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고대 마왕신 367대 후계 화석 반물질인 것에 대한 구미호 찬가.

여동생이고대마왕신367대후계화석반물질인 것에 대한 구미호 찬가.


델로스라는 과자가 눈에 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사이즈. 붉은 바탕의 포장이지만, 윗부분만은 투명한 비닐이었고 그곳으로 갈색의 내용물이 비췄다. 델로스라는 이름은, 그 붉은 바탕 안에 하얀 글씨로 새겨져있던 것이다. 나는 델로스의 맛을 알고있다. 커피나 핫초코등에 찍어먹기 좋은, 아담하고 감질나는 고소한 과자이다. 그렇다. 먹고싶은 것이다. 손을 뻗는다. 집는다.




*구미호 한 꼬리

심장의 온기는 끊임없이 팔딱거리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이, 시체가 차가운 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제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이 눈보라 속에서도 제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호흡이 힘들고 움직임이 둔했다. 목 끝까지 차오른 한기에 제로는 곧 잠겨버릴 것 같았다. 속한 공간 전체가 몸을 붙잡고 늘어지는 느낌. 온몸이 빳빳하고 뻑뻑하게 움직였다. 물살을 헤치고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죽는다는건 그런걸까. 삶이 육상생활이라면 죽음은 심해의 영역아닐까. 그 경계에서 제로는 허우적댔고, 이윽고 제로는 퐁당 빠져버렸다. 물론 그 일대는 물이라곤 전혀 없는 눈밭이었으니 물에 빠진 건 아니었다. 격하게 떨려오는 몸을 붙들고서, 한발한발 내딛을때마다 쑥 빠질 것 처럼 빨려가는 다리에 걸음마다 심장을 조이는 와중에, 늘 그래왔듯 그냥 아무 생각없이 숨을 들이켰을 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유난히도 날이 선 찬공기가 허파로 파고들었다. 얄팍하지만 유일한 막이 뜷려버렸단 느낌으로. 한기가 순식간에 치고들어와 온몸 구석구석 뿌리를 박았다. 제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더이상 눈밭에 발자국을 찍지 않았다. 땅에게 끌려가듯, 제로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설원의 풍경처럼 제로의 머릿속도 새하얘질 찰나에, 제로는 더이상 자신의 몸이 떨리지 않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제로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온 몸을 눈밭에 파뭍었다. 산송장 위로 눈이 내렸다.



*구미호 두 꼬리

제로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알람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등과 맞닿은 것은 두리뭉실한 부피감이 느껴질 눈더미는 아니었다. 누워있는 건 확실한 질감이 있는 딱딱한 바닥이었다. 눈을 뜨며 마주한 천장이 그를 증명했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 제로는 주변을 살폈다. 탁트인 순백의 풍경이 아니었다. 주홍빛으로 칠해진 방 안이었다. 벽난로에서 퍼져나오는 색이었다. 그 불빛을 이불처럼 덮고있던 제로는, 오두막 목제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제로 옷에 붙은 서리는 꽤나 지워져있었고 제로가 누워있던 자리는 축축히 젖어있었다. 난로를 꽤나 쬔 듯 했지만, 아직도 제로 몸 속 깊이 베인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몸이 풀려 움직일 순 있게된 제로는 벽난로로 기어가 그 옆에 바짝 붙어 누웠다. 아직도 몸이 떨려와 정신없는 와중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질수 있게된 제로는, 이제서야 여긴 어딜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눈에 완전히 파뭍히기 전, 운좋게도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구해진 것이리. 그런 생각들로 추위를 잊느라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를 때. 방문이 열렸다.



*구미호 세 꼬리

하얀 머리칼을 어깨 밑까지 늘어트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제로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붉은 눈동자, 순간 제로는 섬찟 놀란 얼굴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제로에게 다가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잠시 제로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괜찮니? 제로는 입을 열지않았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서 처음 떠오른 그 한마디가 적막 속에 흐리고 흐려지다, 결국 말을 잇는 건 그녀였다. "침대도 없어서 미안해. 춥지? 차라도 내올테니 불 좀 쬐고 있으렴." 그리고 그녀는 나가버렸다. 다시 제로 혼자 남았다. 제로 혼자.



*구미호 네 꼬리

그녀는 접시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을 싣고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같이 난로 옆에 바짝 붙어 누워있던 제로는 고개를 들었다. 자, 어서 마시렴. 그녀는 제로 옆에 앉아 접시를 내려놓고 말했다. 제로는 몸을 일으키고 그녀가 가져온 것을 보았다. 밀크티였다. 제로는 고갤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살며시 미소지은 채 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로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찻잔을 집었다. 두 손으로 찻잔을 움켜쥔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많이 추웠나 보구나, 그녀가 말했다. 제로는 차를 입으로 가져다댔고, 금새 잔을 비웠다. 그녀는 다시 제로의 잔을 채워줬고, 제로는 곧바로 잔을 입에 붙였다. 그런 제로를 그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큰일 날뻔 했어. 도대체 어딜 가고있던 거니?






* 구미호, 아홉번째 꼬리

제발, 제발. 내게 널 조금만 나누어주렴. 그녀, 백발 적안의 구미호는 그렇게 제로를 붙았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망울이 붉게 반짝거렸다. 눈을 마주쳐버린 제로는 잠시 굳어버렸다. 눈보라치는 설원을 걸을 때의 한기가 등골을 흝고 지나갔다. 식은 땀 흘리는 굳은 얼굴로 그 붉은 눈을 마주하며, 섬뜩하다는 말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지만 살짝, 아름답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제로는 그녀를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로를 붙잡던 손이 허공으로 붕 떴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 손이 한동안 내려오질 않았다. 문을 열고 나선 제로는 광활한 순백의 풍경을 맞이했다. 뒤를 한번 돌아본 제로는 의식하듯 고개를 앞으로 고정한 채 발을 땠다. 옷깃을 붙드는 날카로운,처절한,서글픈,애절한 소리들에 제로의 발걸음이 무거워졌으나, 제로는 그 내용을 어렴풋이 헤아릴 뿐 다 파악하진 못했다. 제로의 발이 눈에 푹푹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희미해져갔다. 멈춘 것은 식어간다. 차가운 것은 시체다. 제로는 또다시 눈밭 속으로 하염없이 발자국을 찍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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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3 22:22 | 조회 : 907 목록
작가의 말
길키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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