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촬영이 모두 끝나고 촬영본을 홀로 수차례 돌려보는 박홍건은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카메라가 얼마나 담아 표현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화면에 성진이가 마치 자신을 응시하는 것 같아 오싹함을 더했다.
본업이 원래 가수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이나 성진이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확실히 기계가 담아내서 그런지 그 현장 속에서 느껴졌던 느낌 보다는 부족했지만 충분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 허어... 진짜.. 양파네 양파야..”
홍건은 하루라도 빨리 이 영화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이 영화는 그의 최고의 대작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햇빛에 성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불속에서 꾸물거렸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성진이는 이불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때 그것을 막으려고 한 것인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동생 다선이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 오빠! 주말이라고 언제까지 자려고! 얼른 내려와서 밥 먹어. ”
“ ....으응.., 알겠어..-”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낮게 깔려 나긋한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왔다.
다선이가 성진이 방 창문을 활짝 열어 차가운 공기를 들여보냈다.
“ 아악!... 추워!!”
성진이가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다선이는 재미가 있는지 킥킥 웃으며 얼른 내려오라며 재촉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성진이는 이불 밖이 더욱 추울 것을 생각하니 정신과 싸워야 했지만 결국은 벗어나 창문을 닫고 내려왔다.
“ 잘 먹겠습니다..”
밥을 먹던 중 휴대폰이 알림음을 내며 울렸다.
성진이는 젓가락질을 멈춰 휴대폰을 확인했다.
‘ 성진아, 오늘 오전 12시에 ’속고 속이는‘ 홍보 인터뷰 촬영이 있으니까 잊지 말고
10시쯤에 데리러 갈게 ’
준우의 메시지였다.
몇 달의 끝에 촬영을 끝낸 성진이가
「Depth of Movie」 통칭 ‘DOM’, ‘돔’ 프로그램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성진이 뿐 아니라 감독 박홍건이나 같이 연기한 주연, 조연 배우들도 함께 촬영해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고 부분, 부분 영화를 공개하여 홍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대충 나오는 질문들을 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조금은 긴장되었다.
성진이가 밥을 우물거리며 먹는데 시간을 훑어보니 벌써 9시였고, 급하게 입에 밥을 털어 넣고서 일어섰다.
“ 잘 먹었습니다! ”
성진이가 밥그릇을 빠르게 물에 담가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씻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다 끝내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성진이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고 문을 열었다.
“ 왔네, 가자-”
“ 응, BSB 방송국으로 가는 거지?”
“ 어, 맞아. STR기획사랑 별로 안 멀어 ”
서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던 중 어느새 BSB방송국에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자 준우가 안내해 자신의 대기실로 들어갔고 곧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디자이너가 있었다.
“ 어, 성진씨 왔어요? 어서 와요. 오늘 옷 잘 입고 왔네요?”
딱히 준비된 옷 없이 그냥 스스로가 입고 오라고 했기에 성진이는 흰색 목 폴라티와
검은색 바지, 와인색 코트를 걸치고 왔었다.
전체적으로 핏이 살고 색감이 매치가 잘 되었기에 성진이의 얼굴이 살았다.
“ 앉으세요. 머리는 가르마펌 아직 남아있으니까 고대기로 정리 좀 할게요.”
성진이가 자리에 앉자 헤어 디자이너는 고대기로 이리저리 매만지며 볼륨을 넣었다.
유독 오늘 옷과 잘 어울려 보기에 좋았다.
얼핏 보면은 살인자 이태원의 모습 같았지만 이건 이것대로 후에 반전을 줄 것 같아
만족했다.
“ 하... 성진씨 진짜로 핏이 좋다. ”
“ 그러니까, 성진씨 우리 1번만 사진 찍어요.. ”
“ 하하, 감사합니다. 아, 네 사진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죠”
칭찬과 사진까지 찍고 성진이는 웃으며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 문을 열고서 들어가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촬영장 세팅을 하고 있었다.
배경으로는 ‘속고 속이는’ 영화 포스터가 크게 부착되어 있었다.
그때 프로그램 진행 감독 김민주가 보였다.
“ 안녕하세요. 김민주 감독님. 박성진입니다. ”
“ 아, 네 안녕하세요. ‘돔’ 프로그램 감독 김민주에요. ”
“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성진이가 웃으며 인사하자 김민주도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 안녕하세요. ”
‘돔’ MC 왕해진이었다.
“ 아, 네 안녕하세요. 박성진입니다.”
“ 왕해진이에요. ”
서로 손을 잡고 악수하며 간단하게 인사했다.
“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이야- 역시 엄청 잘생기셨네요. 카메라가 다 담지 못 한다는 것이 사실이었네요- ”
빈말이든 아니든 웃으며 칭찬을 해주니 성진이도 기분 좋게 감사하다며
왕해진을 맞칭찬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하나 둘 ‘속고 속이는’ 주연, 조연과 감독과 작가, 액션감독이 왔다.
인사하고 약간의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2시를 가르켰다.
살짝 저음인 목소리에 비해 김민주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 조명 세팅 마무리하시고 출연진들 준비하실게요. ”
‘속고 속이는’ 주연, 조연들은 카메라 밖에서 기다리고 MC 왕해진이 의자에 앉았다.
전체적인 디자인이 새롭게 예쁜 것이 보기 좋게 카메라에 잡혔다.
“ 초점 맞추고,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액션!”
“ 영화를 펼친다. Depth of Movie! ‘돔’! .. 오늘은 곧 개봉하는 영화.
‘속고 속이는’을 펼쳐보려고 합니다. 오싹한 살인사건 공포 스릴러. 바로 한 번
배우들을 모셔보겠습니다. ”
왕해진의 말이 끝나고 김민주가 손짓해 성진이를 비롯한 배우들이 카메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 이야- 안녕하세요. 차례차례 소개를 들어볼게요. ”
해진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성진이가 먼저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속고 속이는’에서 서민철 역을 맡은 박성진입니다. ”
“ 안녕하세요. ‘속고 속이는’에서 강민수 역을 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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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인사를 하고 간단한 말들을 주고 받으며 영화에 대한 홍보와 흥미를 이끌어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중 왕해진이 모두에게 물었다.
“ 어라, 그러고 보니 살인자 역을 맡은 사람이 보이지를 않네요?”
모두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었고 성진이가 대신해서 말을 이었다.
“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비밀로 남기기 위해 일부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궁금하시면 영화를 보러 와주세요.”
성진이가 눈을 휘어 웃자 분위기가 훈훈해지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귀여움도 어필하고 홍보도 하자 모두들 끄덕이며 이야기를 넘겨갔다.
성진이의 눈에는 엄지를 치켜든 박홍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