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웅#1

숨겨진 영웅#1








* * * * *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며 슬슬 익숙해지던 천막의 천이 아닌 고급스러운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렌은 그것을 물끄러미 처다보며 생각했다



'침대?아,여긴 카리나 제국이였지.어쩐지,차가운 돌바닥이 아니라 그런지 푹신했구나.이렇게 깊게 잤던게 얼마 만일까?'



렌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옷은 첫날에 시녀들이 급한대로 가져다준 시종복이 아닌,부드러운 질감의 잠옷을 입고있었다.



커튼이 쳐진 창문 사이로 이미 중천에 뜬 태양의 따스한 햇빛이 가느다란 실 처럼 렌의 모습을 한올 한올 언뜻 비췄다.



"할아버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보며 렌은 깊은 그리움을 담아 중얼거렸다.이렇게 햇빛이 유난히 좋았던 화창한날에, 마을에 갔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붉어진 눈시울과 슬픈 목소리로 몃번이고 평소와는 다른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서 홀로 마을로 가신 할아버지.날 사랑해준 유일한 가족



'주술사'였던 할아버지는 굳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지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렌은 손을 세게 쥐었다.무딘 손톱으로도 손바닥이 깊게 패일 정도로 세게.렌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무것도 할줄 몰랐다.내가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다면,나이가 어리지 않았더라면,나 혼자서라도 남겨진 마을을 떠났다면.자그마한 힘이라도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전부 다 이미 지나가버린 부질없는 생각들임에도



하지만 이젠 나'혼자서라도 남겨진 마을을 떠났다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랬다면 '그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니까.



위험한 상황에서도 밝고 환하게 웃던 아이는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것은 처음 보았다.자신과는 다른세상인것 같았다.



아리샤는 줄곳 굳게 닫아왔던 문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빠르게 열었다.잊혀진줄 알았던 자그마한 감정이 싹을틔우고 정말 오랜만에 웃음이란걸 지었다.



그래서 괴로웠다.아리샤가 나타나자 죽은 할아버지가 생각난것은 어찌보면 나에겐 당연했다.둘은 정말 그 무엇보다 따스했다.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소중했던 사람에게 보살핌만 받으며 살았던게 싫었다.나는 할아버지를 잃고나서야 깨달았다.소중한 사람은 내가 지켜야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사라질거라고



렌은 자신이 머리가 좋다는걸 스스로 알았다.할아버지가 가르쳐주는 복잡하고 수많은 약초 배합법들도 하루이틀이면 전부 이해하고 실패없이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렇기에 부정할수 없는 사실을 알았다.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지킬 힘이 없는데 어떻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겠는가.그건 불가능했다.



차라리 안 지키는것이 낫지 지키지 못한 다는것은 싫다



철부지 어린 아이에 동화속 세상 같던 행복과 희망 따스한 온기가 넘치던 세상은,벌써 끝이나버렸다



그래서 렌은 그 순간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곁에 다른사람이 들어올 공간을 두지 않았다.



렌은 잠깐의 빈틈으로라도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모든것을 철저히 무시했다.



뒤늦게 불길함을 느낀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어댈때 렌은 홀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마치 아무것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렌은 입을 굳게 다물며 눈길한번 돌리지 않고 무시했다.사람들은 그런 렌을 보며 비난하지 않았다.적어도 마을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렌이 끝까지 마을에 남아 그들을 말릴때, 그들은 하나뿐인 가족을 잃어버린 나머지 제정신이 아니라며 렌을 무시하고 ,철부지 얘를 보듯이 하며 한귀로 흘려들었다.



그때 사람들이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자신들도 이상한점을 바로 알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자 춥고 좁은 공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껴있었던 곳은,이제 렌만이 혼자 남아 지독히도 넗게 느껴지는 방을 채우고 있었다.



렌은 창문도 없는 이곳에서 더이상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사실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하지만 혼자서.



렌은 그때 살고싶었다.노예로 팔려가기 때문에 죽지않은것에 감사하고 거기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찾고나자 주변에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모두 실험당해 죽거나 다른곳에 감금됐다



혼자.그렇게 생각하자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것들이의미가 없어진것 같았다.탈출하겠다는 의지는 순식간에 없어졌다.스스로가 허탈한듯한 조소가 쓰게 피어올랐다



렌은 그렇게 오랫동안 탈출하지 않았고 노예로 팔려갈날을 기다렸다.차라리 죽은듯이 살날을 기다렸다.탈출방법도 이젠 흐릿해졌다.



그때 다른아이가 들어왔다.그 아이는 낡은 옷이었지만 미모로는 순간 서적에서만 보았던 엘프를 연상케했다.



아리샤가 닫혔던 렌에 마음을 열자,렌은 생각했다.이번엔 내가 지켜줄거야.'우리'는 탈출을 하기로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생각보다 몃배는 쉽게 탈출했다.



아리샤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때 처음 느끼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살아있음을 느꼈다.함께있던 시간이 전부 행복했다.즐거웠다.그 아이가 좋았다.



렌은 침대에서 내려왔다.창문앞으로 다가가 쳐져있던 커튼을 열어졌혔다.하지만 해는 구름에 가려져 더이상 햇빛을 보내오지 않았다.



렌은 마음 깊숙히 묻혀둘려 했던것을 꺼내어 생각했다.



아리샤는 '문'을 열었지만 그뿐이었다.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렌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싫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렌은 회상에서 빠져나왔다.이젠 다가온 현실을 봐야했다.동화속 세상은 진작에 끝나버렸으니까.




그리고 문이 열렸을때, 커튼은 이미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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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29 23:24 | 조회 : 1,219 목록
작가의 말
하얀.

모두 추석 잘 보내셨나요?이제 추석 연휴도 끝이 났네여..그럼 이제 할로윈데이를 기다려야 겠네요!(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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