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깊은 심연의 공간.
이 이공간은 마신 악타온이 직접만든 쉼터이자 집무실 같은 공간이었다.
마신의 공간을 본 신들은 모두 그곳을 심연의 가장 깊은 곳,또는 끝이 없는 어둠이라고 칭했다.
그 이유는 이 이공간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고 끝도 시작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어둠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아야!아프잖아요!"
심연속에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와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시끄러워."
마신 악타온이 사납게 아레히스를 노려보자 이레히스가 불만스럽게 눈을 좁히며 악타온을 노려봤다.
"칫,율과 이야기한게 그렇게나 질투나세요?유치하시긴."
아레히스의 도발에 악타온은 한쪽 입고리를 쓱 올리더니 왼쪽 손에 검은 신력을 집중시켜 구의 형태를 한 신력덩어리를 그대로 아레히스에게 날렸다.
"으아아아악!그런거 날리시면 죽는다고요!"
"그럼 죽어야지,죽으라고 날리는건데."
아레히스는 빠르게 붉은 신력을 응집시켜 검은구를 상쇄시켰다.하지만 악타온 마치 그렇게 할줄 알았다는 듯이 검은구를 몇개 더날렸다.
"하나뿐인 동생을 죽일생각이세요?!"
아레히스는 빠르게 붉은 신력을 이용해 빠르게 반투명한 결계를 만들어 검은 구를 막았다.결계가 검은 구를 막고 빠르게 부서진걸 본 아레히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하나뿐인 동생이자 내 사자(使者)가 왜 이렇게 죽고싶어 환장할까."
"죽고싶지 않은데요.전 오래 오래 율이랑 오래살거라서요."
한쪽입고리를 올리며 약올리는듯이 아레히스는 악타온을 보고 웃었다.그러자 악타온은 똑같이 웃으며 손을 올리자 거대한 검은 구가 잔뜩 공중에 뜨면서 검은 스파크가 튀었다.
"어,잠깐 그건...!"
"죽어."
악타온은 살벌하게 웃으며서 검은구를 흘러보내듯이 아레히스쪽으로 날려보냈다.
쾅가가강!
엄청난 폭음소리와 회뿌연 안개가 검은을 공간속을 헤엄치듯이 퍼져나가고 그 속에서 마신 악타온은 눈한번 움직이지 않고 작게 혀를 찻다.
매우 아쉽다는 듯이.
"에고고.정말 소멸당할 뻔했잖아요."
회뿌연 안개가 사리지고 연기속에서 나온 아레히스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악타온과 같은 흑발이 어깨에서 흔들렸고 동공을 구별하기 힘들정도로 눈동자가 칠흑같이 검은색이었다.동글한 눈매는 악타온처럼 날카로웠고 마족의 상징이 었던 인간보다 더 뾰족한 귀는 둥글게 변해 있었다.
"변신 안 풀었으면 저 죽었어요.하나뿐인 동생에게 정말 너무하시네요."
아레히스는 섭섭하다는 듯이 악타온을 바라봤지만 악타온은 오히려 다음 공격을 위해 검은구를 몇개더 손바닥에 뛰웠다.그러자 아레히스의 얼굴에 두려움이 비추어졌다.
"저 시킨일도 다했는데 너무하신거 아니신가요?"
"그걸 봐서 이정도로 하는거야,아니었으면."
악타온은 살짝 자신의 손바닥위에 떠있는 검을 구를 보다가 이내 다시 아레히스를 보며 곱게 눈을 접고 웃었다.
"알지?"
"네..."
아레히스는 악타온의 머리위에 거대한 검은 구를 보며 창백하게 질린얼굴로 한채로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아레히스의 반응을 본 악타온은 피식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검은 구를 간단히 소멸시켰다.
"인장 주는거 잊었으면 큰일날뻔 했네요."
"하지만 내가 시킨건 두가지 일이 었는데,왜 하나만 했을까.분명 인장을 전해주고 정식으로 내가 선택한 교황으로서 마신전으로 고히 모셔라고 했을텐데."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싸늘하게 그지없는 악타온을 보며 아레히스는 살짝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칫,하지만 그 작은 아이가 형님을 만날려고 애쓰는게 귀여워서 차마 방해할수가 없었어요.얼마나 귀여운지 아세요?처음 볼때도 눈을 못땔 정도로 사랑스러웠는데 닿고 나니까 더 귀여운거 있죠."
눈을 빛내며 황홀하다는 듯이 사율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레히스를 보며 악타온은 속이 뒤집힐것같은 느낌에 고운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신계를 가두고 있는 시간의 힘만 아니었어도 강림(降臨)할수 있는데 이 빌어먹을 시간의 힘에는 신들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마신조차 거역할수가 없었다.
신계를 가두고 있는 봉인하고 있는 힘의 정체는 바로 영혼의 회랑의 시간의 힘이었다.
죽은자의 영혼이 잠시 명계를 거친후 영혼의 회랑으로가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로 영혼에게 맞는 육체로 환생하게 된다.그때의 기억은 영혼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저장하기 때문에 시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힘이 신계 전체를 감싸고 역류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닿았다가는 아무리 영원의 시간을 사는 신이라도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소멸할수가 있다.
시간의 힘이 언제부터 신계를 봉인하고 있는지 신계를 창조한 주신(主神)판테온 조차 모르고있을 정도로 어느날부터 있었다.
마신(魔神)악타온은 지금까지 그걸 불편하다고 느낀적은 없었으나 지금 만큼은 짜증나고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아이를 만나서 이 정체모를 감정을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호기심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그 아이 자체를 만나고 싶었다.
꿈속에서는 분명 닿은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울고 있는 은빛눈동자의 아이의 손은 분명하게 뺨에 닿았다.닿았을때 닿은 뺨이 무척이나 뜨거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영혼의 회랑의 봉인이 통하지 않는 반신(半神)인 아레히스를 보냈건만 아레히스는 인장만을 주고 돌아올 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율과 만나고 싶어하던 악타온이지만 사율이 자신과 만나고 싶어서 마계에 그것도 중앙 아카데미까지 들어갔다는걸 들었을때 묘하게 가슴이 간질거리고 기분이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빨리 만나고 싶을걸 참을수 있었다.원래 성격 같았으면 억지로 라도 데려왔었지만 사율에게만는 강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율이 중앙 아카데미에서 다쳤다는걸 들었을때에는 분노로 정신을 놓을뻔 했고 연약한 인간의 아이가 마족보다 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악타온은 사율을 마신전으로 데려갈려고 했었다.
하지만 사율이 스스로 오겠다고 노력하는걸 무시할수는 없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을뿐이었다.
"그것보다 마신석은 형님이 만드신거 잖아요.그런데 그 마신석을 율이 흡수했고."
"그렇지."
핍박받는 마족들을 가엽게 여긴 마신 악타온은 조건하에서 자신의 힘을 쓸수있게 마족들에게 힘의 덩어리인 마신석을 주었다.
그것은 스스로 힘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앞으로 악타온이 따로 힘을 내려주지 않아도 마신석만 있다면 조건하에 힘을 가지고 사용할수 있었다.조건이 까다롭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거 신마력의 조건이 분명 첫번째가 신앙심이 었고 두번째는 힘을 받아드릴수 있는 육체,세번째가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잖아요."
"그렇지."
"그럼 마신석이 스스로 흡수될정도로 조건에 가까운자가 그냥 인간일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아레히스의 질문에 악타온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이야기하라는 눈으로 아레히를 보자 아레히스가 입을 열었다.
"율은 정령왕과 계약했더라고요."
계약이라는 말에 미세하게 악타온의 눈썹이 올라갔다.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본 아레히스는 히죽 히죽 웃으며 눈를 좁혔다.
"선수를 빼앗겼네요?그것도 신들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마신님이."
"넌 그 입이 문제야."
마신은 화사하게 웃었지만 이마에는 혈관마크가 생겨있었다.가뜩이나 사율을 만나고 싶었는데 선수까지 빼앗기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히익."
악타온을 감싸는 검은 스파크가 거세게 움직이며 아레히스를 위협하자 아레히스는 질린 얼굴로 서둘러 문을 열고 중간계로 넘어 갈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되지."
그 노력은 마신 악타온의 가벼운 손짓 한번으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아레히스는 애절하게 악타온을 바라봤지만 악타온은 마신이 지을법한 사악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드르륵
양호실의 문이 열리고 검은 교복을 입은 사율이 그 안으로 들어왔다.
"아,어서와요."
"아레히스?"
사율은 보건실에 들어오자 마자 보인 아레히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수 밖에 없었다.어디가서 싸우고 온 사람처럼 엉망징창이었기 때문이다.
"하하,또 놀리다 맞아버렸네요."
아레히스는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아레히스의 모습은 정말 엉망징창이었다.단정하게 어깨까지 아슬아슬하게 내려와 있던 붉은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쳐있었고 얼굴에는 자잘한 붉은 생채기이 잔뜩 있었다.
국보급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내 마음이 다아플 지경이었나.다시 한번 거듭말하지만 난 정말로 미인에게 약하다.
"그 머리카락 빗어드려도 될까요?"
일단 저 머리카락부터 윤기흐르는 머리카락으로 다시 만들어 놓자.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이거 놀릴거리가 또 생겨서 기분좋은걸요."
아레히스는 화사하게 웃으며 또 그분이라는 분을 놀릴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렇게 혼나시고도 또 그 높으신 분을 놀리고 싶으신걸까.가끔 보면 아레히스는 어른 같으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고다니는 작은 빗으로 아레히스의 뒤에서서 벗쳐있는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정리했다.다행히 머리결이 좋아서 빗질은 막힘없이 잘되었다.
"됬다."
깔끔하게 정리된 아레히스의 머리카락을 보며 흐뭇해하며 맡은 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국보급 얼굴을 감상했다.
역시 잘생겼다.좀 성스럽게 생기신거 같기도 하고.분위기 때문인가?
"고마워요."
"아니에요.제가 하고 싶어서 한건데요."
부드러운 미인의 머리카락은 정말 감촉이 좋았다.무척이나 만족스러울 정도로.
"자,그럼 신마력에 다루는 법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네."
사실 내 심장에 신마력이 흐르고 있다고 들었어도 나 자신에게는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심장이 뛰는것과 전혀 다를바가 없어서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
집중하면 힘을 꺼내는 것은 간단했지만 꺼내고 옮기는건 가능해도 힘조절이라던가 사용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율이 가장 원하는 형태,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에 힘은 그 모습과 성질을 결정해요.그러니까 중요한건 율의 의지인 셈이죠. "
내 의지라.어쩌면 신마력의 사용법은 내 언령마법과 가장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보통 마법은 마법을 발현하기 위한 주문인 시동어를 말해야하지만 언령 마법은 오직 강한 의지나 격한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발동할수도 있었다.
아레히스는 눈을 내리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있는 사율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저 노력도 아마 빨리 마신전으로 가고 싶어하기 때문이겠지.
"생각보다 직접해보는게 좋을거에요.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네."
사율의 시선이 아레히스를 향하자 아레히스는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이내 주먹에서는 홍옥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레히스가 손을 피자 불타오르는 듯한 나비들이 손에서 날아올랐다.
"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사율은 넑을 놓고 입을 벌리며 그 광경을 볼수밖에 없었다.
"이건 제가 바라는 형태를 신마력에 부여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낼수 있어요.여기다 어떻게 쓰고 싶은지 성질을 더하면 이 나비들은 공격용이 될수도 치료용이 될수도 있는거죠."
아레히스의 가볍게 손짓을 하자 나비들이 다시 그의 손으로 모여서 붉은 가루를 흝날리며 사라졌다.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사용하지 않은 힘을 다시 없애거나 흡수하는 일이에요.방금 제가 한것은 흡수하는 것이 아닌 신마력을 공기중의 마나로 분해시킨 것이랍니다.한번 밖으로 내보낸 신마력은 공기중에 마나를 변질시켜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흡수하는 일은 고위신관들이나 할수 있는 일이죠.하지만 율은 흡수해도 아무 문제도 없을거에요.오늘의 목표는 일단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하죠."
보통 신마력을 받은 마족들이 형태를 잡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지만 율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아레히스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빨리 율을 마신전으로 데려가서 둘이서 놀고 싶다는게 본심이었지만.
"이미지...원하는 형태."
상상력을 발휘해서 아무 동물이나 상상해볼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일단 유리구슬에 신마력을 넣을 때처럼 심장에서 힘을 빼보기로 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어떤 형태도 떠오르지 않았다.언령 마법은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로 만들수 없기에 변화나 변질이 가능한 마법이었지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어려웠다.
형태을 부여받지 못한 신마력들이 사율의 주위를 맵돌다.이내 멈추고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상상하자 원하는 형태를.지금 바라는 건 날카롭고 단단한것.
나의 의지에 따라서 신마력이 움직이는게 느껴졌다.손을 올려 신마력을 잡을려고 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빛을 내기 시작한 신마력이 엄청난 폭음을 내며 양호실의 벽한쪽을 날려버렸다.바로옆에 아레히스의 옆을 아슬아슬 하게 지나서.
"......."
망했어,사고쳤다!
"이런 창문이 커졌네요."
아레히스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신마력이 바닥에 엄청난 자국을 남겼지만 아레히스는 그저 창문이 커졌다면 즐겁게 웃고 계셨다.
저기요,아레히스.웃을 일이 아닌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교내의 기물파손이 벌점이 몇점이 더라....아마 벌점이 백점을 넘기면 퇴학이라고 했던것 같은데.
"하하,괜찮아요.율은 아무잘못도 없어서 굳이 따지지면 연무장으로 가지 않고 양호실에서 한 제 잘못이 크니까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엉망징창이 된 양호실을 보는 사율을 아레히스는 상냥한 목소리로 진정시켜주었다.
언제들어도 정말 부드럽고 듣기 좋은 울림의 목소리였다.몸을 안정시켜주는 하나의 선율같은 듣기좋은 저음의 목소리.
"그래도..."
"괜찮아요.어차피 전 신관이라서 아카데미에서 뭐라도 못해요.뭐라하면 확 때려쳐버린다고 협박하면 되죠.뭣하면 약점잡은 것도 있고요."
[유독 저 신관만 특이한건지 아니면 마신관들이 특이한건지 영모르겠단 말이지.]
아페는 진지하게 머리를 저으며 혀를 차는것 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런만 했는게 당당하다 못해 이제는 아카데미를 협박하겠다고 말하는 아레히스의 얼굴은 다정하기 그지없는 평화로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건 나중에 치워두라고 말해놓을게요.연무장으로 가서 연습해야겠네요."
아레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나는 망설임없이 내밀어진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맞잡은 손은 딱좋은 온도로 따뜻했다.마치 내가 좋아하는 목욕물의 온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