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꿈속 악마(2)

제 13장-「」

"으윽?!"

머리채가 잡히더니 무언가에 끌려 밑으로 떨어졌다.

"엘린!!"

로젠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배 밖으로 머리를 내민 로젠이 보였다. 그가 잡으라는 듯 손을 내뻗었다. 엘린역시 그 손을 잡기위에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는 엘린을 바닷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훨씬 강했다. 두피가 벗겨지는 기분이였다. 이윽고 물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된..?!'

몸은 자꾸만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무언가. 경험상 이 감각은 인어의 이빨이였다. 팔이 물어뜯기자 물속에 피가 퍼져나갔다. 저항하려 했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숨이 막혀왔다. 눈조차 뜰 수 없는 물속에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런데,

촤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린을 잡아끌던 힘이 사라졌다. 그리고 엘린의 몸은 무언가에 밀려나 튀어오르듯 위로 급속도로 올라갔다.

"?!"

뭐가 어떻게 된건지 상황파악조차 할수 없었다. 그저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슬쩍 눈을 떴을때는 이미 물속이 아닌 허공이였다. 배가 내려다보였다.

"잠깐.. 나, 설마..?"

배의 한쪽 구석에서 사람들이 엘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순간, 엘린은 밑으로 수직낙하했다.

"으?!"

놀라서 오라를 쓸 정신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타앗-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더이상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죽은건가 하고 슬쩍 눈을 떴다. 눈 앞에 보이는건 아까와 같은 밤하늘이 아닌, 흰색 셔츠였다.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파이어빛 눈동자. 눈동자는 다행이라는 듯 슬며시 웃고있었다. 그제서야 엘린은 상황을 파악했다. 로젠이 날아올라 떨어지는 자신을 도중에 받아준 것이였다.

"또다쳤네."
"후우.. 나 어떻게 된거야?"
"미안. 인어가 나타날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빨리 가서 치료하자."

로젠은 엘린을 안고는 갑판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엘린과 로젠을 보며 수근거렸다. 당연했다. 엘린을 잡으려고 날개를 핀 순간, 날개에 걸린 환영마법은 풀려버렸으니까. 엘린은 그 시선이 싫어서 다젖은 망토로 얼굴을 숨기려했다. 그때,

"엘린씨?!"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자신의 이름이 불렸으니 그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뜻밖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루엘?"

허리까지 내려온, 끝이 크게 웨이브진 안개빛 옆머리칼과 그 머리칼의 반정도 길이밖에 안되는 크게 땋은 뒷머리. 그 특이한 머리모양은 분명 루엘이였다. 왜 여기있는걸까. 묻고싶었지만 로젠은 루엘을 돌아보지도 않고 엘린을 데리고 배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들어간 상처가 너무 쓰라려왔다.

"아직 못써?"
"아,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선원의 말에 로젠은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침대 두개가 벽쪽에 붙어있었다. 로젠은 아무 침대에나 가서 엘린을 침대에 눕혔다. 머리와 옷이 물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뽀송뽀송하던 침대도 축축하게 젖어갔다. 로젠은 '이크..' 하고 중얼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엘린의 옷을 벗겨냈다. 그러더니 한동안 고민하고는 잠시 밖으로 나가 수건과 병 하나를 받아왔다. 그리고는 마치 유리공예품을 다루듯 엘린의 몸을 닦았다. 그 모습에 엘린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
"그냥. 천족이 시중까지 들어주니까 너무 놀랍거든."
"아아.. 너 엄청난 인생을 산거라고. 천족한테 시중을 받고 악마를 노예로 썼으니까."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였다. 로젠은 수건의 마른부분을 병에 든 무언가로 적시더니 그걸로 엘린의 상처부위를 닦았다. 아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그거?"
"술"
"술? 그런걸 어디서 가져왔어?"
"선원한테 부탁하니까 그냥 주던데?"

말로는 설명 못하겠지만 왜 준것인지는 예상이 갔다. 타종족에게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인간의 행동이랄까. 종종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하프엘프들에게는 이상하게 더 상냥했던 인간들. 엘린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괜히 긴장하게 되고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쓰곤 했다.
꽤나 독한 술인지 향을 맡자 머리가 띵해졌다. 소독을 끝내자 아까 선장에게서 받았던 봉투를 뜯는 로젠. 간단한 약품과 붕대가 들어있었다. 그러더니 한 통을 엘린의 앞으로 내밀고는 물었다.

"뭐라고 써져있는거야?"
"어.. 바르는 약."
"하.. 누가 바르는 약인지 모르나..."

그말이 맞았다. 눈이 있다면 이 크림을 마시지는 않을테니까. 그나저나 로젠이 글자를 못읽는것은 의외였다.

"로젠. 글자 못읽..어?"

혹시나 민감한 부분일까봐 끝말을 조금 작게했다.

"인간의 글자는 못읽어. 애당초 난 천족이니까."
"근데 말은 되게 잘한다."
"아.. 신을 모시는 자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써. 필기법이 다를 뿐이지. 신이 자신들의 말을 타종족들에게 전하기 위해 언어의 축복을 내린거지."
"하지만 몬스터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잖아."
"그들은 신을 모시지 않으니까. 단지 신을 모시고 신과 소통하는 것 만으로 신의 축복을 받는건 조금 이상하지만. 아무튼 신을 모시는 우리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해."
"근,데.. 악마도 신을 모셔?"
"당연하지."
"어떤?"
"마법신이나 어둠신.. 같은?"
"마법신이나 어둠신은 이름이 없어?"
"아니, 그런건 아닌데. 이름이 바뀌니까."

신이 바뀐다는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왔다. 무슨 뜻일까. 호기심어린 눈으로 로젠을 바라보았다. 로젠은 '바르는 약' 의 포장을 뜯고 크림을 가득 퍼내고 엘린의 어깨에 발랐다.
질척한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그가 능숙하게 붕대를 팔에 감고는 테이프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옷을 가져와서 입혀주었다.

"근데 물속에서 어떻게 나온거야? 그.. 인어와 싸우던 검은 힘?"
"어? 네가 건져준 거 아니였어?"

로젠이 말하는 '검은 힘' 은 아마도 오라일 것이다. 하지만 엘린은 오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조차 없었으니까.

"그.. 마법같은 걸로."
"아니야. 난 중력조절이랑 환영마법이랑 텔레포트밖에 못쓰는걸? 그리고 중력조절도 당장 눈앞에 보여야 쓸 수 있어."
"다른 누가 구해줬나..?"
"아닐껄? 지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거든."

이상한 일이였다. 아직도 자신의 등을 밀어내던 그 감각이 느껴졌다. 사람의 손같은.. 무언가가. 그러고보니 방금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아주 선명하게 기억났다.

"..혹시 샌드맨이 뭔지 알아?"

자신의 꿈에서 언급된 것이니 만큼 그것이 실존할 가능성은 매우낮았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왔다.

"응. 잠의 정령이잖아?"
"어? 진짜 있는거야?"

엘린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로젠은 이상하다는 듯 엘린을 쳐다보았다.

"너 몰라서 물어봤던거야?"
"그럼 알고서 물어보겠냐. 근데 잠의 정령? 그런 정령도 있어?"
"아아.. 인간들에게 알려진 정령은 크게 네 정령이니까. 그밖에도 정령은 아주 많아. 그나저나 샌드맨은 어떻게 안거야? 인간들은 샌드맨의 존재조차 모를텐데."
"에? 그럼 잠의 정령은 정령계에만 있어?"
"아니. 인간계에 있기도 해. 그들은 주로 신관들에게 나타나 신의 명령을 꿈을 통해 전하거든. 게다가 운명신의 수호령이라서 간혹 누군가의 불행을 알아채서 꿈에 나와서 경고하는 녀석들이야."
"나비처럼 생겼어?"
"나비? 아닐껄. 새였던걸로 기억해.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개꿈을 꿨는데.. 너무 생생해서. 이상한 나비들이 나왔는데 샌드맨으로 만든 곳이라고.."
"뭐, 꿈을 샌드맨이 만드는거니까 아주 틀린말은 아니네."

로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엘린역시 그냥 넘겼다. .말그대로 '꿈' 일 뿐 이니까. 게다가 예지몽도 아니고, 샌드맨이 직접적으로 꿈에 나온것도 아니니 경고역시 아니였다.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다가 루엘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여러번 생명의 위협을 받았더니 피곤하고 정말 졸렸기 때문이였다. 로젠이 엘린을 안아들고 다른쪽 침대로 옮겨주었다.

"아, 괜찮은데..."
"괜찮기는. 자다가 기분나빠서 일어날걸?"
"그럼 너는.."
"어차피 잘 생각 없었어. 잘자."

로젠은 엘린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설마 자신때문에 침대를 못써서 자지 않는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뒤 그의 머릿속에는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로젠은 한숨을 쉬며 배의 귀퉁이쪽에 몸을 기댔다. 엘린이 너무 바뀌어 혼란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예전과는 다른 그의 모습이 매우 거슬렸다. 단지 외관만이 아닌, 그의 분위기. 자신이 알던 엘린과는 너무나 달랐다.

'뭔가 엄청 기분 이상하달까..'

새롭기도 했고 지금의 엘린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 긴장감은 뭘까... 이유모르게 긴장되었다. 평소같았으면 엘린을 끌어안고 잤을테지만 오늘은 그러기가 싫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점은 그와 가까이 있으면 긴장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엘린과 떨어지기 싫었다.

'미친건가..'

아무래도 오랫동안 엘린과 떨어져있었더니 그가 어렵게 느껴진 모양이였다. 바람이 찼다. 아무래도 바다이다 보니 추운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돌아갈까.. 해서 문앞까지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인기척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

분명 누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느껴지는건 코끝을 간지르는 뭔가 이상한 냄새. 로젠이 눈가를 찌푸렸다. 사파이어같던 푸른 눈동자는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순식간에 금빛으로 변했다. 금안으로 배안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한 안개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하얀 무언가가 코와 입을 막았다.

"!!"

로젠이 놀라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무언가 아주 강한 향이 코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가 띵-해졌다. 어지러웠다.

'이런..'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의식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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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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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6 20:11 | 조회 : 24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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