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나/비테 시점

케일룸의 신궁에 도착한 메디치나는 그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아버지와 딸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없다고 케일룸은 그녀에게 누누히 말했지만 메디치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케일룸은 씁쓸해진 입맛을 삼켰다.

"그래...무슨 일이냐."
"에디스에게 녹스의 아이가 붙었습니다."

녹스의 아이에 대해 이 신계에서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었다.
하급천사부터 신까지 모두 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케일룸이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깊은 한숨소리가 메디치나의 귓가에 닿았다.

'감히 그 아이 곁에 머물다니......주제도 모르는 것 같으니.'

그 아이란 물론 에디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메디치나는 에디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걱정과 마음은 한 순간에 돌아설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케일룸은 에디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인지라, 그 호감이 없었더라면 메디치나는 에디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었다.
메디치나에게 중요한 건 아버지인 케일룸이었지, 자신의 조카인 에디스가 아니었다.

"아버지, 처리할까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케일룸이 눈을 떴다.
그의 보라빛 눈동자가 메디치나에게로 향했다.

"아니, 됐다. 비테와 아모르도 아는 눈치였으니 에디스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면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대로 에디스의 선생이 되어 주거라."

메디치나는 자신의 오빠인 비테와 그의 아내인 아모르에게 맡긴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케일룸의 뜻이 정 그러하니, 할 수 없이 따랐다.
케일룸의 말이라면 단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말고는 부정의 말을 내뱉은 적이 없던 '인형'다웠다.

"이만 조심히 들어가 보거라."
"네. 아버지."

메디치나는 발을 들렸을 때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케일룸이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뒤를 돌아 나서는 메디치나의 눈에는 비춰지지 않았다.
케일룸의 신궁에서 나온 메디치나는 비테와 마주쳤다.

☆☆☆

메디치나는 케일룸과 우무스의 자식들 중에 넷째였다.
첫째였던 비테는 자신의 형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에디스의 선생인 그녀라면 에디스의 곁에 녹스의 아이가 붙었다면 분명히 케일룸을 찾아갈 것이었다.
그래서 케일룸을 찾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케일룸에게 아이에 대해 모조리 털어놓았다.
어쩜 예전이나 지금이나 케일룸밖에 모르는지, 비테는 싸늘한 눈으로 메디치나를 쳐다보았다.

"메디치나. 오랜만이구나."

비테를 바라보는 메디치나의 눈빛 또한 겨울 바람처럼 매서웠다.

"예. 오랜만이네요. 오빠."

피가 섞인 친남매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가 이어졌다.
한 차례 정적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적을 비테가 깼다.

"언제까지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 거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비테는 메디치나가 답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사람들은 신이 전지전능하여 실수 따윈 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그건 전설 속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일 뿐, 실재로는 아니었다.
신도, 천사도, 악마도, 모두 실수를 했다.
가벼운 실수부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중요한 실수까지.
하늘의 신이자 모든 신의 아버지인 케일룸 또한 똑같았다.
그도 실수할 수 있고, 무조건 정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디치나는 케일룸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뭐가 옳고 그른 지 분간해내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는 평생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뿐입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메디치나가 비테를 지나쳐 걸어갔다.

"메디치나, 네가 아무리 내 여동생이라고 한들, 내 딸 아이를 방해하거나 해를 가한다면 용서치 않아. 명심하도록 해."

비테의 말에 메디치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대답을 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비테는 메디치나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너와 싸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메디치나.'

그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지기라도 한듯 쌀쌀하면서도 애틋한 바람이 약하게 살랑거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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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2 17:26 | 조회 : 926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제 2주 후면 대학교로 새로운 출발이네요. 학생 여러분! 1년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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