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체르 핀은 스텔라를 향해 깔끔한 미소를 지으며 뱀 같은 혀를 계속해서 내둘렀다.

“ 아켈리온가는 과거부터 유명했죠. 숨겨진 유물부터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 발굴까지... 다양한 인맥과 훌륭한 검술과 마법 재능. 영애는 마법에 재능이 있으십니까?“

“ 아뇨. 안타깝게도 제겐 마법의 재능은 없나 봅니다. ”

“ 하하..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군요. ”

그는 당연히 그녀가 검술에는 소질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검술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은 상태로 웃음을 흘렸다.
그에겐 그녀가 마법을 잘 부리는 것보다는 그의 머릿속 이미지대로 무력한 스텔라가 훨씬 좋았다. 쓸데없이 지능이 높거나 검술, 마법이 뛰어나다면 귀찮아짐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품위와 사고를 치지 않는 얌전함,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재산을 가진 무력한 여자였으니까.
다들 지적이고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여자를 황후으로 세우기를 바라지만 본인은 아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위에 서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어, 저 꽃을 보십시오. ”

스텔라는 귀찮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체르 핀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잿빛을 띄고 있는 몇 개의 꽃송이들이 보였다.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꽃들 사이에서 그 꽃은 단지 신기함을 만들었다.
그나마 다른 것이 있다면 아침엔 더 없이 예쁜 꽃들이 밤에는 잘 안 보이지만 저 잿빛 꽃은 오히려 밤에서도 잘 보이고 있었다.
얼핏 약간의 광택이 흐르듯 달빛을 받아 눈을 사로잡았다.

“ 아름답네요. ”

“ 하하 아름답다고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영애가 처음이군요. 다들 신기하다고 하지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거든요. 아무래도 색이 색인지라 저주받았다고 말하고들 하죠. 색을 잃게 만든 마녀의 저주라고 한답니다. 그래도 저는 영애와 똑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달의 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 저 입 발린 말을 언제까지 할 작정인지. ’

스텔라는 신분의 문제도 있었는지라 갑자기 가버리겠다고 말하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살 웃음을 치며 맞장구를 쳐주자니 또 성격에 맞질 않았다.
그나마 지루하던 중 저 꽃이 그녀의 지루함을 조금 덜어주는 것 같았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체르 핀의 말을 흘리며 꽃에 가까이 다가갔다.
꽃을 만지려던 스텔라를 향해 체르 핀이 소리를 내질렀다.

“ 만지지마세요!!”

“ ..! ”

스텔라는 깜짝 놀라며 손을 짧게 떨었다.
체르 핀은 성큼성큼 걸어와 스텔라의 손을 낚아챘고 스텔라는 눈동자를 굴려 체르 핀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 이 꽃에는 독 같은 저주가 실제로 있습니다. 만지면 피부가 검게 물들어가고 끝내 부서져 사라지죠. 만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렸는데.. 안 들으셨군요?”

“ 꽃에 잠깐 홀렸나보군요. ”

스텔라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체르 핀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빼냈다. 그녀의 행동에서 선을 딱 긋는 느낌이 나자 체르 핀은 순순히 손을 놔 주었다.
스텔라는 멍하니 꽃을 보다가 눈을 크게 뜨며 옳거니 하고 체르 핀을 보며 말을 건넸다.

“ 아무래도 조금 만졌을 수도 있으니 전하께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물러가겠습니다. 혹여 라도 저주에 옮아 그 병이 저를 통해 전하의 몸에 해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

“ ..아니 나는..”

“ 아뇨. 지금 보니 확실하게 만진 것 같군요. ”

스텔라는 체르 핀의 말을 가볍게 끊으며 자신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고 창백한 안색을 취했다. 가늘게 떨리는 눈이 정말로 그녀가 체르 핀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체르 핀은 결국 그녀에게 물러가라고 했고, 스텔라는 속으로의 기쁨을 감추고 인사를 올리며 돌아갔다.

‘ 입만 덜 놀리면 더 오래 살 텐데 ’

스텔라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귀찮은 연회도 그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

아침부터 아켈리온 백작의 웃음소리가 저택을 가득히 채웠다.
그의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스텔라는 조용히 샐러드를 입 안에 밀어 넣고 맛없게 씹었다.
스텔라와 백작을 제외한 가족들은 의아하게 백작을 바라보았다.

“ 스텔라 네가 무슨 일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체르 핀 전하께서 친히 편지를 주실 정도이니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

“ 황태자 전하께서?!”
스텔라의 언니 콜란드가 어이없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식기를 떨어트렸다.
시녀들은 식기를 급하게 주워 새 식기를 올려주었고 백작 부인은 그녀에게 주의를 주며 말을 이었다.

“ 아니...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스텔라가 저번에 체르 핀 전하의 연회를 다녀왔잖소? 그 뒤로 체르 핀 전하께서
편지를 통하여 스텔라의 안부를 묻더군.. 필시 스텔라가 마음에 드신 게지. ”

“ 스텔..라가? ”

첫째 오빠 카이젤이 의심의 눈초리로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최근 급격하게 변한 스텔라는 그가 보기에도 이상해보였다.
카인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카이젤은 스텔라를 향해 의문이 담긴 말을 던졌다.

“ 스텔라. 네가 정말로 그랬다고? ”

“ ...전하께서 넓은 아량으로 잿빛의 꽃을 만질 뻔한 저를 일부러 걱정해주신 겁니다.
딱히 제가 무얼 한 것은 아닙니다. 다 황태자 전하의 과분한 배려이지요. ”

“ 잿빛의 꽃? ”

“ 잿빛의 색을 가진 꽃이라고 합니다.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며 위험하다고 하시더군요. ”

“ 그래서..그 꽃을 만질 뻔한 너를 전하께서 저렇게 따로 걱정을 해주신다는 말이냐? ”

“ ....그렇지요. ”

카이젤은 여전히 스텔라를 의심하며 마저 식사를 시작했다.
황태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리 백작일지라도 겨우 처음 본 스텔라에게 저런 사적인 편지를 보내는 것은 이상했기 때문이다.

“ 뭔가 숨기는 것은 없고? ”

‘ 아까부터 무슨 개가 짖는 것 같군.. ’

“ 없습니다. ”

단호한 스텔라의 말에 결국 카이젤은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저렇게 아니라고 부인을 하는데 타인이 무어라 더 할 수 있겠는가.
콜란드는 마치 자신이 진 것 마냥 분해 이를 갈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텔라가 온갖 부끄러움을 받게 하려고 보낸 자리였다.
당연히 그곳에서 주저앉아야 하는 것은 스텔라 그녀였다.

그만큼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시선을 받는 인물이 아니었고, 그런 그녀를 감싸는 콜란드 본인은 늘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으며 친절하다고 찬양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핀잔을 받아도 그대로 돌려주니 그 누가 그녀를 건들일 수 있었겠는가 미친개는 상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아마도 사교계 영애들은 스텔라를 미친개로 판단하고 물러난 것이리라.
심지어는 체르 핀과 따로 산책까지 갔음을 아는 콜란드는 흉측한 얼굴을 지으며 손톱을 깨물어 뜯었다.

“ 스텔라. ”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좋은 언니인 마냥 상냥한 목소리를 내었다.
스텔라는 그녀를 한 번 깔끔히 무시하며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콜란드는 손을 꽉 말아 쥐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는 다시 한 번 고운 목소리로 스텔라를 불렀다. 그제야 스텔라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내고 콜란드를 향해 바라보았다.

“ 말씀하세요. ”

“ 한 번 부를 때 대답해주면 참 좋겠구나..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니잖니-? ”

“ 죄송해요. 설마하니 언니가 저를 부르는 줄 몰랐답니다. 욕하면 욕했지 설마.. 그런 목소리로 부르실 줄은 몰랐거든요. 전 또 웬 남자를 부르는 줄 알았답니다.”

“ 뭐!? ”

콜란드는 안 그래도 불안정하던 미소를 무너뜨리며 스텔라를 노려보았다.
스텔라의 말은 콜란드가 남자 앞에서 콧소리를 내며 아양을 부르는 모습을 직시하고 있었다. 부인과 백작이 자중하라며 주의를 주자 콜란드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중얼거렸다.

“ 사지를 찢어 죽여도 모자를 년이.. ”

똑똑하게 들은 스텔라는 그녀를 향해 눈을 곱게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게 짓는 눈웃음이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결코 천사와 같은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저보다도... 언니의 사지를 소중히 하시기를 .. ”
그건 오히려 자신이 사지를 찢어버리겠다는 콜란드를 향한 협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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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09 20:55 | 조회 : 1,77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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