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오르지 못 할 나무

상석에 앉아 황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아드리안의 큰 태양은 수잔나 제1황녀를 안아들며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했다.

수잔나 황녀의 옹알거리는 입모양이 너무나 작고 귀여웠으며 인형같은 미모를 가져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제 아비에게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에 황제는 심장이 뻐근한 듯 수잔나 황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였다. 역시나 두 부모 중 어미를 닮아 그대로 빼다박은 것처럼 이목구비가 황후와 닮아 있었다.

또한 머리는 아직 덜 자랐지만 은발에 청안으로 부성애가 끓는 작디 자은 아기였기에 보는 내내 황제는 행복에 겨웠다. 자신이 그리도 원하던 아내를 닮은 딸이었다.

황제는 생각했다. 나의 아름다운 황후와 같이 잘 자라주렴, 사랑하는 내 딸 수잔나.

"아바 마마."

어느새 다가온 황태자를 본 황제는 고갤 들어 목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황후는 이미 황태자가 에스코트하며 데려온 여인이 굉장히 미인이어서 아이작 여대공 말고도 이 여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가에 궁금해 할 때였다.

"아니, 검은 성녀가 아니오?"

황제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그녀는 황제에게 올리는 예를 취했다.

"예, 황제 폐하. 이렇게 인사올립니다. 헤른 왕국의 사절에 제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너그러히 이해해주시길."

"아, 아니오. 성녀께서 자유로이 드나듬은 제국에서도 반기는 바이오. 그러나 놀래기는 했소만."

이야기를 듣던 황후는 황제의 놀란 가슴을 가라 앉히라고 자신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어머, 헤른 왕국의 검은 성녀님 이시군요? 반가워요. 황태자와 함께 오시기에 오해를 할 뻔했네요."

"예. 황후 마마. 예비 황태자비 자리를 염려하셨나 보군요. 황후 마마께선 수잔나 황녀님을 낳으시고 몸조리는 잘 하셨는지요?"

"그럼요. 덕분이에요. 수잔나 황녀가 제 나이가 되서도 건강히 태어나주어서 저 또한 건강에 지장없이 쾌유할 수 있었어요."

"경하드립니다, 황제 폐하, 황후 마마. 그리고 황태자 전하께도요."

검은 성녀는 생각했다.

수잔나 황녀님께서는 신룡의 가호가 있었군요?

"아바 마마... 검은 성녀님께서는 저희 황궁에서 더 머물기를 청하시옵니다."

"오, 그렇다면 당연히 황궁의 귀빈으로써 모셔 드려야지. 헤른 왕국의 검은 성녀가 우리 제국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황태자가 잘 도와 드리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바 마마."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둘은 흡족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헤른 왕국의 사절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에스코트를 하여 걸어갔다.

황태자와 검은 성녀가 빛나는 모습으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으니 그 앞의 귀족들이 서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국의 영애들은 정체 모를 여인이 황태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걸어가자, 부채를 휘어 잡으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번엔 온통 까만 것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이었다.

디아비아나 왕국의 공주도 모자라, 저 여인도 꽤나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 영애들은 자신의 미모가 한참 모자란 것에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런 미모의 여성들이 오늘 한꺼번에 참석한 것인지!

그러나 황태자 옆을 차지한 여인이 검은 성녀인 걸 안 정보력이 뛰어난 고위 귀족의 여식이자 사교계의 꽃인 베타르슈 공작의 외동딸, 핑크빛 금발의 녹안을 가진 미인인 프리스틴 공녀는 울분을 토하는 자신의 무리들에게 염려 말라는 듯 부드럽게 말을 흘렸다.

"아, 저 분은 헤른 왕국의 검은 성녀님이 아니십니까? 소문대로 우아하시고 매우 아름다우시네요. 호호. 이 연회에 참석하신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 했는데 말이죠."

검은 성녀의 제국 방문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자신은 괜찮다는 듯 말을 하는 프리스틴 공녀의 표정은 정말 멀쩡하게 보였다.

그러자 백작가 여식 중 한 명이 놀란 눈빛으로 공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나! 공녀님께서는 저 여인을 아시는 군요? 검은 성녀라면... 그 유명한 어둠의 신의 성녀가 아닙니까?"

프리스틴은 살짝 미소지으며 끄덕여주었다.

"아... 어둠의 신을 모시는 성녀라니. 뭔가 꺼림칙해요."

"성녀님이시니 황태자 전하께서 저리 대해주시는 거군요!"

영애들은 프리스틴 공녀의 말에 작게 속닥이며 부채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프리스틴은 자신의 계획대로 영애들이 검은 성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것에 흡족해하며 사르르 웃었다.

"네. 그럼요. 그러니 황태자 전하께서 성녀님의 에스코트를 하시는 건 문제가 아니죠. 소문대로 검은 성녀님께선 검정색 일색이로군요. 언제나 빛이 나시는 황태자 전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이군요. 황태자 전하께서 저렇게 헤른 왕국의 귀빈을 에스코트 해드리는 건 다름 아닌 검은 성녀님이어서 이지 않겠어요? 호호홋-."

화려한 부채로 올라가는 입가를 가리며 조신하게 말을 전달하는 프리스틴 공녀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황제파 귀족의 영애들이 그제야 표정을 풀며 같이 호호- 웃기 시작했다.

검은 성녀.

성녀는 황태자와 저렇게 에스코트를 받으며 다녔지만 그녀는 검은 성녀였다. 그 단어만으로도 그녀를 경계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판단되었다.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여인이지 않은가. 비록 어둠의 신일지이만...

"헤른 왕국의 사절에 아이작 여대공 저하께서 홀로 다과를 드시고 계시네요?"

백작가 영애가 세이르를 탐색하며 프리스틴 공녀에게 말을 전달했다.

공녀는 이게 왠 떡? 아이작 여대공에게 눈초리를 휙 돌렸다.

"어머, 저하께 한 번 가봐야 겠군요. 혼자 계시려니 적적하실 거에요. 다들 여기서 이야기 나누세요."

프리스틴 공녀가 자신들의 무리를 떼어 놓고 홀로 있는 아이작 여대공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공녀는 황태자와 검은 성녀가 천천히 아이작 여대공에게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아이작 여대공에게 바로 아는 척을 해왔다.

"어머. 아이작 여대공 저하께 인사올립니다. 절 기억하시는 지요, 저하?"

세이르는 눈을 껌뻑이며 갑작스런 프리스틴 공녀와의 만남에 말문이 막혔다. 먹고 있던 다과 중 씹고 있던 쿠키를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기억하지요, 베타르슈 공작 가문의 프리스틴 공녀."

그러자 프리스틴은 자신의 핑크빛 금발을 살짝 귀 뒤로 넘기며 남심을 흔드는 사르르 녹는 미소를 띄어 보였다.

뭐지, 이 공녀는?

"기억해주시니 너무 감사해요! 여기서 홀로 계시기에 이 곳에서 적적해 하실까봐 제가 이렇게 발걸음 하였답니다. 저하께 말동무라도 되어드리기 위해서 말이에요. 이런 제 마음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거절하셔도 좋아요."

프리스틴의 입무새가 아래로 살짝 쳐지며 귀엽게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세이르는 이 공녀가 적응이 안 되 그 모양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저하-."

순간 정신이 돌아왔으나 멍한 표정을 지은 세이르였다. 태도 변화가 참 신기로울세.

"예, 공녀."

"표정이... 화가 나셨나요?"

세이르는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프리스틴 공녀는 세이르가 화가 나있다고 몰아가며 자신을 동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공녀가 이리 와준 건 나쁘지 않지만 공녀가 새삼 나를 찾아와주니 신기해서 말이야."

"호호호-. 전 언제나 여대공 저하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기회를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프리스틴 공녀의 녹안이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그녀는 세이르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세이르는 그녀가 탐탁치 않았지만 간단히 대답만 해주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그 기회겠군."

"네. 저하께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하고 특히... 전하와 함께 있으시는 걸 보니 저도 감히 두 분과 친해져 보려고요."

"음? 전하와...?"

"어맛, 조금은 놀란 눈빛을 하시네요? 호홋-. 제가 황태자 전하를 연모하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음... 그렇지."

"여대공 저하께선 전하의 스승이라서 전하와 친분이 두터우시니... 저도 함께 저하의 옆에서 전하와 함께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금의 시간이라도 좋아요."

"내가 멋대로 정해도 될련지 말이지."

"황궁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걸 알아요... 저하의 허가만 있어도 전하가 계시는 바다궁으로 함께 갈 수도 있지 않나요...? 제가 알기론 황궁 출입 허가가 자유로운 건 대신들뿐이잖아요. 저는 고위 귀족의 영애고요. 여대공 저하께서 절 데리고 다니시면 정말로 정말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글쎄, 내가."

"아니면 이런 황실 연회에서만이라도 저와 전하를 떼어놓지만은 마셔요... 제가 저하와 함께 있으면 전하를 더 가까이 뵐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러나 공녀는 나와의 거짓 친분을 이용해서 전하의 마음을 얻겠단 말인가?"

"앗."

공녀는 속내를 너무 드러내었나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태자의 관심을 받고 싶은 건 세이르도 이해한다만 내심 무섭지 않은가.

공녀는 차가운 황태자의 마음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와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황태자가 검은 성녀를 에스코트하여 가까이 왔다. 가까이서 보는 황태자가 너무나 좋았는지 공녀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만의 사르르 녹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베타르슈 공작가의 프리스틴 공녀가 지고하신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아, 프리스틴 공녀. 어서오게."

"전하, 제가 여대공 저하와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황궁에도 데려가신다고 약속도 해주시고요! 전하와 앞으로 더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너무나 황공하옵니다."

"아이작 여대공이 공녀와 함께?"

무슨 말이냐는 듯 프리스틴 공녀에게 차갑게 눈빛을 날리던 에드워드는 고갤 돌려 세이르를 쳐다보았다.

황궁에 공녀가 들락날락 거리면 이건 가십거리가 될 확률이 높았다. 예비 황태자비가 미리 정해졌다라던가...

세이르는 없는 말을 꾸며낸 이 공녀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필시 그녀의 짝사랑은 이루어질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냉대에 상처를 받을 것이다.

어디 한 번 애를 써보라지.

그녀가 체념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세이르는 그녀의 말대로 자신과 황태자가 함께 있는 시간에 공녀도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겠다 생각했다.

황태자의 에스코트를 거둔 검은 성녀는 프리스틴 공녀를 뚫어지게 보더니 살짝 삐뚤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은 성녀는 귀빈 자격으로 바다궁과 멀지 않은 귀빈실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성녀가 원하는 것은 세이르와 함께 여분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아무튼 세이르는 자신을 졸졸 쫓아올 프리스틴 공녀 때문에 귀찮은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잘 있어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헤른 왕국의 사절까지 만나보고 검은 성녀는 돌아가 자신이 눈에 안 띄게끔 신관들과 섞여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세이르에게 남은 사절단을 소개하려 이끌기 시작했다. 세이르는 자신의 뒤에 졸졸 따라오는 프리스틴 공녀가 그래도 사교계의 꽃이며 황제파 귀족 영애들의 우두머리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도 상관없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다.

에휴. 공녀나 공주나... 안쓰러웠다. 오르지 못 할 나무에 오르려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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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도 유희할래(자유연재중)-부제:세이르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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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18 23:25 | 조회 : 33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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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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