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아가씨..정말 괜찮으시겠어요? ”

스텔라의 시녀 제니가 스텔라의 머리를 묶으며 불안한 듯이 물었다.

스텔라는 그 모습에 비웃음이 가득 담긴 조소를 날렸다.

그녀는 결코 스텔라가 걱정되어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켈리온 백작가에는 다른 백작가와는 달리 시녀, 신하들을 위한 ‘상’이 있었다.

정확히는 ‘개인’ 시녀, 신하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켈리온 백작가의 도련님이나 아가씨의 개인 시녀, 신하들이 된 사람은

그 도련님이나 아가씨의 소유되는 한에서 보석, 화장품, 옷, 혹은 음식 등 콩고물을 얼마든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백작가의 시녀, 신하들일 지라도 받는 돈은 고작해야 3주 동안 밥 먹고 숙박비로 쓰고 나면 다 쓰고 없는 양이었다.

그런 그들로서 조금이라도 유희를 즐기기 위하여 돈을 더 받으려면 이렇게 개인

하인이 되어 콩고물을 주워 먹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시녀들은 변덕이 심한 아가씨로부터 옷, 보석, 화장품 등 다양한 값 진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제니도 마음약한 과거의 스텔라를 꼬셔 겨우겨우 개인 시녀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근데 만일에 스텔라가 자칫하다 2째 오빠 케인에게 죽기라도 하면 자신은

또다시 더럽고 끔찍한 시녀들 간에 경쟁 속에 빠져들어야 한다.

다시 개인 시녀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 걱정하지 마렴, 죽지 않을 테니까 ”

그 말에 뜻을 알았는지 시녀는 입을 꾹 다물고 머리를 묶기만 했다.

스텔라가 그리 말함에도 역시나 불안한지 안절부절 못했다.

그 모습에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화장대를 손으로 집었다.

“ 만일에 내가 죽는다면 여기 있는 화장품과 보석, 그리고 옷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 모두 가져가도 좋아 ”

스텔라가 한심스럽게 제니를 바라보며 말하자 제니는 표정을 숨김없이 기쁨을 표했다.

어지간히 기쁜지 이제는 검까지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

스텔라는 검을 허리춤에 차고 1층 마당에 있는 검무장으로 향했다.

검무장으로 가자 오빠 케인이 기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서도 잘 들리는 말을 들어보니 스텔라 자신에게 절대로 진심으로 하지 말라는

충고와 만일에 일에는 기사들이 개입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 알겠죠? 절대로 아가씨에게..”

“ 스텔라..? ”

체플에게 충고를 듣고 있던 오빠 케인이 걸어오던 스텔라를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말에 기사들과 체플 모두 스텔라가 서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드레스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화장을 하며 치장하던 ‘아가씨’라는 존재는 어디가고

차가운 냉기를 뿜는 ‘검사’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

기사들은 푸른색 눈동자가 저렇게 차갑고 어두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스텔라는 시선을 한 몸에 받음에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왔다.

예쁘고 귀여워 보이는 외형과 달리 차갑게 식은 눈동자는 보는 이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온 몸에 서늘한 기운이 퍼지는 감각을 느낀 기사들은 뒷걸음질을 쳤고 케인도

놀란 토끼눈을 하며 스텔라를 응시했다.

스텔라는 걷고 걸어 케인과 겨우 30cm밖에 안 떨어진 거리에 섰다.

그런 스텔라를 보다 케인은 특유의 웃음을 터트렸다.

19살이라는 나이에 겨우 15살인 여동생에게 겁먹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을 지은 것이다.

그것도 연약하기로 소문난 스텔라를 말이다.

“ 필요 없습니다. ”

“ 응? ”

“ 목검을 쓰실 만큼 봐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

케인은 아까보다 더욱 크게 눈을 뜨며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 집을 바라보았다.

스텔라의 말대로 케인의 허리춤에 찬 검 집 안에는 진검이 아닌 목검이 들어있었다.

목검이라 할지라도 이 목검으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스텔라를 죽일 수 있었기에 목검도 사실상 위험했다.

케인도 이 점을 감안하여 검을 거의 뽑지 않고 맨손으로 상대할 뿐 아니라 최대한 살살 상대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을 죽이는 취미는 없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녀는 모르리라고 생각한 케인은 바로 간파를 당하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제야 케인은 동생이 옛날과는 단순히 달라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에게 자신의 검을 가져오라 시켰다.

“ 도련님!! ”

체플이 그를 막아섰다.

“ 아가씨께선 아직 도련님과는!! ”

“체플 선생님 ”

스텔라가 고운 목소리를 내며 체플을 불렀다.

체플을 고개를 돌려 스텔라를 보았고 스텔라는 올곧은 눈으로 체플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 케인 오라버니에게 검을 쥐어 주십시오. 제가 다치든 말든 죽든 말든 그것은 제 알아서 할 일이지 선생님께서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

단호한 말에 체플은 더 말하지 못하고 결국 케인에게 진검을 쥐어주었다.

스텔라는 몸을 돌려 케인과 거리를 벌렸다.

“ 스텔라, 진짜로 괜찮겠어? ”

스텔라는 케인의 말에 그 옆에 서있는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녀를 포함하여 모두가 입 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심심해서 구경거리가 필요한 신하들은 이미 결과를 알지만 스텔라의 최후가 어떨지 하는 궁금증으로 오는 이들이었고 시녀는 그녀가 죽어도 이득 안 죽어도 이득이기 때문에 단순한 유흥으로 온 것이었다.

그나마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체플 한 명 정도였다.

그 우스운 관경에 스텔라는 케인을 향해 눈을 휘며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호선을 그리는 예쁜 눈매에 케인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얼굴을 붉혔다.

“ 케인 오라버니, 검을 잡는 모든 사람은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마음이 약한 사람이건..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겁니다. 검사들의 대부분의 죽음은 ‘ 방심 ’으로부터 나오니까요. ”

“ ...... ”

“ 제가 여자와 15살 아이라는 이유로 봐주실 생각이라면.....오라버니는 ”

스텔라는 검 날을 케인에게 세우며 차갑게 응시했다.

케인은 온 몸에 가시가 박힌 듯이 오싹하고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 몇 번이고 죽을 겁니다. ”

살인귀 클로나의 살기는 고작 19살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케인은 오싹함에 그만 검을 손에서 떨어트리고 말았다.

검사로서 최대의 실수였다.

스텔라의 모습에 체플은 물론이고 신하와 그녀 시녀 또한 웃음을 잃고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라도 저 칼날이 자신에게 향할까 하는 망상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케인은 급하게 검을 집어 들고 확실히 처음과는 다른 눈매로 스텔라를 보았다.

스텔라는 그 모습에 만족스럽게 입 꼬리를 올리며 턱 짓으로 체플에게 시작하라는 표시를 내렸다.

체플은 그 모습을 보고 심호흡을 1번 하더니 이내 입을 열고 경기를 진행했다.

“ 지금부터 검술 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케인 드셀 아켈리온 준비되셨습니까? ”

체플에 물음에 케인은 스텔라를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 스텔라 드셀 아켈리온 준비되셨습니까? ”

스텔라도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 서로의 동의하에 이 대련은 이루어졌음을 다시 1번 확인했습니다.

마법과 독을 쓰는 것은 불가능 하며 체술은 가능합니다.

오러의 사용을 허용하며 대련 후 보복을 금지합니다.

이 대련에서 피해를 입은 것에 책임을 물지 않는다는 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바로

케인 드셀 아켈리온과 스텔라 드셀 아켈리온의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체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케인이 먼저 발을 움직이며 자세를 취했다.

반대로 스텔라는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은 상태로 케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텔라가 긴 속눈썹을 팔랑이며 눈을 1번 감자 케인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체플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여자아이의 고통서린 비명 대신에 날카로운 쇠 음이 귀에 닿았다.

케인도 적잖게 놀란 표정으로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케인의 검을 스텔라는 양 손도 아닌 한 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떨림 없이 확실하게 케인의 검을 지지하고 있는 스텔라의 검은 올곧게 뻗어있었다.

스텔라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오직 케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너... ”

스텔라는 케인의 칼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순식간에 케인의 뒤에 섰다.

“ !?..”

스텔라는 날카로운 칼을 세워 케인의 옆구리를 향해 찔렀다.

케인이 빠르게 뒤돌아 검으로 공격을 흘려서 치명상은 면했으나 충격으로 인해

넘어졌다.

스텔라는 칼을 케인의 목을 향하게 세웠다.

“ 1번 죽었습니다. ”

고혹적이게 웃는 스텔라를 보며 케인은 인상을 썼고 그로 인하여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만큼 케인은 굴욕감을 느꼈다.

케인은 다시 일어서며 이번에는 오러를 내뿜었다.

동생을 상대로 오러까지 낼 정도인가 싶지만 이미 케인에게 스텔라는 이겨야만 하는 상대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 확실히 19살 치고는 검술 기술이 좋아.. ’

검을 두르고 있는 파란색의 오러가 스텔라를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 꺅... ”

제니가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제니뿐 아니라 케인의 신하들인 사람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건 절대로 맨 칼로 받아낼 수 없으리라 자신의 검은 저 무게를 견딜 만큼 단단하고 묵직하기 않았다. 그대로 막았다간

칼이 부러져 날카로운 파편이 자신에게 날아와 죽음으로 이끌 터였다.

스텔라는 케인을 보며 과거 자신이 죽였던 한 청년이 떠올랐다.

웃음이 많고 정의감도 적잖게 있었지만 자신을 만나고서 분노에 미쳐 이빨을 드러내던

사냥개 같던 사내 말이다.

그의 소중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그 또한 다시는 칼을 들지 못하게 팔과 다리를 잘라 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 과다출혈로 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붉게 물든 추억이라는 악몽이 스텔라 안의 클로나를 덮쳤다.

클로나, .,.. 스텔라는 케인처럼 오러를 사용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케인은 검에 오러를 둘렀다면 스텔라는 검과 몸 전체를 덮는

오러를 뿜었다.

마치 피 같은 붉은색 오러가 기괴하면서 기분 나쁜 구역질감을 선물했다.

시녀, 신하들은 입을 막으며 인상을 썼고 체플도 미간을 좁히며 스텔라를 응시했다.

스텔라에 눈동자에는 붉은색 오러에 공포감에 물든 케인이 비추었다.

공포를 느꼈던 것을 부정하듯 케인이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며 스텔라를 쏘아보았다.

어리석게도 케인은 스텔라에게 정면으로 덤볐다.

만일 정말로 이기고 싶었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올리고 싶었다면 정면으로는

와선 안됐다.

케인이 기합인 듯 비명인 듯 알 수 없는 큰 소리를 내며 스텔라에게 칼을 내리쳤다.

깡-!

스텔라의 검과 맞붙었던 케인의 검은 이미 부러져서 저 멀리 나무에 박혀있었다.

케인의 손에 들린 것은 칼 손잡이 뿐이었다.

날카로운 것이 케인의 가슴에 상처가 나지 않을 만큼만 닿아있었다.

스텔라가 케인의 심장에 칼 겨누며 냉소를 날리고 있었다.

“ 이걸로 2번째 죽으셨군요. ”

케인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이를 갈았다.

스텔라는 그런 그를 조용히 응시하다 이내 칼을 내렸다.

승부는 이미 나 있었다.

스텔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케인에게

곱고 잔잔한 미성으로 읊조리듯 말했다.

“ 그래서 말했잖습니까. 제가 단순히 여자와 15살 아이라는 사실로 방심을 하면..

몇 번이고 죽는다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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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24 21:22 | 조회 : 1,930 목록
작가의 말

우오아ㅏㅏ 오랜만이에요. 역시... 전투씬은 오글거리네요..ㅠㅠㅠ 다음엔 더 잘 써볼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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