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짙은 푸른색의 옷을 몸에 두르고 옷 속에 무수히 박힌 금들과 섬세한 자수.
옷을 구성한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섬세한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샹들리에 빛을 받아 이슬이 흐르듯 아름다운 은발과 부드럽게 녹아든 보라색 눈동자는 그 자리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시선을 받아 충분했다.
차분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사람들을 바라본 황태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모두들 힘든 발걸음으로 찾아와 주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오늘 밤 부디 그간의 짐들을 잠깐 내려놓으시고, 평안하게 파티를 즐기시기를 ...... ”

스텔라는 황태자의 말을 듣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넋을 놓고 황태자를 우러러보던 와중 그녀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조각 같은 얼굴이 아닌 코를 찔러오는 달콤한 술 향이었다.

‘ 조금만 마실까 ’

스텔라는 술이 있는 곳으로 부드러이 걸음을 옮겼다.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입 안으로 조금 흘려보내자 과일의 달콤한 향과 알딸딸한 맛이 감돌았다.

만족스러운 맛에 스텔라는 연회 처음으로 순수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두어 번 술을 마시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과거 ‘클로나’였던 시절에는 독한 술을 몇 병이고 들이켜도 그녀의 몸에는 온기가 돌지 않았다.
실지적으로 술이 가져다주는 취기는 있었을지언정 그녀의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주지는 못 했다. 남들은 다 있는 그 흔하디흔한 ‘친구’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술은 그녀가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였고, 그 때문에 술을 찾는 일이 드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 그토록 싫어했음에도..., 낯선 곳에서 찾은 오래된 익숙한 맛은 우습게도 참으로 반갑구나...’

스텔라가 깔끔하게 비운 잔을 집사에게 넘겨주며 취기로 인해 찾아온 어지러움을 이겨내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쉴 곳을 찾던 스텔라는 문득 그녀가 지나간 저 복도사이에서 기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 ...... ”

그녀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기묘함이었다..
살갗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소름이 불쾌함을 만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도 모르는 사이 꽤 멀리 왔는지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귀를 아프게 하는 귀족들의 가식들도, 음악도 들리지 않는 것이 스텔라, 그녀에게는 결코 술이 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스텔라는 다시 복도 저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기묘하고도 오싹한 기류가 맴돌았다.
그 오싹함에 취기도 도망치듯 사라진지 오래였다.
스텔라는 결국 본능적으로 걸음을 복도 저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적막한 복도에서 투박한 스텔라의 구두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 저건.... ”

스텔라가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기묘한 기류는 단순한 느낌이 아닌 확신으로 변해갔다. 거침없이 걸어가던 스텔라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막다른 길이었다.

“ ......그냥 벽은... 아니군. ”

벽을 손바닥으로 짚어 아래로 쭉 쓸어 내려 본 스텔라는 큰 눈망울을 가늘게 뜨며 벽을 응시했다.
미세하지만 마법사의 마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막아둔 듯...

“ 기분 나쁜 기운은 이 벽 너머인 것 같은데... ”

스텔라가 요리조리 벽을 바라보다 노크하듯 벽을 두드려보았다.

똑똑

마치 문을 두드린 것처럼 건너편에 통로가 있음을 알리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확인 한 스텔라는 이 벽을 부술지 고민했다.
솔직히 호기심이 생겨 자신의 이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으나 이곳은 황성이였 고, 괜한 짓을 벌였다간 괜한 의심을 받아 운이 나쁘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결국 스텔라는 고민 끝에 벽을 부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꺼림칙한 기분을 남기고 몸을 돌려 벽에서 멀어졌다.
마치 저 벽 너머에서 그녀를 부르는 듯 하는 울림이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하며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

“ 아켈리온가의 4째 영애. 스텔라 드셀 아켈리온 맞습니까 ? ”

연회장으로 돌아온 스텔라를 향해 부드러운 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제비꽃 같은 푸르른 보라색 눈동자와 눈부신 은발이 눈에 들어왔다.
스텔라는 상체를 천천히 숙이며 예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 제국의 작은 태양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

“ 반갑습니다. 고개를 들어도 좋습니다. 영애를 사교계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로군요. ”

“ 몸이 좋지 못 했던지라 사교계를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건강이 호전되었기에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그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알려 주셨더라면 선물이라도 보내드렸을 텐데.. ”

“ 전하의 넓은 마음만으로 감사합니다. ”

스텔라가 황태자, 체르 핀과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연회장 모든 이들에게 시선을 받았다.
차라리 담소라도 나누면 모르겠지만, 서로의 겉멋만 있는 대화는 그녀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대충 대화를 끝내고 벗어나려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
마치, 스텔라를 보낼 수 없다는 듯 속사포처럼 대화가 오갔다.

“ 괜찮다면.. 영애 저와 함께 정원이라도 산책하시겠습니까? ”

“ .... ”

스텔라는 순간, ‘과거’ 스텔라가 황태자와 친분이 있었는지를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사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산책이라니... 스텔라.. 본인으로썬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무엇보다도 불편하고 귀찮았다.

‘ ...받아도 미움. 안 받아도 미움. 뭐 하나 나를 달가워하는 것이 없네. ’

스텔라가 주위의 시선을 슥 돌아보다 짧은 한숨을 내 쉬었다.
체르 핀은 이미 답이라도 받은 듯이 손을 스텔라에게 향해 뻗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그의 제안을 승낙했고 체르 핀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정원으로 나가는 내내 따갑고 차가운 시선이 잇따랐다.

***

“ 밖에서 영애를 보니 한층 아름답군요. 달빛도 그대 앞에선 초라 해보일 뿐입니다.”

속을 긁어내리는 느끼한 말투에 스텔라의 미간은 점점 좁아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체르 핀은 계속해서 느끼한 멘트를 날렸다.
그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가 몇 분 오갔다.

‘ 언제까지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는 건지.. ’

그녀는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저런 쓸모도 없을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정원까지 나온 것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스텔라가 정면을 주시하면 걷기만 하자 체르 핀은 사르르 눈웃음치며 말을 이었다.

“ 영애는 약혼자라도 있습니까? ”

“ ...약혼자.. 아뇨. 없습니다. ”

제법 무례한 말이었지만 스텔라는 개의치 않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기다린 듯 체르 핀의 말은 빠르게 나왔다.

“ 그렇군요. 아 그렇고 보니 아켈리온가는 재산과 땅, 광산을 따져보면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힌다고 하지요..? ”

스텔라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굳이 분류하자면 비웃음에 가까웠다.

‘ 저거구나. 네가 나랑 쓸데없는 잡담을 나눴던 이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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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11 18:47 | 조회 : 1,472 목록
작가의 말

비밀의 벽엔 무엇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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