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신과 타락 천사의 아이(2)

녹스와 스텔라는 그 뒤로 사적인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둘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한밤 중으로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고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녹스와 스텔라의 자의로 결정된 일이었다.
녹스는 아무리 주위애서 피하고 두려워한들 신이었고, 스텔라는 대천사보다 한 단계 아래인 상급 천사였다.
대낮에 함께 돌아다니기엔 그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이 날도 어김없이 스텔라와 녹스는 만났다.

"녹스 님."
"스텔라."

스텔라가 녹스에게 푹 안겼다.
키 차이 때문에 스텔라의 머리가 녹스의 가슴팍에 닿았다.
스텔라가 녹스에게 안긴 채 머리를 비비자 녹스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오늘은 길 안 잃었어?"
"조금 해매긴 했는데...다른 천사들이 알려줘서 괜찮았어요!"
"그래. 다행이네."

녹스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천사로 태어난 지가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길을 못 외운다고 수근거리는 말 때문에 스텔라가 상처를 입을까 봐.
하지만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스텔라는 그녀의 이름처럼 밝고 강한 사람이었다.
심각하게 모욕적인 말이 아니라면 스텔라는 생무시를 했고, 그 반대라면 빙결 마법으로 백년동안 얼음 속에 갇히게 만들었다.

"녹스 님, 사랑해요."

갑작스런 고백에 녹스의 몸이 송장처럼 굳어버렸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가 700여년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좋으면서 설랬고, 무섭고 두려웠다.
심장이 시계바늘처럼 동일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녹스는 자신의 심장 위치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너머로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녹스의 현재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

"스텔라...분명 주위에서 반대할 거야. 심지어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래도...날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

스텔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에는 그만한 고난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저 생각보다 강하다고요?"

장난스럽게 말 꼬리를 늘어트리자 녹스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녹스는 스텔라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아프지 않게 힘 조절을 했다.
둘은 행복했다.
이 시간만큼은.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들은 서로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이틀 후, 스텔라는 하늘의 신, 케일룸의 신궁으로 끌려가다시피 도착했다.
케일룸은 제일 상석에서 스텔라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상급 천사, 스텔라."

최고의 신답게 여자처럼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위압감이 있었다.
스텔라는 허리를 깊게 숙인 채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네가 어둠의 신이자 밤의 신인 녹스와 연인관계라는 소문이 있다.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스텔라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그도 신이다. 신을 한낱 천사가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러니 다치기 전에 정리하도록 해라."

매서운 겨울 바람처럼 싸늘한 목소리에도 스텔라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만의 가치관이 있었고, 그걸 방해받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아뇨. 설령 캐일룸 님이시라도 제 사랑을 막을 순 없지 않습니까. 전 진심으로 녹스 님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긍정이 아닌 부정의 대답이 나오자 케일룸의 눈썹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스텔라도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신이자 모든 신의 아버지인 케일룸이 일개 천사가 무섭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설령 그것이 케일룸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도.

"네가 감히 신의 뜻을 거역하겠단 것이냐?"

스텔라는 케일룸과 눈을 마주 보지 않는 채로 말했다.

"제가 녹스 님을 사랑하는 것 또한 운명이고 신의 뜻이니, 저는 그 뜻을 따를 것입니다."

녹스 님은 제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거든요, 라고 덧붙인 스텔라의 말은 케일룸의 심기를 어지럽히기 충분했다.

"하! 감히 일개 천사가 신의 말을 거역하다니. 그렇게 녹스가 좋다면 떠나라. 그리고 다신 신계에 발도 못 들일 줄 알아라!"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스텔라의 말에 케일룸의 화가 식어버렸다.

"네. 감사합니다, 케일룸 님!"

신계에서 쫓겨 난다는 건 타락 천사가 된다는 의미임에도 스텔라는 그 무엇도 걱정되지 않는 듯 웃었다.
정말 그녀의 이름처럼 밝은 미소였다.
그녀를 이해해서 화가 식은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식은 것이었다.
그렇게 신계에서 쫓겨 난 스텔라는 곧장 녹스의 신궁으로 향했다.
녹스의 신궁은 어둠의 신답게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랬기에 다른 신이나 천사들이 얼씬도 하지 않은 곳이라 신궁 안에 분위기는 쥐 잡은 듯 조용했다.

"녹스 님!"

스텔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 끝 방에서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녹스가 뛰쳐 나왔다.
그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스텔라는 빠르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스텔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케일룸 님에게 쫓겨나서 여기로 왔어요. 케일룸 님께서 제게 녹스 님과 헤어지라고 하셨는데 거절하고 왔거든요."
"스텔라......"

녹스의 눈빛에서 자책감과 분노, 슬픔 등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 낸 스텔라는 서둘러 말을 덧붙었다.

"녹스 님께서 저를 지켜주실 거잖아요. 그니까 전 괜찮아요. 그리고 저번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저 생각보다 강하다고요?"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대수롭지 않은 척 이야기하는 스텔라의 모습에 녹스는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웃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뜨겁고 말랑한 감촉에 스텔라는 토끼 눈을 한 채 움찔했다.

"반드시 지켜줄테니, 너는 이 궁에서만 지내야겠어. 케일룸의 뜻을 어기고 나가지 않은 것이 들통나면 분명 큰 벌을 받게 될 거야. 부탁해, 스텔라......"

녹스라도 그녀를 자신의 궁에만 가두다시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로운 새처럼 날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 날개를 꺾은 건 다름 아닌 녹스, 본인이었다.
녹스는 그게 마음이 아팠다.

"네. 그래야죠. 감사해요, 녹스 님."

스텔라는 처음부터 예상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녹스는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에서 보이는 서로의 얼굴에 둘은 수줍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한 달만에 스텔라는 녹스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 출산과정에서 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
스텔라와 달리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고, 그 아이가 바로 알렌이었다.
녹스는 자신과 같은 머리 색과 스텔라의 금빛 눈동자를 가진 남자 아기를 보며 눈물을 터트렸다.
스텔라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아기에 대한 반가움, 기쁨, 걱정 들이 물 속에 물감들이 섞이듯 마냥 그대로 녹스를 덮쳤다.

"아가. 내가 네 아빠란다. 잘 부탁한다, 아들아."

녹스는 아기의 볼을 꾹 눌러보았다.
말랑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너의 이름은 ''알렌''이란다. 네 이름은 테라가 정했어. 어때? 마음에 드니?"

알렌이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짧게 "응애!"라고 말했다.
녹스는 그런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한 번더 아기의 볼을 눌러 보았다.

"내 아들. 엄마 몫까지 아빠가 열심히 지켜줄게. 그러니까 행복해야 한다."

어릴 적 녹스와는 다르게.
알렌은 다시금 짧게 울음을 터트렸고 녹스는 그런 아기를 보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 못난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아들.

모두의 기피 대상 1호인 어둠의 신인 녹스는 그렇게 아들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아들인 알렌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친구-녹스 눈엔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안 건 그로부터 조금 더 먼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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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6 17:55 | 조회 : 995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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