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압살

16화-압살

"크오오오!!"

"우왓! 저건 뭐야!"

"포효한번에 스턴이라고?!"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 유저는 귀를 막지 않았다.
그 유저는 천천히 검을 늘어뜨리고 로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포효를 끝낸 로드가 순식간에 그 유저에게 달려들었다.
허공에 높이 도약한 로드의 대검이, 유저를 향해 쇄도했다.
유저는 자신을 향한 대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은은하게 빛나는 장검을 들어올릴 뿐이였다.

"저녀석, 무슨 생각-?!"

한 유저가 경악을 내뱉는 순간, 둘의 검이 부딪쳐 거센 기류를 만들어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단 한명, 태백만은 그 기류에도 똑바로 눈을 치켜세우고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저 검은유저는 '한손으로' 로드의 대검을 받아내고 있었다.

『오른쪽 팔뼈가 부러졌다, 주인.』

'생각보다 피해가 적다, 역시 로드의 스텟은 나보다 작아.'

서리는 얼음의 꽃을 무너뜨리고 난 뒤,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백이 로드와 싸우는 동안, 서리는 기척을 죽이고 드루이드들에게 다가갔다.
마법쓰는 타이밍을 놓쳐서 로드에게 버프가 들어갔지만 결과적으로 태백은 죽지 않았으니 되었다.
그리고 드루이드들을 죽이고 로드의 전력을 분석했다.

"왜 그러지, 내가 두렵나?"

랭킹1위의 태백은 스텟이 약 23~25정도 될것이다. 태백이 몇합을 버티지 못했다는 것은 태백보다 스텟이 높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것이다.
서리가 예상한 로드의 스텟은 약 35정도. 실제로 로드의 스텟은 평균 36.
이미 근력이 36을 훨씬 웃도는 서리에게는 쉬운 일이였다.
로드에게 있어선, 서리가 확실한 강자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분명 보았다. 교차되어 있는 검너머로 로드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크어어어어어!"

로드가 포효하며 대검을 무차별적으로 땅바닥에 찍었다.
멀리서봐도 한눈에 보이는 대검의 위력,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맞아줄 서리가 아니였다.

'한번 이말을 해보고 싶었지.'

서리는 어느새 로드의 뒤에 서있었다.
로드가 일으킨 자욱한 먼지는 훌륭한 장막이 되어주었다.
근력에서도 우위, 더구나나 속도도 압도적, 이런 상황에서는, 질리야 질수가 없다.

"느려."

-사악!

날카로운 검격이 로드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로드의 등에 그어진 길고 깊은 검상위로 냉기가 덮히고,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크아아아아!"

로드는 고통으로 얼룩진 비명을 지르며 서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서리를 바라보는 로드의 눈에는 분노와 증오가 새겨져 있었다.

"크으으으으..."

잠시동안의 대치, 로드는 증오의 눈빛을 지우지 않은채 서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체념하듯 몸의 힘이 살짝 풀어졌다.

"전부 퇴각-."

갑자기 후퇴를 명령하려는 로드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더니 다시 기세가 흉포해졌다.
로드는 대검을 들더니 다시금 포효했다.

"전부 공격! 증오스러운 인간들을 전부 죽여라!"

『왕의 포효가 발동되었습니다! 고블린들이 광폭화합니다!』

순간, 위축되었던 고블린들의 기세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전보다 더 사납게 유저와 기사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캬아아아악!"

"뭐...뭐야?! 이놈들, 갑자기 더 사나워졌어!"

서리는 말없이 검을 들었다. 로드는 아까전의 일을 잊은 듯 포효하며 서리에게 달려들었다.
아까는 지성이라도 있었지만 지성이 없는 지금, 로드는 서리의 먹이나 다름없었다.

"죽어."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로드의 목과 머리가 분리되어 떨어져내렸다.
목에서 피를 뿜어내며 로드의 거체가 무너져내렸다.
그와 동시에 팡파레가 울려퍼졌다.

『고블린 로드를 쓰러뜨리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주위를 잠시 돌아보니 유저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조금 지나니 침착하게 대응했고, 로드가 죽어 기세가 약해진 고블린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블린이 쓰러지자, 하늘에 팡파레가 터지며 문자가 떠올랐다.

『고블린 레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레이드 순위를 발표합니다!

1위-미등록

2위-태백

3위-제파르

레이드 명단에 1위는 미등록으로 되어있었지만 모든 유저들은 알고 있었다.
저 유저가 바로 1위라는 것을. 서리의 몸에서 천천히 검은 불꽃이 걷히기 시작했다.
태백은 서리에게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서둘러 달오고 있었다.
그리고 서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태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까 그 유저가....이 놈이였나?!'

자신보다 약할 거라고 생각했던 유저가 오히려 자신을 압도하는 괴물이였다.
태백은 종종 만화에서 이런 장면을 봤었다.
주인공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쩌리가 나대다가 주인공에게 쳐발리는 모습을.

'지금 나하고 똑같잖아...하핫.'

태백은 서리에게 다가가 즉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서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태백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몰라뵙고 실례했던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태백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서리를 바라보았다.
서리의 차가운 눈동자는 태백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태백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길드같은 곳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태백은 길드영입을 깔끔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다음에...음, 유저분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친구추가를 해주실수 있으신가요?"

서리는 조용히 화면을 조작해 랭킹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했다.

『랭킹이 갱신되었습니다!』

1위 겨울서리

2위 태백

3위 사냥왕

태백은 수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서둘러 친구추가신청을 보내었다.
서리는 수락을 누른 후 카이와 루아, 하루에게 돌아갔다.
서리가 다가오자 유저들은 곁눈질로 서리를 쳐다보았다.

"여."

서리가 다가오자 카이는 서리의 어깨의 팔을 둘렀다.

"이 자식, 대단하던데?"

"별로.."

"너 오늘 많이 벌었지? 한턱좀 쏴라!"

『파티장이 이벤트 필드를 나가려고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서리는 카이가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는 걸 알아차리고 수락을 눌렀다.
그러자 4명의 모습은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이야, 사람들 눈이 어찌나 따갑던지! 우리 서리는 아무도 못주는데 말이야, 그렇지?"

"그러네."

서리는 '천공기사단' 길드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고 있었다.
서리의 기분이 걱정된 카이가 서리를 이끌고 필드에서 나온 것이였다.

"그나저나 그렇게 강해질 줄이야~"

"맞아, 서리 되게 강했어!"

"그러게, 너 뭔짓을 했길래 그리 강해진거야?"

친구들이 궁금해하며 묻자 서리는 흔쾌히 대답했다.

"장비랑....직업 효과?"

서리의 대답에 모두 부러움과 질색의 감정을 담았다.

"부럽다 부러워~난 언제 저렇게 강해질려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서로 잡담을 나누는 동안 음식이 나왔고 서리 일행은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사 도중 누군가 서리 일행의 테이블 앞에 섰다.

"실례합니다, 혹시 겨울서리씨입니까?"

"...?"

음식을 먹다 눈을 돌린 루아와 하루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황금같은 순금발에, 보석같이 깨끗하고 투명한 초록색 눈동자, 매끈하고 선이 살아있는 얼굴, 티끌조차 닿는 걸 허락하지 않을 듯한 백색의 갑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식당에 있던 전원이 같은 생각을 했다.

'잘생겼다!'

"내가 겨울서리다."

서리가 수저를 내려놓고 대답하자 청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천공기사단』 길드의 제 6지부장을 맡고 있는 매리어트라고 합니다.
길드장께서 당신을 보고자 하십니다."

폭탄과 같은 발언에 순간 식당의 정적이 흘렀다.
이런 상황은 당연했다. 현재 대륙의 패자는 제국이였지만 실질적인 최강은 『천공기사단』길드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천공기사단은 대륙을 통일할 힘이 있지만 안 하는거다라는 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전세계 각지 길드탑이 세워져 있듯 천공기사단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런 길드의 길드장이 일개 유저를 보자고 한 것이였다.

'뭐야? 도대체 저 녀석이 누구길래?!'

'몰라! 일단 이거 이슈각이다!'

서리는 잠시 매리어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밥은 다 먹고 가지."

서리의 대답에 매리어트는 눈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럼 다 드시고 이걸 가지고 길드탑으로 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매리어트가 서리에게 건네준것은 은색의 창에 나무가 휘감겨 있는 배지였다.
그리고 매리어트가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배지와 똑같았다.

"저의 손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배지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매리어트가 식당을 나가자 몇몇 사람들은 서둘러 따라 나가거나 어디론가 향했고, 서리 일행은 식사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봤어? 웃었을 때, 완전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줄 알았다니까?"

"맞아, 진짜 잘생겼었어! 하지만 우리 카이가 더 잘생겼지만!"

여자들이 수다를 하는 사이 카이는 서리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너 갈거야?"

"응, 그게 목적이기도 했으니까."

"길드에 들어가는것도?"

"길드에는 안들어가, ...아마도."

카이는 뭐 어때라고 시원하게 말하며 서리의 등을 두들겼다.

"출세했다고 우리 버리기 있기 없기?"

"없기."

"그래, 친구잖냐 짜식아."

서리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서리는 길드로 향했다.
다시금 그 웅장한 탑에 들어가 배지를 보여주는 순간, 접수원의 표정이 변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순간 달라진 태도에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천공기사단의 모든 길드원들은 기본적으로 모든이에게 공평하게 대한다.
그게 일개 모험가든 한나라의 국왕이든, 그런 길드의 길드원이 고개를 숙인 것이였다.

"당장 저 녀석에 대해 알아와!"

"얼른 정보팀에 연락넣어!"

몇몇 유저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접수원은 서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이용하는 마법진이 아닌 다른 곳으로.
서리가 도착한 곳은 엄중하게 방비되어 있는 방이였다.
서리가 느끼기에도 최소 200레벨정도 되는 천공기사단의 길드원들이 지키고 있는 장소였다.
방 한가운데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매우 복잡한 술식이 보였다.

"길드장님이 있는 곳으로 바로가는, 천공기사단의 심장부로 가는 전이 마법진입니다."

접수원은 서리에게 마법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라고 말한다음 어디론가 사라졌다.

"...드디어 만나나."

엘리자베스가 말했던, 이 세계를 만든 신. 그 신을 이용하기 위해,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한 첫 발걸음이 지금이다.
서리가 천천히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서리의 주변이 눈부실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읏..."

서리가 한팔로 눈가를 가리고 몇초뒤 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자 서리가 팔을 내렸다.
그리고 알아챌 수 있었다. 서리가 있는 곳은 게임 속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고.
게임 속에 있을때는 이것이 게임 속의 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게임의 몸이 '진짜' 나의 몸 같았다.

"어서 와."

문뜩 들려온 목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좌우로 각각 3명씩 서있고, 중간의 옥좌에 한 남자가 턱을 괸채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서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남자가 신, 미르라고.

1
이번 화 신고 2019-05-03 19:02 | 조회 : 1,101 목록
작가의 말
Deemo:Hans

머리 아프네요....시험 끝나신 여러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