에헤~ 왜 이래요? 다 알고 있는데···CCTV가 괜히 있는줄 아나? 대신항공 막내잖아.”
“아뇨 제가 운전한거 맞습니다.”
“그렇게 넘어가 준다고 보니까 집유 나오겠네. 사고가 났지만 일단은 회사에 긴급한 서류가 있어 넘기고 피해자가 걱정되어서 왔다. 시나리오 좋네. 그렇게 하자고···”
“아뇨 제가 운전한거 정말로 맞습니다.”
“알았으니까. 내일 이거 제 번호인데 이리로 회장님이나 비서보고 전화하라고 해요.”
“그게···”
“막내 보니까 이번이 네번째라 걸리면 실형 살겠던데 음주운전에 뺑소니에···그렇게만 전해요. 다 좋은게 좋은 거잖아 왜 이래?”
그 말에 가해자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차에 올라 타고 경찰은 씨익 웃더니 경찰차에 올라 타 그렇게 둘은 제각기 가야 할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
지켜보면서 이가 바득 바득 갈린다. 그들은 앰브란스뒤에 있는 나를 못 봤겠지만 나는 고스란히 그들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러니까 진짜 사고를 낸건 대신항공의 막내놈이 음주운전을 하면서 사고를 낸 거였고 뺑소니를 쳤던 것이다. 그러고선 자기집 운전사에게 자기 옷을 입혀 가해자랍시고 보낸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가 치밀었지만 침착해지려 애 썼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오후 2시에 집을 나와 PC방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강석찬 패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권오성이 니가 미쳤지?”
평소같으면 무서워 벌벌 떨었거나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우리 아빠 사고 나셨다. 니들 이야기 할 것들은 나중에 하자.”
짧은 순간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갑자기 강석찬 패거리를 상대하는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뭐 이새끼야? 니 애비가 디지든 말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강석찬은 그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인성이라도 있다면 그딴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갑자기 온몸의 세포들이 불타오르듯 뜨겁게 열이 올랐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었고 온 몸이 미친듯이 흥분되었다.
“뭐, 뭐라고?”
나는 혹시나 잘못들었나 하고 강석찬에게 다시 물었다.
“니 애비가 죽던 말던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 오타쿠 새끼···..”
[빡!]
강석찬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펀치를 맞고 몸이 붕 떠서 분리수거를 위해 모아놓은 쓰레기더미에 쳐 박혀 버렸다.
나는 되돌아서서 놀라 서 있는 김선진과 이재민을 돌아봤다.
“니들도 저 새끼랑 똑같은 생각이냐?”
“아, 아니”, “아니야···아버님 다치셨냐? 우, 우린 몰랐어.”
주먹이 아팠다.
강석찬을 돌아보자 강석찬은 일어서려고 비틀거리다가 다시 쓰레기 더미로 넘어져 버린다.
김선진과 이재민이 그런 강석찬에게 다가가 부축을 하자
“니들 내 눈에 띄지 마라! 내 눈에 띌 때마다 그 동안 당한 것 만큼 갚아줄테니.”
난 씹듯이 세놈에게 말하고서 PC방으로 향했다.
애들 장난은 이제 끝났다는 것을 깨닳았다.
저 별것도 아닌 인성도 덜 된 한심한 새끼들한테 당해 왔던 걸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불과 2주를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이제 아이들한테 얻어맞고 다니는 찌질이 오타쿠 권오성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망가진 아빠와 그동안 다니던 분식점 알바도 못하고 아빠 간병을 해야 하는 엄마와 고3이 된 동생까지, 우리 가족 모두를 챙겨야 하는 권오성이다.
***
정오 전까지의 시간은 PC방의 청소시간이다.
보통 알바를 쓰지않고 사장님이나 가족이 직접 청소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쓰더라도 한명만 있어도 PC방은 충분히 잘 돌아간다.
그 시간에 PC방에 머무는 손님은 밤을 샌 사람들 뿐이고 고작해야 하루에 한 두 명에 불과하다.
나는 사장님을 보자마자 근무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PC방 일 밖에 없었다. 돈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내 사정을 들은 PC방 사장님은 혼쾌히 수락을 해 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일하게 된 것이다.
중간에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1시간 근무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면 280만 5000원, 당장은 아빠의 퇴직금으로 몇달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다. 보상금이 당장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밖에 없었다.
딱 한가지 [리버스]게임을 하는 것은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리버스]였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더라면 아빠가 저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가족을 이렇게 위기로 몰고 간 것은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었다.
그 자책감이 나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 정말 열심히 살아가면 이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지 다시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지 그 실낱같은 희망에 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제발 내가 그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기를···
험난한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난 이제 좌절하고 싶어도 좌절 할 수 없었다.
[리버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현실가상게임을 하면서 내가 변화하고 있었고 내 삶을 이끌고 있었다.
그 원인이 [리버스]였다.
병원에 아빠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고 그 옆에 슬픔에 빠진 채 엄마가 아빠를 지키고 있었지만
난 9시 PC방 알바일을 마치고 [리버스]에 접속했다.
***
“이걸 5시까지 윈처 호텔 504호로”
모자를 쓰고 말쑥한 양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남자가 시거를 문 채 내게 007 가방을 하나 맡겼다.
퀴퀴한 냄새와 칙칙한 조명, 내 손을 보니 가죽장갑을 끼고 있고 나 또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걸 왜 내게···”
“갖다 주면 알아. 러키”
남자는 애 어깨를 툭툭 치더니 뒷걸음질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난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고일이 기둥을 받치고 빨간 벽돌 된 건물들, 그리고 본넷이 부푼 햐안띠를 두른 바퀴를 단 커다란 차들, 난 아마도 1920년대 30년대의 미국의 어느 뒷골목에 온 것 같았다.
머리위를 만져보자 머리에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아마도 나는 갱단의 일원이거나 심부름꾼 같았다.
거리의 풍경위로 이질적인 푸른 싸인이 하나 반짝거린다.
[가방을 넘기고 무사히 생존할 것]
이번 게임의 룰이었다. 가방만 넘겨주고 오면 된다니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따각 따각''
구두의 굽이 딱딱해서 걸을 때마다 불편했다.
거리에는 드문 드문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서둘러 어디론가 가야 하는듯 발걸음들이 빨랐고 몇몇 창녀로 보이는 여자들만이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담배를 문 채 지나가는 남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난 서류가방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고 왜 가방을 건네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윈처 호텔이라는 곳에 찾아가 504호에 있는 사람에게 가방을 넘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 가방을 건네주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나는 지나가는 차에 말을 걸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러키 오늘은 놀다가지 않을꺼야?”
내가 다가가자 여자는 나를 알고 있는 듯 먼저 말을 건다.
“윈처 호텔이 어디야?”
내 질문에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러키라는 남자가 모를리 없다는 듯한 반응이다.
“프레지던트 뒤에 있잖아 오늘 왜 그래 러키?”
망할 그러니까 프레지던트 라는게 어디에 있냐고
“손으로 가르켜봐 어딘지.”
내 말에 여자는 담배를 쥔 손을 뻗는다.
“거리는?”
潔야드쯤···더 되나? 오늘 재밌네 러키···”
여자는 내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으로 아는지 내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아줌마 나 아직 미성년자라고 담배 안 핀다고
“고마워!”
난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를 하고 가려했지만 여자가 내 팔을 잡아 당긴다.
그리곤 찐덕한 립스틱이 묻은 입술을 내 입에 갖다댄다.
“우웁”
내 생전 처음으로 하는 키스를 게임속 NPC와 했다고 하면 누군가 믿어줄런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비록 담배냄새와 싸구려 립스틱으로 찐덕거리는 키스였지만
“거기가면 죽어 러키”
여자는 키스를 마치곤 내 귀에 아주 작게 속삭인다.
난 여자의 립스틱이 묻은 입술을 닦고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서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를 본 의미가 있었다. 1야드는 90센티정도 되니까 500야드면 450미터 정도다.
여자에게 멀어져 걷고 있는데 뒤에서 커다란 검은차가 뒤따라 온다.
갱 영화에 종종 등장하던 본넷트가 부풀어있는 차였다.
내가 차를 주의깊게 본 것은 차가 내 걷는 속도에 맞춰 너무나 느리게 왔기 때문이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차도 멈춘다.
혹시나 하고 차를 돌아보자 차의 창문이 스르르르 열린다.
[빠바바바바 빵]
나를 따라오던 차의 유리창에서 남자 둘이 튀어나오더니 나를 향해 통슨기관총을 쏘았다.
나는 재빨리 그 차와 나 사이에 서 있는 자동차 뒤로 몸을 던졌다.
[빠바바바바빵]
기관총은 내가 숨은 자동차의 차체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마피아들이 쏘고 있는 총은 톰슨기관총이다 소리는 어마어마 커서 전시효과는 있지만 명중률도 떨어지고 고장도 잘 나던 총이다. 아마 다른 총이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호주머니를 뒤지자 리볼버 권총 하나가 잡혔다.
[탕, 탕]
나도 주저앉은채 자동차를 향해 리볼버를 쏘았다. 그러자 자동차는 서둘러 달아나 버렸다.
아마도 통슨 기관총이 망가져서 도망을 가는 것일 게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여자의 말도 그렇고 나를 향해 기관총을 쏘는 검은 차도 그렇고 조심해야 했다.
이정도 총성이 울렸으면 당연히 경찰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곳은 무법지대였던 것이다.
나는 주변을 조심해서 살펴보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 기둥 어느 창문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총을 쏠지 몰랐다.
“러키!”
눈앞의 골목에서 한 남자가 나를 향해 소리를 친다.
“러키 이리와 빨리!”
누군지 몰라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 남자를 향해 재빨리 뛰었다.
골목안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다급하게 말한다.
“러키 그 가방을 내게 넘겨 그러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거야.”
남자가 간절하게 내게 말한다.
“이 가방에 뭐가 들었는데?”
오히려 내가 묻는다.
“몰라서 물어? 그걸 갖다줬다간 우린 다 개 죽음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가방을 남자에게 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