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유아기 - 아기의 슬로우 라이프

3인용정도 되어보이는 식탁 주위에서 초췌한 표정의 부부가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매일 저녁 봐왔던 풍경. 다른 점이라면 저 빈자리에 내가 없는 것 뿐일까?

묵묵히 밥을 먹기 위해 손만 놀리던 여인의 젓가락이,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감자 조림 앞에서 멈춘다. 차오르는 슬픔을 참는듯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니까 병원에 계속 있게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 아이가 원했던 일이야. 당신도 결국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래도.. 그래도 만약에 병원에 있었더라면, 혼자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적어도 가는 순간에 옆에 있어줄 수는 있었을텐데..”

미안해요 엄마, 나는 마지막까지 엄마를 슬프게만 했구나..

“그 아이 평생에 하나 밖에 없었던 부탁이잖아. 처음 학교에 가서 친구를 만들었을때, 바로 앓아 누웠지만 기뻐하던 모습 기억나지? 분명 지금도 저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있을거야. 그래, 분명히.. 똑똑한 아이인 만큼 행복해 질 거야..”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듯 자신을 타이르는 아빠의 표정은 희망적인 말과 달리 침울하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미래도 없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 두분. 마지막까지도 나를 걱정해 주시고 나를 위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듯 했지만, 동시에 나에겐 너무나도 과분한 따뜻함을 느낀다.

“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난 이제 괜찮아요. 처음부터 두분이 계셔서 외롭지 않았고, 더이상 아프지도 않아요. 왠지 모르지만 다시 아기가 되어서.. 잠깐 아기?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 난 분명 다시 아기가 되어서.. 모르는 여인의 품에 안겨서.. 그러고 보니 이 따뜻함도, 응, 왠지 푹신푹신하다.

천천히 눈을 뜬다. 어제 본 여인이 평화로운 얼굴로 나를 안고 자고 있다.

그래, 어제 믿을수 없는 현실을 인지하고는 왠지 그냥 생각하기가 귀찮아져서 그냥 멍해졌더니 잠이 들었나 보다. 나답지 않은데..

한번 손을 들어본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꽤나 힘이 들었지만 이 몸에 익숙해 져야 한다. 시야에 들어 오는 것은 내 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통통한 손.

하긴, 내가 아기가 되었다면 어제 그냥 자버린 것도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지금도 생각을 이어가기가 힘든걸. 왠지 방금 일어났는 데도 자고 싶고..

그래도 계속 자기만 할수는 없으니 생각을 계속한다. 아니, 아기로서 계속 자도 괜찮은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여인은 분명 나를 낳아준 엄마일 것이다. 전생의 부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는 이 사람을 엄마라고 불러야 겠지. 마음같아선 언니라고 부르고 싶지만, 역시 그러면 안될것 같다.

방 안을 한번 둘러본다. 몸을 뒤집기도 힘들어서, 고개만 돌려서 보이는 곳만 살펴본다. 나무로 된 집에, 목재 가구 몇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이 이불도, 보통 내가 사용하던 재질이 아니다. 무슨 동물의 털 같은데, 부드럽고 따뜻하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 마치 영상으로만 봤던 숲속의 오두막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하던 게임에도 이런식의 집이 있었지.. 사냥꾼 엔피씨가 살던 집이였던가? 아무리 봐도 보통 도시의 집안 풍경은 아니다. 일단 한국은 아닌거 같고, 내가 모르는 외국이라도 시골이 아닐까 싶다. 뭐 정확하겐 모르는데..

“#@$%^#?”

내가 뒤척여서인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가 나한테 뭐라고 한다. 다시 봐도 참 예쁜 사람이다. 특히 나를 보고 웃는 표정이 아름답다.

엄마 뒤에서 부스스 하는 소리가 나더니 어떤 남자가 나타난다. 거칠어 보이는 인상. 볼에 난 큰 흉터를 포함하여 무서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눈빛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엄청 풀어졌으니까. 그 무서운 얼굴이 이렇게까지 풀어질 수 있다는게 놀랍다. 뭐, 무서운 표정보다는 났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난 바로 울었을 것이다. 이래뵈도 나, 아기고...

“$#$@$”

엄마가 뭐라고 하는거 같지만, (어차피 못알아 듣지만) 들을 사이도 없이 몸이 번쩍 뜨는걸 느낀다. 악, 너무 가까워, 가깝다고.

아마도 아빠인 남자가 나를 들고서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자연스럽게 나도 그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눈썹 꼬리가 올라간 사나운 인상. 볼에난 큰 흉터를 제외하고도 자잘은 상처가 여러개 얼굴에 나있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미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왠지 모자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 이건 표정 때문에 그런가?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건, 시원하게 뒤로 넘긴 파란색 머리카락. 그러고 보니 엄마 머리도 초록색이였지.. 파란색도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머리색으로 아는데, 부부 동반으로 염색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하고 내 머리색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물어보고 싶어도 말도 안통한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안그래도 풀어진 표정이 더욱 기이하게 변하면서 내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비기 시작한다.

아니, 아프다고!! 수염에다가 거친 피부까지 내 아기 피부에 닿자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른다.

“응애 응애”

쿵!

뭔가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고통이 멎는다. 난 다시 엄마 품에 안겨 있고, 아빠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머리를 감싸안고 있는 걸 보니 머리를 맞은 것 같은데, 방금 소리가 머리를 때려서 난 소리라고?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나를 보고 다시 웃고 있는 엄마를 보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뭐, 괜찮겠지, 튼튼해 보이고..





아기로서의 생활은 평화롭다. 일어나면 우선 먹고.. 배부르면 졸려서 또 자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없다. 그냥 일어나서 먹고 또 자는거다.

생각하기도 힘들어서 그냥 이 일과를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몇일..

최근에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건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아마 먹고나서 바로 또 자서 이런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긴 고민인데,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라니!!

그래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전생, 병 때문에 시한부라는 것을 선고받고, 정말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하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 주셨고, 학교에서 만난 친구과 보낸 시간은 즐거웠으며, 게임도, 공부도..

생각해 보니, 난 너무나도 하고싶은게 많았다. 아마 할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고싶은게 많았고, 그게 이룰수 없는 꿈이란걸 알았기에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은, 아무리 대리만족이였을 지라도, 분명히..

''''''''즐거웠지.''''''''

하지만 내가 정말 환생한 거라면 이번은 다르다.

고른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들린다. 전생의 약한 내 몸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확실하진 않지만 날 계속 괴롭혀 왔던 병은 이제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모두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나씩 전생에 포기해야만 했던 꿈을 하나씩 나열해 본다.

우선 내 발로 뛰어보고 싶었다. 숨이 찰때까지 달리고, 그렇게 달려도 죽을만큼 아프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보고 싶었다. 멀리갈 필요는 없었다. 그저 매일 보던 창밖의 나무와 하늘이 아닌 세상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니 이건 아닌가?''''''''

생각해보니 세상의 경치는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많이 접했었다. 처음에는 감탄했었지만, 그것도 보다보니 질렸었다. 게임할 때도 그래픽 보다는 게임성을 중요시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실제로 보면 다를거야!''''''''

우선 세상구경은 ''''''''하고싶을 지도 모르는 일'''''''' 에 넣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그렇게 절망하게 했던 한가지.

''''''''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지.''''''''

그때 난 겨우 10살이 넘는 어린 나이였지만,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고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항상 봐왔던 의사님들과 간호사님들. 그분들이 치료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기에. 나도 그분들처럼 되면 어쩌면 내 병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하나의 희망을 품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빠르게 지식을 흡수하는 나를 보며, 누구는 천재라고 했지만, 아마 그건 동정에서 나온 칭찬일 것이다. 그때는 우쭐해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천재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의사가 되어서 나처럼 아프고 희망이 없는 아이들을 치료하는것도 괜찮겠지.''''''''

그래도 내가 의학을 빨리 배웠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그 지식을 고스란히 갖고있는 현재, 어렸을 때부터 노력해서 의사가 된다면 불치병의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할 터. 그렇다면 많은 아이들의 잃어버린 미래를 내가 찾아줄 수 있을까?

''''''''아니면 과학자가 되어서 세상의 이치를 해명한다던가.''''''''

의학을 배우며 과학도 함께 공부했었다. 둘다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학문인 만큼, 두 가지를 다 배우는게 권장되었었고, 나도 그렇게 배웠다.

''''''''생각해보니, 과학을 배울 때가 더 즐거웠었지.''''''''

아마 나의 병을 고치고 싶다는 목표가 없었더라면, 과학에 더 빠져들었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가설 몇가지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게다가, 이제는 이런 현상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어!''''''''

세상을 보며 모든것을 알게 된다.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조금 이기적인 말이지만, 내 병을 치료할 필요가 없는 이상, 이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게임도.. 즐거웠었지.''''''''

전생에 게임은, 어느 때부터 나의 어두컴컴한 인생의 유일한 빛이였다. 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그게 즐거웠다는 사실 하나만은 부정할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밝게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어.''''''''

전생의 부모님은 어느때부터인가 나를 보고 웃었지만, 그 뒷면은 항상 그늘져 있었다.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을 봐왔던 나로서는, 숨겨져 있던 이 그늘을 볼수 있었다. 슬픔, 걱정, 그리고 그것을 상대가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겉면에 나오는 웃음. 그런 표정이 너무 아파서, 나는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어느새 나도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같은 웃음을 겉에 보이고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침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내뿜는 감정은 무한한 행복.

''''''''응, 한가지는 벌써 이룬것 같지?''''''''





일단 목표가 정해졌으니, 지금 할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우선 새운 목표는 혼자서 걷는것, 그리고 말을 할수 있는 것 이 두가지이다.

걷는 거는, 일단 뒤집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엎드려서 팔을 땅에 짚어서 일어나서 걷는것! 그것이 우선 목표이다. 근데 이게 꽤 어렵다.

처음에는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 조정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런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닌것 같다. 아기의 몸이 원래 이런건지 힘이 참 없다. 그렇다고 힘을 기른다고 무리하게 운동이라도 하면 성장에 안좋은 영향이 갈까 두렵고.. 결국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뒤집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말은.. 우선 소리를 내는 것은 할수 있다.

거기에 마~ 라던지 아~ 라던지 같은 몇가지 발음도 가능하다. 불가능한 발음도 많이 있었지만 연습만 하면 될것 같다. 여기서 문제는 역시.. 언어를 모른다는것.

결국 말을 배워야 하는데, 뭐 해결법은 간단하다. 엄마한테 배우는것.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아빠는 저녁에 돌아와서 아침에 다시 나가지만, 엄마는 하루 종일 나와 붙어 있으니 사실 이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말을 가르쳐 달라고 하느냐인데...

“마~~마~~”

엄마의 관심이 나에게로 오자, 말을 걸어본다. 마 발음은 아마 세계적으로 모친을 뜻하는 발음이였지 아마.

“$$#@#%@#”

응,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른다.

“$@#$$ 마 @#!@#”

“마?”

응, 아무래도 어떻게든 통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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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2-30 13:10 | 조회 : 35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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