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납치

제 14장 -「납치」



열린 문 사이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서 베개로 귀를 덮었다. 물론 소리는 베개너머로 들어왔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문을 닫아주었으면 했다.

"로젠... 문 닫아줘..."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몇분이 지나서도 문은 닫히지 않았다. 로젠도 자는 중인가... 하고 그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닫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자고있을 로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갔지?'

먼저 식사를 하러 나간걸까... 하고 생각했다. 몸이 찌부둥하고 삐걱거렸지만 더 잤다가는 내일 일어날지도 몰랐다. 하품을 하고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반쯤 뜬 눈으로 공용세면실로 향했다. 공용세면실이라 해봤자 세수하라고 물 한 양동이 놓여있는 곳일 뿐이지만. 세면실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엘린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마도 검은 머리색때문이겠지만. 가릴 생각은 없었다. 귀찮기도 했고, 이거 가리려고 방으로 가서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오기도 뭣했으니까. 한손으로는 앞머리칼을 잡아 고정하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확 들었다.

'얼음이라도 띄워놓은거야..?!'

물은 정말 차가웠다. 눈이라도 퍼온 것일까. 세수를 끝마치고 얼굴을 닦으려 수건을 찾았지만 꼬질꼬질한 흑색 수건을 보고는 수건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찝찝해..'

대충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고는 밖으로 나갔다.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는것이 보였다. 그걸 보고는 식당쪽으로 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엘린의 등을 쓸쩍 밀었다.

"?"
"엘린씨!"

루엘이였다. 그녀는 엘린이 반가운 듯 웃고있었다.

"아, 루엘."
"어제 어떻게 된 거였어요? 오늘도 물에 빠졌어요? 왜 이렇게 젖으신.."

그녀는 엘린의 머리칼을 만지며 물었다. 아무래도 머리 끝에도 물이 묻은 모양이였다.

"아아.. 수건이 없어서."
"그래요? 아, 이리오세요."

루엘은 엘린을 잡아끌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루엘이 묵고 있는 듯한 1인실방이였다. 게다가 꽤나 비싼 방인듯 세면실이 방에 붙어있었다. 루엘은 수건 하나를 꺼내 엘린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루,읍.. 내가 할,수 있..."

엘린이 말을 이으려 했지만 루엘은 듣지않고 한손으로는 엘린의 턱을 고정하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갔다. 닦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양쪽 뺨이 붉어졌다. 그 얼굴을 보고는 루엘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죄송.. 푸흡..."
"아프다고..."
"엘린씨 지금 완전 귀여워요."
"기분 나쁘거든?"
"푸흡... 근데 진짜 어제는 어떻게 됐던 거예요? 그리고 그 푸른머리의.. 천족분은.."
"친구야. 근데 그녀석 진짜 어디갔지?"
"에? 사라지셨어요?"
"응. 식당쪽에 있는 것 같아서 찾으러 가보려고."
"오, 저도 같이가요. 천족 본적은 처음이라 더 보고싶거든요."
"날개 숨기고 있을 껄?"

루엘은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괜찮다는 얼굴로 엘린을 끌고 식당으로 갔다. 그러나 식당 어디에서 로젠의 코발트블루빛 머리칼은 보이지 않았다. 그 머리색은 아주 눈에 띄는 색이고, 또한 그 색은 가진 인간은 드물었다. 그러니 눈에 띌 텐데도 로젠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길을 잃은건가..?'

일단 자신이 데려온것이기도 하고 그가 없으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배에는 노예상인이 있었다. 날개를 보였다가 잡히기라도...

'날개..!!'

로젠은 어제 날개를 꺼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다면 설마 노예상인에게...

'아니야. 길을 잃은 거일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을 나왔다. 루엘이 무슨일이냐고 물어왔다.

"식당에 없어서. 길을 잃은 것 같아."
"아아... 그래도 배가 작다보니 금방 찾지 않을까요?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갑판쪽에도, 숙실쪽에도, 혹시나 해서 가본 배의 짐칸에도 로젠은 없었다. 길이 엇갈리기라도 한걸까. 그러다가 루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
"응?"
"같이 온 일행이 있는데 깨우는걸 깜빡했어요."
"음... 가봐야하는거 아니야?"
"..괜찮겠죠, 뭐."
"근데 루엘은 프리움에는 왠일이야?"
"프리움에서 갈 곳이 있어서요. 엘린씨는요?"
"나도 비슷해. 그나저나 의뢰를 되게 먼곳에서 받았나봐?"
"아.. 의뢰 아니에요. 길드는 그만뒀답니다."
"왜?"
"그냥.. 복수할 때까지 길드에서 실력을 기르려고 했거든요. 복수가 끝났으니 길드는 그만두고 여기저기 여행이나 하려고요."
"그... 황성으로 안돌아가? 황녀였잖아."
"흐음.. 생각해봤는데 별로더라구요. 아직도 옛날에 배웠던 황족의 예절만 생각하면 그냥 드러눕고싶다니까요?"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시 배를 한바퀴 돌았다. 물론 로젠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쯤되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어제의 자신처럼 인어가 갑자기 덮쳐와 바닷속으로 끌려간게 아닐까. 아니면 노예상인에게 붙잡힌걸까. 남은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곧 배가 프리움에 도착하니까. 로젠이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엘린과 로젠은 아마 다시 만나기 어려울것이다.

'어딜 간거야, 도대체...'

그는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엘린의 왼쪽 눈동자에 싸-한 감각과 함께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배의 곳곳에 설치한 영상보존석을 확인하는 듯 배의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꽤나 많이 이와같은 경험을 했기에 이제 이 왼쪽눈에 비치는 것이 실제상황인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눈에 비친곳에는 로젠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곳이 비쳤다. 그렇게 몇번을 다른 곳을 보았을까. 드디어 로젠의 푸른 머리칼이 보였다.

"찾았다."

엘린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루엘은 '뭐를요?' 라며 엘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엘린은 앞으로 발을 내딛었고, 둘의 모습은 갑판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아으... 텔레포트? 근데 여긴..."

루엘은 신기한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고급숙실이였다. 누구의 방인지는 몰라도 로젠이 방을 착각하고 들어온듯 싶었다. 그러나 로젠의 상태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손발이 줄에 묶여있었고 눈에도 검은 천이 씌워져있었고 무언가 약품에 젖은 흰 천이 제갈처럼 그의 입에 물려있었다. 그는 날개조차 숨기지 않고 벽에 기대 잠들어있었다.

"로젠?!"
"이게 어떻게 된... 여기 설마 노예상인의 방인가요? 어? 륜씨!"

루엘은 그렇게 외치며 로젠의 옆에 기대있던 한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귀가 그가 엘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소년역시 로젠과 같은 모습으로 묶여있었다. 엘린은 갖고왔던 단검으로 줄을 끊고는 눈과 입을 막고있던 천을 벗겨냈다.

"엘린씨, 이거 플론 냄샌데요?"
"플론?"
"예. 그 독한 수면제요."

로젠의 입에 물려있던 천에는 플론이 적셔져있었다. 깨어나지 못하게 조취를 취한 것이였다. 엘린은 로젠을 깨우려 그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당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엘, 이 날개 보여?"
"예? 예. 보여요."

로젠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저 날개를 숨겨야 했다. 그러나 그가 자고있는 상태에서는 숨겨지지 않는 듯 했다. 엘린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왼쪽 눈에 집중했다.

'방으로 돌아가야...'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방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제의, 그 천족소년을 팔던 노예상인.

"!!"
"네,네놈들!! 왜 남의 방에 있는게냐?! 그녀석들을 놔!! 너희 프리움에 도착하면 모조리 감옥에 쳐넣어주겠어!!"

노예상인은 엘린과 루엘을 보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하? 멋대로 남의 친구를 납치한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그러게요.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것 같네요."

루엘은 허리춤에서 긴 장검을 꺼내들었다. 여성용 레이피어가 아닌 푸른빛의 장검은 베면 중상을 입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노예상인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노예상인의 옆으로 두명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개인기사거나 고용된 용병이겠지.

"저새끼들 잡아! 특히 검은머리 놈은 상처내지말고 생포해!"

몬스터도 아니고 생포라니.. 기분이 나빴다. 그나저나 이쪽 층은 큰소리가 나는데도 아무도 안왔다. 모두 식당에 있는것일까. 루엘은 코웃음치며 장검을 들고는 그대로 돌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기사가 간신히 루엘의 검을 막았지만 반격한번 못하고 밀리고 있었다. 제국의 황실검술 특유의 가볍고 빠른 검술에 남자는 반격할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엘린은 작은 단검 하나를 들어 루엘을 공격하려는 다른 한명의 기사에게 던졌다. 날카로운 검은 정확히 기사의 손목에 박혔다. 기사는 그 차가운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저정도도 못피하고 말이지.'

그는 앞으로 달려가며 기사의 턱을 차올렸다. 직업특성상 워낙에 이곳저곳 뛰어다니다보니 다리힘은 저절로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사는 비명을 지르느라 피할 타이밍을 놓쳤고, 긴 다리가 정확히 기사의 턱을 가격했다. 그것에 화난 기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손목에 박힌 단검을 빼내고는 검을 다시 잡았다. 그래봤자겠지만. 기사가 엘린쪽으로 검을 내리쳤다. 파워는 강했지만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뒤로 살짝 물러난 후 기사의 검을 밟고 다시한번 발을 날렸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대로 발로 검을 잡고있던 손을 차고는 기사의 멱살을 잡고는 명치쪽을 세게 가격했다.

'반격할 생각을 안하네...'

그래도 일단은 전투를 하는 사람인데 조금도 반격을 하지 않았다. 곧이어 루엘도 자신이 맡고있던 기사를 쓰러뜨렸다. 꽤나 과격하게 싸웠는지 기사의 몸이 피투성이였다. 갑옷을 입지 않은 탓이겠지. 그러자 노예상인은 한번 주춤하고는 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따라갈까도 생각했지만 쓸데없이 힘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죽일 생각도 없었고 서둘러 로젠을 깨우는것이 시급했다.

"로젠, 좀 일어나 봐. 응?"
"안되겠어요. 플론에 중독된 것 같아요. 일단 밖의 공기를 좀 마시게 하면 정신을 차릴 것 같은데..."

루엘은 로젠의 날개를 보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밖의 공기를 마시려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이곳으로 몰리겠지. 별로 좋진 않다.

"제가 사람 없는 곳을 찾아올게요. 설마 한군데도 없겠어요?"

루엘은 륜이라는 엘프를 엘린에게 맡기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언제 다시 노예상인이 올지 모르는 일이였다. 물론 배에 타고있는 마법사와 용병들을 매수해서 오겠지. 아무래도 배 안이다보니 마법도 그리 크게 쓰지 못하겠지만, 오라역시 쓰기가 힘들 것이다. 게다가 여러명은 곤란했다. 빨리 로젠이 깨어나야 이곳을 벗어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엘인 줄 알았지만 아니였다. 어쌔신이다보니 감각에 무척이나 예민한 그였다. 들려오는 소리는 루엘이 신은 샌들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소리였고, 여러명이였다. 직감적으로 노예상인과 용병임을 눈치챘다.

'어쩌지..'

물론 흔히 말하는 선빵.. 엘린이 먼저 공격한다면 유리하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두세명일 때의 이야기. 게다가 그들의 목적은 엘린을 죽이는것이 아니라 로젠과 륜을 데려가는 것. 잠시라도 발이 묶인다면 그들을 지키기는 힘들것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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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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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24 19:38 | 조회 : 28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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