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진짜 황태자.
스텔라는 그 단어를 속으로 곱씹었다.
그녀의 찌푸려진 눈살을 보던 털 뭉치는 털을 세워 잘게 떨었다.
필시 웃고 있는 것이었다.
본인도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 그니까.. 이 황궁에 사는 뱀이 너라고 하는 건가? ”

“ 뱀? ”

“ 멍청한 뱀이지. 제 몸에도 맞지 않는 것을 욱여넣어 터져죽을 뱀이니 말이야. ”

검은 털 뭉치 속 황금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져 깜빡이더니
곧 눈이 휘어졌다.
그 웃음이 마치 스텔라, 살인귀 클로나와 닮아 그녀는 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난 뱀은 아니지만 그 뱀이 가지고 있는 ‘이름’은 내 것이 맞지. ”

스텔라는 털 뭉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평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를 바라 본 털 뭉치는 의아함을 담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 안 놀라? ”

스텔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눈을 굴렸다.
그녀는 스텔라의 몸으로 들어 온지 몇 년도 아니고 고작 몇 달이었다.
어쩌면 남의 몸이고 남의 나라인데 그것을 생각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해봤겠는가.
그녀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털 뭉치의 말이
참이든 거짓이든 그녀에겐 불필요한 정보였다.
그녀는 놀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것에 무언가 감정을 느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처음 보는 생물체에 저도 모르게 약간의 호기심이 일어 잠깐의 담소를 나누었지만
그 또한 더는 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이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 뒤로 시선이 뒤따라왔다.

“ 가려고? ”

“ ... ”

그 털 뭉치의 말을 무시하고 막힘없이 걸어가던 발이 순식간에 멈췄다.
스텔라는 고개를 홱 돌렸다.

“ 괜찮아? 내가 그 뱀에게 네 이야기를 해도? ”

그래, 저 말 때문이었다.
황실 안, 지하에 가둬진 자칭 ‘진짜 황태자’라는 저 털 뭉치가 그 뱀과 관련이 없을 리가 없었다. 저 털 뭉치의 가벼운 입을 보니 그녀가 지금 몸을 돌려 사라진다면 저 물에 잠가 죽여 버리면 입 만 떠버릴 놈이 순식간에 나불거릴 것이다.

“ 그래. 내가 잘 못 생각했네. ”

“ 그래 이야기를...”

스텔라가 순식간에 다시 돌아와 철창 앞에 섰다.
그녀의 검붉은 오러가 순식간에 공간을 메웠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 ”

스텔라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그녀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다 검이 없음을 깨닫고 손을 다시 회수했다.

“ ..진정해. 무서워서 살겠어..? ”

“ .... ”

“ 대신 장담할게, 여기서 네가 들어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음을 말이야. 내 존재를 들키면 안 되니까 당연히 여기에는 증거를 남길만한 무언가를 매달아 놓지 않았어. 흔히 말해서... 영상석 같은 거 말이지. ”

“ 그 말은.. 너만 처리하면 내가 들킬 일은 조금도 없다는 거군. ”

스텔라가 오러를 끌어 모으며 털 뭉치의 숨을 끊어내기 위한 무기로 형태화 시켰다.
털 뭉치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흉기에도 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것에게서는 여유가 흘러 넘쳤다.

“ 너 같이 ‘잃어버린’ 사람들은 내가 아주 잘 알지. ”

“ ... ”

“ ‘잃어버린’ 사람들은 메마름 속에서 그것을 축일 것을 포기하고 메마름을 인정한 자들.”

털 뭉치의 금안과 스텔라의 푸른색 안광이 맞닿았다.
올곧게 바라보는 금안에 스텔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 네가 메말라 있는 것은 뭐지? .. 네가 포기한 것이 무엇이지? ”

“ .... ”

스텔라, 클로나는 본인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메말랐고 그 메마름을 지워내기 위하여 검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이 그녀의 메마름의 갈망을 인정하게 만들었고, 포기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는 과거부터 현재, 모든 순간 그녀의 메마름은 채워질 수 없었다.
클로나는 자신의 죽음에 불만하지 않았다.
사람을 쌓아 피로 길을 만들었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메마른 살인귀에게 알맞은 메마른 죽음이었다.

“ ... ”

그녀, 즉 스텔라는 한 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 살인을 제외한 모든 것. ”

스텔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내게 살인은 그득히 넘쳐나고, 그 때문에 다른 것이 메워질 수 없지. 가득히 채워진 컵에 그 이상으로 물을 부을 수 없듯이. ”

스텔라는 메마름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 메마름을 부인할 이유도 말하지 못 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의 말에 털 뭉치는 침묵을 유지했다.
털 뭉치의 입이 열리려고 하는 그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스텔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털 뭉치를 바라보자 털 뭉치도 얕게 웃으며 빠르고 낮게 속삭였다.

“ 나를 벗어나게 해줘. 그럼 내가 네 메마름을 채워줄게. ”

“ ... ”

“ 이 저주를 풀어 달라는 게 아니야. 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거지. ”

“ .... ”

스텔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저 감옥에서 온전히 살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고작 그것을 부탁하고 자신의 메마름을 축여준다는 말에 그녀는 황당했다.

다박다박

발소리가 점점 커져왔고 그녀는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결국 대답을 하지 못 하고 몸을 돌렸다.
그 털 뭉치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녀는 냉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스텔라가 걸음을 돌려 어느 정도 회복된 기력으로 그녀는 마법을 손에 감쌌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을 벗어나기 전 털 뭉치가 웃음기가 섞인 상태로 말을 전했다.

“ 기다리지. ”

그녀는 그것을 끝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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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12 21:15 | 조회 : 1,16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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