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꿈속 악마

제 12장-「꿈속 악마」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린의 얼굴과 몸 곳곳에 묽은 액체가 튀었다. 비릿한 향의 그것은 인어의 피. 엘린이 서둘러 상황을 살폈다. 인어들의 몸이 물풍선처럼 터져 주위에 널부러져있었다. 로젠이 다가와 엘린을 안아올렸다. 엘린의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인어에게 물려 살점이 덜령거렸다. 로젠은 주위를 돌아보며 인어들을 응시했다. 그러자 인어들이 쓰러져 배의 갑판에 눌리더니 어느순간 풍선마냥 터져버렸다. 용병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바라보았다.

"..뭐,야..? 어떻게 한.."
"마법이야. 선택대상에게 가해지는 중력을 늘리거나 줄이는건데.. 그보다 어떻게 해.."

로젠은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무래도 살이 찢어진 것 같았다. 엘린이 인상를 찌푸렸다.

"..로젠, 그보단 배가.."
"적어도 배에 마법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그녀석들이 배를 복구하든 뭘 하든 알아서 하겠지."

로젠의 말대로 스태프를 든 다섯명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배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작 저랬으면 얼마나좋아..'

배가 떠오르자 몇몇 사람들이 배의 아래로 내려갔다. 정비사인듯 하였다. 선장이 나와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번일은 선장의 잘못이 아니였다. 선장이 인어를 불러모은것도 아니였고, 선장은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봐 용병과 마법사들까지 고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귀족들은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선장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 모습이 썩 좋게보이지는 않았다. 선장은 이야기가 끝났는지 이번에는 엘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작은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저.. 손님덕분에 일이 훨씬 손쉽게 끝났습니다. 다치신 것 같은데 일단은 이거라도.."

엘린은 봉투를 받아들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선장은 머쓱하게 웃고는 선장실로 들어갔다. 선원들이 인어의 시체를 가져가는것이 보였다. 인어의 비늘은 꽤나 높은 가격에 팔리니 가져다 팔려는 거겠지.

"돌아갈까?"

로젠이 물어왔다. 확실히 인어의 피를 뒤집어써서 온몸이 찝찝했고, 바닷바람에 상처를 노출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젠은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들고는 선원중 한명에게 욕실을 물었다. 솔직히 이런배에 욕실이 있을리가 만무했고, 있다고한들 귀족같은 상류층만이 사용가능할 터였다. 그냥 물수건을 주면 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선원은 욕실로 안내해주었다. 아무래도 엘린이 인어를 잡아주었기 때문이겠지. 욕실이 있는 배 안은 꽤나 어두웠다. 이제 해가 지기도 했고, 배가 충격을 받아 광석(유리에 빛 계열 마법을 걸어 빛을 낸다) 이 많이 깨지기도 했으니까.

"혼자 씻을 수 있겠어?"
"왜? 씻겨주게? 그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걱정 마."

엘린은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혹시나해서 두벌 가져온 여분의 옷을 들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배 안이다보니까 좋은 시설은 바랄수 없었다. 준비되어있는것은 뜨거운 물 한 통과 차가운 물 두 통. 욕실의 바닥 한곳에는 배수관이 있었다. 다 씻고 물을 내보낼때만 잠시 열고 다 내보내면 닫는 수동형식. 배치고는 나름 괜찮았다. 게다가 그는 피를 씻어내기만하면 됬다. 뜨거운물과 차가운물을 적당히 섞고 그대로 머리위로 쏟아부었다. 아직 굳지않은 인어의 피가 물에 쓸려나갔다. 손으로 굳어버린 자신의 피를 닦아내고는 물을 뿌렸다. 마지막은 차가운물로 상처부분을 닦아냈다.

'따가워..'

그는 조금전 자신이 입고있던 옷의 비교적 깨끗한 부분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냈다. 준비된 수건으로 닦았다가는 수건이 핏빛으로 물들테니까. 새옷으로 갈아입고 아까 입고있던 옷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차피 찢어져서 더이상 입지못할 옷이니까. 밖으로 나가자 바로 로젠이 보였다. 밖은 벌써 저녁이 되어 조금 어두워져있었다. 그 어둠사이로 보이는것은, 로젠의 커다란 두장의 날개.

"너, 미쳤어?!"
"응? 왜그래?"

로젠은 엘린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자 놀라서 엘린에게로 다가갔다.

"그, 날..개 왜 드러내고 있는건데. 밖에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는 다른사람이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춰말했다. 로젠은 어리둥절하게 엘린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등쪽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대로 잘 숨겼는데?"
"무슨 소리야. 여기 이렇게.."

엘린이 손을 내뻗어 로젠의 날개를 잡았다. 부드럽게 손에 감겨오는 날개. 로젠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엘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뭐라 중얼거렸다. 마법스펠인 듯 했지만 말이 끝나도 눈앞의 날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보여?"
"응"
"이게 뭔일이래.. 이상태에서는 마법사들도 못알아보는데. 아, 엘린 그거 아니야?"
"무슨?"
"너 예전부터 이상한 능력 있었잖아. 갑자기 텔레포트 비슷한거 하고, 이상한걸로 잡고, 내가 어디에서 무슨짓을 해도 금방 알고."
"뭐야 그게."

그의 말은 정말 이상했다. 텔레포트면 텔레포트인거지 텔레포트 비슷한거라니. 게다가 이상한걸로 잡았다니. 혹시 오라를 말하는건가? 그리고 어디에서 무슨짓을 하면 그걸 어떻게알아. 눈에 보여야 알지. 하지만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로젠이 말을 이어갔다.

"나도 일단은 마법을 쓰니까 지력을 느낄 수는 있어. 하지만 엘린이 그 능력을 쓸때에는 조금의 지력도 느껴지지 않았는걸. 아무튼, 네 눈에만 보이는 거라면 별상관 없잖아?"
"아니, 내 눈에만 보일리가 없잖아. 내가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보이겠지."
"밖에 있는 것들은 인간이잖아."

그 말은 마치 '너는 인간이 아니야' 라고 들렸다. 하지만 저 문제로 계속 입씨름을 해봤자 끝이 나지 않을것이라는걸 잘 아니까 그냥 입을 닫았다. 로젠은 한번 웃고는 올라가자며 엘린의 손을 끌었다. 갑판 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식사시간때문인 것 같았다.
로젠은 엘린과 배의 귀퉁이 쪽에 자리잡았다.

"여긴 왜오자고 한거야?"
"으음... 별이 예쁠것 같아서 온건데 없네. 경치가 좋거든. 게다가 사람들도 아까 식당으로 가서 없고."

확실히 로젠의 말이 이해가기는 했다. 잔잔한 바닷물에 배는 별 흔들림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큰 달과 작은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구름이 많아 별이 많이 가려졌지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졸려."
"엘린은 여기 와서도 그런소리야? 잘 좀 보라구."

로젠은 엘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좀 보라는 사람이 잠을 재우면 어쩌자는 거냐고 반박하려했지만 딱 잠이 오던 순간이여서 그대로 있었다.

"들어가자.. 잘거야.."
"여기서 자. 아까 선원이 그랬는데, 우리 방쪽에 물이 차서 지금 빼내는 중이랬거든."

로젠은 그렇게 말하며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망토를 엘린에게 덮어주었다.
안쪽의 방들은 모두 공기가 그리 좋지 못했다. 게다가 조그만하고 통풍이 잘 되지도 않아서 습기가 찼다. 그에비해 이곳은 바람이 잘 불고 시원하여 잠을 자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조금씩 감각이 멀어져갔다. 잠들기 전의 시야 사이로 보이는 로젠의 푸른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들여 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항상 곁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너무나 허전했다. 도대체 왜.. 누가..

렌을 공격한 그인간만 아니였다면 지금쯤 렌과 대련을 하거나.. 카프라의 잔소리를 듣고와서는 렌에게 풀어버렸겠지. 엘린은 자신의 손을 슬쩍 옮겨 등에 단단히 고정시킨 렌의 검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을 감고 몇초정도 지나자 무언가 작은 것이 보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유난히 어두운 빛으로 빛나는, 보라색 나비들.

'뭐야..?'

나비들은 엘린의 시야로 들어와 마치 행렬을 하듯 날아올라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라우젠의 목소리.

'말씀하신 일 때문이라면, 렌은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일단 앉으시죠. 엔, 차를 내와주겠어?'
'앉으시죠.'

지금까지는 모두 라우젠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새로운 목소리.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엄숙한 여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당신께 도움을 청하러 온 날. 그날 아침에 '미래안' 이 열렸었습니다.'
'미래안에 비친 것은 렌..이라는 분의 죽음이였습니다. 주위에는 몬스터의 시체가 많아서 그 장면의 배경이 숲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 황자들께서 숲으로 토벌을 나가신다 하셨고, 그에 맞춰 미래안이 열린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변할 수 있는 운명과 변해서는 안되는 운명이 있습니다. 렌이라는 분의 죽음은 변해서는 안되는 운명이지요.'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차원을 계곡이라 하였을 때, 그곳에 작은 돌맹이를 던진다고해서 계곡에 이렇다 할 변화는 생기지 않죠. 안으로 들어간 작은 돌맹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에 휩쓸려 다시 다른곳으로 이동하죠. 그것을 변해도 상관없는 운명이라 합니다. 변한다해서 차원에 이렇다 할 변화를 주지 않는. 그러나 계곡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면 계곡에는 변화가 생깁니다. 계곡이 막힐 수도 있고, 그 진로가 변할 수도 있죠. 그것을 변하면 않되는 운명이라 합니다. 물론 변하면 않되는 운명이 변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렌이라는 분은 몇차례 운명을 거스른 자입니다. 이번에 역시 그랬고요. 그는 태어날 수 없는 자였고, 말을 하고, 움직여서도 되지 않는 자였습니다. 지금까지 신께서 상황을 정리하느라 늦어졌지만 지금이라도 차원에 변수를 만드는 그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꿈이라서 이상한 망상이나 떠오르는 것일까? 그런데 미래안은..
엘린도 미래안 정도는 알고 있었다. 크리벨의, 운명신 키뮤를 모시는 네이렌 대신전의 대신관 게르티아ㆍ네이렌. 현재 미래안을 갖고 있는 유일한 신관이였다.

'왜 미래안이..?'

아무리 꿈이라지만 미래안이라는 것이 뜬금없이 등장할 리가 없었다.

'진짜 개꿈인가?'

요즘 부쩍 꿈을 꾸는 횟수가 늘었다. 그에 따라 개꿈도 늘었지만 이제는 이런 황당하다못해 어이없는 꿈을 꾸다니. 아니, 그러니까 꿈인 것일까? 하지만 여인의 말은 머릿속에 잘 들어왔다. 물론 납득할 내용은 아니였지만. 그때, 환청이 사라지고 이번에는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르르르-
드디어 일어났어-
우리도 움직일 수 있어-
키킥-

여러명의 목소리. 그들은 합창을 하듯 계속해서 웃었다. 웃음소리가 매우 기묘했다. 마치 악령이 씌인듯한 웃음소리.

'도대체 뭐야..?'

죽여버려-
널 죽이려 한 녀석이야, 죽어야 해.
그런 녀석과 같이 있지 마. 우리랑 있자.
아무와도 친해지면 안된다는거 잊은거야?
우릴 잊은거야?
분명히 속셈이 있을거야
우리가 알아올게. 그러니까 여기있어-

마치 어린아이의 감정기복처럼 이상했다. 휙휙 지나가는 기분이였다. 물에 빠진듯한 기분이였다. 여러 마리의 아름다운 보랏빛 나비들이 엘린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뭐지? 이런 나비가 있었던가.. 나비들은 엘린은 신경도 쓰지않고 자기들끼리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근데 린이 건들지 말라고 했어.
뭐 어때. 지금은 주인이 아니잖아?
맞아. 어차피 우리보다 약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우리를 불러. 언제든 갈게-
부를 필요도 없어. 네가 원하면 그자리에서 성취시켜줄게.
대신 잊지 마. 네가 누군지.
그걸 잊으면 다시 깨어나기 힘들어-

시끄러웠다. 그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너희가 누군데? 그렇게 묻고 싶었다. 린은 누구야? 린...은..

그때 어제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꿈이 떠오르는 경우라니. 웃겼다. 그때의 검은 머리의 여인.

[리..ㄴ..]

린. 분명 그것일 것이다. 설마 꿈과 꿈이 이어진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나비들이 엘린의 어깨 위에 앉거나 머리 위에 앉았다.

왜그래? 뭐 이상해?
"그 린..이라는 사람이 누구야?"

꿈에 대고 묻는게 솔직히 자신이 봐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건 궁금한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비들은 까르르륵 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꿈이라고 생각해?
꿈은 맞아. 근데 네 상상속은 아니야.
여긴 우리와 샌드맨이 만든 곳이야. 너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야.
우리가 지금 사는 곳이야. 다른 것들은 데려오면 안돼.
물론, 넌 언제든 와도 돼.
린은 못됐어! 그년 때문에 도중에 못만나서..
원하는게 있다면 말만 해.
죽이고 싶는 놈이 있으면 목을 잘라줄게.
아, 그 렌이라는 놈을 죽인 놈을 죽이고 싶다고 했지?
우리가 찾고 있어. 금방 죽여줄게.

섬뜩했다. 마치 악마가 유혹하는 것 같았다.

대신 너는 여기에 있어.
우리는 네가 여기 있는게 좋아.

시야가 크게 휘청이더니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계속해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있기 싫었다. 미칠것 같았다. 아주 잠시동안 있었지만, 저 시끄러운 나비들이 마치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두려워.
순수한 두려움. 깨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엘린의 몸을 딱 잡고있는 것처럼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큰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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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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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09 19:00 | 조회 : 227 목록
작가의 말
네오아이

스리슬쩍 와 투척.. 1~11화 내용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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