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아이를 발견했다.

바구니를 목에 메고 길가에 나 있는 풀의 냄새를 맡는다.

“음.. 리사 아주머니가 알려준 냄새대로.. 이게 맞는거 같지?”

풀을 뜯어서 바구니에 집어넣는다. 오랜만에 숲에 나와서 발걸음이 가볍다.



잘 빠진 다리에 동그란 코, 거기에 전신에 덮힌 윤기나는 주황색의 털!

마을의 아이돌이라고도 할수 있는 이 얼굴과 몸매에 복실복실한 세개의 꼬리까지 가진 나는 호족의 미래라고도 할 수 있는 몸이다.

족장의 딸로서 모두에게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라왔지만, 요즘 들어 걱정이 하나 생겼다.

그건 어머님이 요즘 기운이 별로 없으시다는 것이다.

안 그런 척 하시지만, 태어났을때부터 봐왔던 나는 알 수 있다.

아홉개의 아름다운 꼬리를 가지신 어머님은 항상 강경하게 마을을 지켜오셨고,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결심 했다. 어머님이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그래서 조제사인 리사 아주머니에게서 건강해지는 약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그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에 숲에 들어왔다.

숲에는 몬스터들도 있지만, 외곽의 몬스터들쯤은 꼬리가 세개인 호족인 나에게는 상대도 안된다.

“흐흐흐, 약초가 참 많구나. 이걸로 어머님도 다시 건강해 지시겠지?”

운이 좋은지 간단하게 약초가 발견되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니, 이정도는 삼미호인 나의 후각에 걸리면 간단하다!

“근데 슬슬 배가 고프네.. 목도 마르고, 여기 근처에 호수가 있었지?”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지만, 물을 찾아가는것도 삼미호의 후각을 사용하면 식은죽 먹기이다. 약초를 마저 입으로 뜯어서 바구니에 넣고는 콧대를 올리고 우아하게 걷는다.





나무에 가려서 별로 보이지 않던 햇빛이 모두 여기로 모여왔나 싶을 정도로 밝게 물수면을 비추고 있다.

맑은 물수면이 반짝반짝 빛나서 계속 보고있고 싶을 만한 풍경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호수는 위험한 장소다.

물에 빠진다던가 하는 정도의 위험이 아니다. 애초에 여우들에게 수영따위는 간단하다.

문제는, 물 속에는 몬스터가 산다는 것.

딱히 물 속이라고 해서 몬스터가 더 강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상대를 물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만약에 끌려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수중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이상 엄청 불리한 상태에서 한쪽이 죽을때 까지 끝나지 않는 데스매치가 시작된다. 거기에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몬스터가 몰려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게다가 호수 속에서 접근하는 몬스터는 소리도, 냄새도 맡을수 없다.

믿을 수 있는것은 시각뿐.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마치고 조금이라도 목을 축이기 위해 조심조심 호숫가로 다가간다.

그리고 물가에 다다랐을 때.

촤라락

무엇인가가 물 속에서 튀어나온다.

다행히도 내가 있는 장소에서 거리가 꽤 있어서 충분히 도망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망 갈 수 없었다.

시선이 방금 호수에서 나온 형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연두색의 무언가에 이어 나오는 형태는 바다에서 나오는 어떤 몬스터와도 다르다.

작지만 통통한 네개의 팔다리에 부드러워 보이는 살색의 피부에는 털도 나지 않았고, 꼬리도 귀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

그것도 아직 어린 인간의 모습. 마지막 인간의 영지가 이 땅에서 사라진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인간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그것도 숲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아이라면 더욱 더.

시선이 물에서 나온 인간의 얼굴에 미친다. 통통한 볼에, 발그스름한 입술, 균형 잘 잡힌 얼굴의 모습은 마치 인형과도 같았다.

'귀엽다.'

인간을 애완동물가지고 있는 예는 많이 들어봤는데, 이런 생김새면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보았다.

에메랄드 같은 초록색의 눈. 이쪽을 향해 있지만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 마치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듯한..

'눈이 보이지 않는건가? 아니면 혹시..'

그리고는 깨달았다. 분명 이 아이는 겁에 질린거다.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지만, 지금 내 모습은 인간 어른보다도 큰 여우의 모습. 인간의 아이의 시선에서는 분명 거대한 맹수로 보일 것이다.

'이 귀여운 내가 무섭다니 그건 그것대로 상처받지만..'

그래서 얼른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호족의 특기인 변신마법. 변신할 모습은 전에 그림으로 보았던 인간의 모습.. 최대한 미화해서.. 마침 앞에 좋은 예도 있다.


몸이 작아지고 사지가 변화한다. 얼굴이 인간의 것으로 바뀌고 두발로 서며 온몸에 털이 인간의 것으로 바뀐다. 그림에서 봤던 기억대로 옷도 입혀진다. 아, 그런데 눈앞에서 변신하면 그건 그것대로 놀라려나?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변신은 이미 다 끝나버린걸.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아이의 모습을 살핀다.

초록색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와 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놀란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일단 무서워 하는것 같지는 않지?


나는 이래뵈도 변신마법에 꽤 자신이 있다. 호족일 뿐만 아니라 족장의 딸인 꼬리 세개달린 여우로서 종족 내에서도 고스펙이다. 그러니 나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감탄하면 좋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흔들거리는 눈동자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아차, 내 꼬리..

인간의 모습인데도 여우 꼬리가 세개 나 있는 모습은 이상하지.. 다시 변신마법에 집중해서 꼬리를 없앤다.

한개..두개째 없애려는데, 아이의 모습이 이상하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뭔가 불안한듯?

두번째 꼬리를 없애고 마지막 꼬리를 없애려고 하니까 이제는 아예 울거 같다.

“... 없애지마?”

끄덕끄덕

너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무심코 꼬리를 내미니까 받아들면서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젖는거 싫은데..








“그런데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거야? 물 속은 위험하다고, 수영하거나 그러면 안돼?”

물가로 나와서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특히 꼬리와 귀를.

귀도 변신이 안되어 있었는데, 어쩔수 없는걸, 인간의 귀 본적 없고, 그림에서도 가려져 있었고.

그런데 꼬리를 없애려는데 멈춘거와 같이 귀도 그대로를 좋아하는것 같다.

변신하기 전의 모습은 무서워 햇으면서, 이상한 아이.

그런데, 조금 추운거 같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그런걸까? 털이 별로 없어서 추위를 잘 타는건지도.. 그러고 보니까 그래서 이렇게 옷을 입는구나.

새로운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고있는 아이를 살펴본다. 방금 물에서 나와서 몸에 물기가 아직 남아있고, 옷은 당연히 입고 있지 않다.

추울거 같다.

게다가 인간의 여자아이들은 알몸을 보이면 안된다고 들었다. 나는 유식하니까 이럴 때 도와줘야 한다.

“이거 입어.”

다행히도 변신할때 만들어진 옷이 두겹으로 되어있어서 겉옷을 입혀준다.

그런데 옷을 벗어줬더니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인간은 여러가지 불편하구나..

“불쌍하게도..”

입이 덜덜 떨린다.

계속 추웠지? 이제 그거 입고 있어..

아니 그런데 왜 다시 벗어서 나에게 주려는 거야?

아니 난 괜찮으니까?

꼬리를 허리에 감아서 보여준다. 아까 없앴던 다른 꼬리 두개도 다시 만들어내서 몸에 두른다. 응, 따뜻하다.

아이는 뭔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있다. 왜지?





“.. 그래서 약초를 캐러 나온거야. 그러다가 조금 쉬면서 목이나 축이려고 왔는데 네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 물 속은 위험하니까.”

아인들이 사용하는 마족공용어로 말을 하는데도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종족들이 쓰는 다른 말은 없으니까 분명히 알아들을텐데도, 열심히 듣기만 할 뿐,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여러가지 궁금하지만 말을 해주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나에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벙어리인거 같지만 다행히도 열심히 듣는걸 보니 귀머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약초는 힘을 나게 해주는 약의 재료라고 리사 아주머니가 그랬는데,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분명 효과가 있을거야. 이거봐봐, 생긴것도 예쁘게 생겼지?”

바구니에 캔 약초들을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한개를 건네주니까 작은 손으로 잡고 고개를 까닥 하고 기울인다. 귀여운데..

그러다 보니까 바구니 밑에 묻혀있던 보자기에 손이 간다. 중간에 먹으려고 가져온 도시락이다. 마침 때도 되었고, 쉬는김에 먹자고 생각해서 준비해온 음식을 꺼낸다.

메뉴는 구운 돼지고기와 마을에서 재배한 과일이다.

우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하나 꺼내서 입에 넣는다. 오랜시간 품종이 개량된 호족의 딸기는 야생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마디로 맛있다. 깨물면 입안에서 나오는 즙을 즐기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 너무 열심히 쳐다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동그랗게 뜬 눈에서 빔이라도 나올거 같이 내 먹는 모습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반사적으로 도시락을 숨겨버렸다.

아니, 감이랄까, 그대로 나두면 위험할거 같았다.

그러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서도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 같이 먹을래?”

“.. 먹어도돼?”

응? 너 말할 수 있었어?


여우모습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음식이기에 양은 충분할 줄 알았다. 아니, 이 작은 아이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

그런데 그게 착각이란걸 알게 되었다. 그 작은 몸에 어디에 들어가는지 계속 먹는다. 그게 너무 놀라워서 먹는것도 잊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내 시선을 느꼈는지 웅크린다.

“미안”

아니, 그렇게 기 죽을거 없는데.. 그냥 신기해서 쳐다본거야.

“계속 먹어도 돼.”

작은 입을 우물거리면서 먹는게 귀여워서 계속 보고 싶지만, 싫어하는거 같아서 그만뒀다.

애완동물들은 먹는걸 쳐다보면 싫어한다고 들은것 같다.

그나저나 다 없어지기 전에 나도 좀 먹어놔야 겠다. 비록 변신으로 인간형태로 변했지만, 먹어야 하는 양은 변하지 않는다. 가져온 음식의 반정도는 먹어놔야지..





“그래서 어째서 이런데 혼자 있는거야?”

“응... 여행하다가 동굴에서 길을 잃었다가 나왔더니 여기였어.”

혼자서 여행이라니! 가출이라도 한건가? 아니, 도망친 노예인지도 모르겠다. 동굴이라면.. 그래, 동굴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도망친건가?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그래.. 가엾게도.. 그래도 이젠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

무슨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있다. 응.. 그러니까, 그래. 동물을 길들일때는 음식으로 하는게 가장 좋다고 했다.

“아까 그거 맛있었지? 나랑 같이 마을에 갈래? 더 맛있는거 많으니까.”

“좋아!”

후후, 나에게도 인간 애완동물이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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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1 06:58 | 조회 : 39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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