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게임이 너무 즐겁다.

어두운 방에서 작은 체구의 소녀가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밤인 것을 고려하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또래의 아이가 보면 "넌 뱀파이어냐?" 라고 할수도 있을만큼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고, 온 몸은 땀에 젖어있다.

자고있는지 깨어있는지 알수 없는 소녀는 떨기도 하고 경련도 하면서 영영 끝나지 않을것 같은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짹짹


창문 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빼놓지 않고 들려주는 새씨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눈을 뜨니 이미 익숙해진 나의 방이 보인다. 침대, 장롱, 책상과 그위에 컴퓨터만 올려져 있는 간단한 방. 15세 소녀의 방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나에겐 이것만 있으면 된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을 일으켜 꺼져있는 모니터의 전원을 킨다.


''어제는 특별히 많이 아팠지. 오늘 살아있는것도 기적인가?''


그러나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자, 재미있다는듯 살짝 웃으며 일어선다.

매일 했던것처럼 수건을 들고 샤워방으로 들어간다. 땀에 젖어있는 몸을 깨끗히 씿어내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 요즘들어 매일 이런걸 보면 얼마 남지 않았겠지.


빠른 샤워를 맞추고 평상복으로 갈아입는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머리를 말릴 필요도 다듬을 필요도 없다.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언제나 하던 것처럼 게임에 접속한다.

내가 접속했다는 메세지가 뜨자 인사해오는 길드원들에게 적당해 대답해 주면서, 오늘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한다.

''어제는 파프니르 20퍼아래까지 갔다가 타임어택에 실패했었지.''

파프니르는 이 온라인 게임의 레이드 보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최소 20인 이상이 잡도록 만들어진 레이드 보스를 혼자 잡으려고 도전 중이다.

어떻게 레이드 보스를 혼자서 잡는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 게임의 밸런스가 똥망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액션이 넘치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특징인 이 게임은, 나는 그래서 빠져들었지만 조작이 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초보랑 고수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고, 유저유입은 그에따라 어려워져갔다. 개발자는 그에 대한 해답으로 누구나 할수 있게 보스들을 점점 쉽게 만들어갔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혼자 20명분을 할수 있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타임어택이 파프니르의 체력이 20퍼센트 이하로 내려갔을때만 나오는 만큼 여기까진 겨우겨우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이 마지막 구간에 도전하려고 한다.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능성을 보았고, 그랬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즐거우니까.


바위투성이의 산악지대를 날아서 넘어가자 파프니르의 둥지로 가는 포탈이 보인다. 주저없이 들어가서 쌍검으로 약한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나아가다 보니 네발로 서있는 거대한 드래곤이 보인다.


파프니르 (100레벨)


길이가 100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서양식 드래곤. 그 위에 떠있는 이름은 내가 길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최대한으로 강화된 쌍검을 쥐고서,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 몬스터가 할수 있는 공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대처방법도 다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탱커나 아군의 도움 없이 상대하는건 다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전에 대처방법을 이미 다 알아냈다. 오늘의 목표는 20퍼 이하에서 최대한 피를 깎는것. 죽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진 않는다. 한번에 할수 있다면 모두 불가능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우선은 전에 했던 것처럼 20퍼센트까지 가야한다. 그 이후는 생각해 놨던 대로...

여기까지 생각한후 파프니르를 향해 한걸음을 걷는다.


쿠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드래곤의 포효가 모니터를 통해 나에게도 전해지는것 같다. 나의 캐릭터도 그에 응답하듯 그에게 뛰어든다.

빠른 움직임으로 드래곤의 사각으로 돌아가서 빠른 찌르기를 가한다. 찌르기로 외피를 약하게 하면 다음 공격으로 조금 더 데미지를 줄수 있으니 전투의 시작을 알리기엔 딱 알맞다.

탱커가 없으니 당연히 드래곤은 사각으로 돌아간 나를 공격하기 위해 거대한 몸을 비튼다. 때로는 공격 타이밍에 맞춰 회피를 하고, 때로는 공격이 오지 않는 장소로 이동하며 공격을 이어나간다.

컨트롤이 어렵다고 소문난 게임인 것처럼,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의 공격을 최대한의 효율로 이어나가는것도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데, 거기에 나만 보고 공격해대는 드래곤에게 반응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나를 도와줄 아군도 없으니, 한번 실패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는 상황. 게다가 파프니르는 레이드 보스인 만큼 체력이 많아 넘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즐겁다. 약해서 금방 죽는 몬스터보다 강하고 잘 죽지도 않고 나를 항상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는 적. 그래서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위해 연습과 실전을 반복하며 한걸음씩 나아가는것, 그것이 너무나 즐겁다.


그것은 아마 대리만족일 것이다. 10살때 시한부 판정을 받은후 희망이 없던 삶. 아니, 아마 그 전부터 시한부 인생이었을 것이다. 내가 몰랐던 것 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희망이 없는 삶이었다. 살아보고 싶어서, 내 몸을 갉아먹어가는 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공부도 해보았다. 나를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의학계에서 불치병으로 판명난 병을 십대 초반의 천재 소녀가 치료법을 발견한다? 어디 소설에나 나올법 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노력이 뒷바침해 주어야 한다.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던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노력을 할수 없다. 이 약한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만에하나 이 몸을 이끌고 어떻게 해답에 가까워 진다고 하더라도, 이런 병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내려면 그만한 시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설을 겨우 10대 초반인 내가 사용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공부 끝에 내가 알게 된 것은 절망뿐. 왜 나에게는 미래가 없는가, 그에 대한 해답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끝내긴 싫었다. 공부하며 알게 된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고, 부모님을 졸라서 병원에서 나가게 되었다.

학교도 겨우 하루 나가고 나면 며칠동안 집에서 앓아야 했지만 몇번 나가보았고, 친구도 사귀었다. 그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이 게임이다.


나는 게임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가상이지만 환상적인 세계를 모험하는것에 두근두근했고, 다른 사람들이랑 캐릭터를 통해서지만 협동하고 소통할수 있는것이 너무 즐거웠다. 병원의 하얀 방과 창문밖의 잔디밭이 세상의 모두였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조금 다른것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전이었다.

너무 약해서 한번도 뛰어보지도 못한 내 몸과는 달리, 게임의 캐릭터는 내가 조작하는대로 움직여 준다.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제대로 조정하는 한 캐릭터는 나를 배신하지 않고, 모두 이루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터에 불과한 게임 캐릭터를 통해서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쌍검의 장점은 빠른 속도이다. 두개의 검을 사용한 빠른 연격은 그 속도만큼 괴랄한 조작 난이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즐겁다.

빠른 연격과 회피 속에서 최적의 행동을 찾아내고 실행한다. 구상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이 행동은 이미 반 이상은 무의식 적으로 이루어진다. 타임어택이 없는 지금은 안정성이 더 중요하니 그것도 반영해서 캐릭터를 조작한다.

거대한 몸집과 레이드 보스라는 이름이 아깝게 파프니르는 그렇게 조금씩 체력을 잃어간다.





거대한 드래곤이 울부짖으니 힘의 파동이 전 화면을 덮는다. 새하얘진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5퍼센트 인가?''

도전은 실패했다. 드래곤의 체력을 5퍼센트 남기고 주어진 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길수 있다는 가능성.

5퍼센트의 체력은 작아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전체의 5퍼센트이지만 타임어택이 있는 구간인 20퍼센트 아래 구간의 4분의 1이다. 그 말은 곧, 타임 어택중에 지금보다 33퍼센트 더 많이 데미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보면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도 한계에 가깝게 공격하고 있으니 거기에 3분의 1만큼 더 공격하라니! 안그래도 저번에 너무 공격에 집중하다가 맞아서 한방에 죽지 않았던가.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고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해서 할수 있는 것을 하나씩 짚어본다. 적의 공격을 회피하기에 잃어버리는 시간을 빠른 회피기를 쓰면 조금이라도 줄일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타이밍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피격당해 죽을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그래도 레이드 보스나 되는 녀석을 혼자 잡으려면 넘어야 할 벽일 것이다.

게다가 이것만으로 부족한 데미지를 채울수 있느냐? 그건 아니다. 나는 추가로 할수 있는 것, 그리고 이번에 실수한 것을 하나 하나씩 짚어가며 다음 도전을 어떻게 하면 성공으로 이끌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 이제 나온거야? 파프니르 솔로 도전한거지? 어땠어?”

“우리도 궁금한데 방송이라도 켜지..”

던전을 나오니 길드원들한테서 메세지가 들어온다. 학교에서 게임을 추천해준 친구들을 따라서 가입한 길드원들은 모두 나에게 잘 대해준다. 초보때는 모두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같이 모험도 했었지. 요즘은 솔플로 이것저것 도전하느라고 혼자 놀긴 했지만,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준다.

“응, 5퍼센트까지 봤는데, 타임오버됐어.”

“그래? 야, 그런데 그러면 다음 번에는 정말로 깨겠다? 레이드몹을 혼자서 깨다니, 이거 영자한테 밸런스 패치좀 해달라고 건의해야 하는거 아니냐?”

“아니 그걸 아무나 깰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라면 99퍼센트에서 죽을껄? ㅋㅋㅋ 그리고 5퍼센트면 그것도 꽤 어려울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다음에 방송은 꼭 켜줘, 응?”

마지막 애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중 한명인데, 왜 이렇게 방송에 집착하는 걸까. 뭐 원한다면 못해줄 것도 없지만.. 지금은 좀 쉬고싶다.

“응, 그럴게. 그럼 난 이만 가본다~ ㅂㅂ”

요즘 병세가 더욱 심해져서 그런지, 한번에 몇시간씩 게임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 집중하고 있을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만큼 집중이 끝나면 한번에 증세가 몰아서 나타난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것 같다. 그냥 쓰러지려는 몸을 이끌고 침대로 걸어간다. 한참 누워있다보면 또 괜찮아 지겠지...


끝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니 부정적인 생각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이 아픔은 매일 겪는다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 죽는걸까? 아니면 얼마나 더 오래 살수 있을까? 의사가 말해줬던 시간은 이미 끝났다. 이미 언제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무섭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즐거운 일도 있었는데, 이젠 할수 없다는 아쉬움.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이 아픔은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여러가지 생각이 대치하는 한 가운데 압도적으로 강한 감정은 두려움.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떨치려는 것처럼, 죽을땐 죽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생각을 하고 싶다는 것처럼, 나는 파프니르와의 다음 싸움에 한번 더 대비한다.





쌍검을 든 소녀가 거대한 드래곤 앞에 선다. 드래곤의 몸에는 크고작은 상처가 나 있지만, 아직 굳건히 서있고, 붉어진 두 눈에서는 살기가 넘친다.

검은 마력이 드래곤의 몸 주위에 휘몰아치며 마지막 공격이 곧 있을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 없다는듯, 소녀는 허공을 뛰어다니며 드래곤의 상처를 헤짚는다. 마치 어떻게 해야 그의 가장 아픈 곳을 공격할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의 분노를 피할수 있는지 다 안다는듯, 빠르게 움직인다.

100미터 길이의 드래곤과 1.5미터는 될까하는 키의 소녀. 그 싸움은 꼭 사람과 파리의 싸움 같은 외형이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드래곤의 몸에 상처가 하나 둘씩 늘어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 쓰러질거 같은 드래곤은, 거대한 산 같았던 전 모습과는 다르게 이미 넝마와도 다름없다.

하지만 드래곤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는 것 같더니 그 큰 아가리가 크게 벌려진다.

브레스

그냥 브레스가 아니다. 주위에 소용돌이치던 검은 마력이 벌려진 입 안에 집중되는가 싶더니 마지막 공격이 발해진다. 곧 쓰러질 듯 한 드래곤에게서 거대한 힘의 파동이 나오며 세상을 덮는다.

새하얘진 세상 속에서 작은 검은 인영은 찢어지는듯 하더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 순간, 마지막 경련과 함께, 침대 위에 누워있던 창백한 소녀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즐거운 일을 생각하고 싶었던 그녀의 소망때문이었을까, 그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지만, 눈에는 작은 눈물이 한방울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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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2-27 05:34 | 조회 : 447 목록
작가의 말
응가견

환생하려면 일단 죽어야 하겠죠? 조금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전체적으로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연출해보고 싶습니다. 처음 써보는 글이라 부족한게 많겠지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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