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러트싸이클

하윤과 진혁이 유럽 여행을 다녀온지 네 달이 지났다. 하윤은 최근에 진혁의 엄마, 혜원과 여러차례 전화로 안부를 나누었다. 그녀는 몇번 진혁의 러트싸이클에 대해 언급했다.

"출산 후에 혁이도 싸이클 주기가 좀 느려진 듯 한데, 그래도 방심하고 있으면 안된다."

"아직은 아닌건가요?"

"일단은. 재림이한테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재림이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 하윤아."

하윤은 입을 꼭 다물었다. 알파의 러트싸이클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낯설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하윤은 히트싸이클의 고통을 알았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성적 흥분감을 요구하게 되는 두려운 것이었다. 그걸 진혁도 겪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어떻게 준비하면 되나요?"

"혁이의 러트싸이클은 굵고 짧은 편이라, 하루만 피하면 될거야. 따로 갈 곳이 없으면 재림이랑 같이 본가에 머무는 것도 괜찮고."

"아아...."

"정 안타까우면 함께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함께 러트싸이클을 보낸다면 짧으면 3시간 안에 끝날거야. 다만, 피임에 주의해야 하지."

하윤은 혜원이 한 말을 입으로 곱씹었다. 여태까지 자신을 돌봐준 진혁의 고통을 무시하기는 싫었다. 허나, 도와주자니 좀 무섭기는 했다.

하윤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주머니 속 껍질에 쌓인 콘돔을 만지작거렸다. 혜원이 말하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였다.

진혁의 러트싸이클은 당장에 언제 터질지를 모르는 폭탄같았다.

***

우습게도 그 폭탄은 또 다시 한 달이 지나도록 터지지 않았다. 하윤은 재림이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혁의 본가와 집을 자주 왕복했다.

짝을 맺은 알파는 러트싸이클의 주기가 확실하게 바뀐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예상 주기를 뒤엎을 줄은 몰랐다. 진혁의 러트싸이클을 기다리길 포기하고 내일은 집으로 재림이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하윤은 차에서 내렸다.

진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자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윤은 문을 따고 들어갔다. 신발을 갈아신으며 하윤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하윤이 발을 내딛는 공간이 점점 알 수 없는 공기로 잠식되어가는 듯 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의 공기였다.

'환기를 안시켜서 그런가?'

속으로 생각하며, 하윤은 베란다로 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니 좀 살것만 같았다. 알수 없는 기운을 뿌리치며 하윤은 허파 가득히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 혁이도 이런 공기 속에 있는 건가?'

진혁이 자다가 숨이 막히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며, 하윤은 윗층으로 달려갔다. 왠지 모르게 계단을 걸을 때마다 무언가 하윤의 다리를 잡아채 앞으로 끄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리만치 두려움을 주는 위압감이 하윤을 내리눌렀다.

"으, 으앗. 무슨...."

순간적으로 하윤의 머리가 멍해졌다. 바들거리는 다리는 안방 문을 열자마자 힘없이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사타구니가 아릿하게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윤은 지독하게 야릇한 공기에서 벗어나려 허둥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땅을 짚었지만, 손가락은 땅바닥과 닿자마자 발발 떨며 떨어져나갔다. 온몸이 성감대가 된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하윤의 뺨은 잔뜩 상기된 채로 붉은 빛을 드러냈다.

"박...하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굵고 낮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극우성 알파의 강력한 페로몬은, 하윤이 나지막히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보다 강했다. 분명 안방 창문은 모두 닫혀있었는데, 어디서 바람이 분 것처럼 방문이 쾅 하고 닫혔다.

어두운 공간에서는 위압감과 흥분감이 배가 되었다. 하윤의 히트싸이클 마저 끌어올릴 듯한 공기에 하윤의 머리가 싸해졌다.

진혁을 봐주고 뭐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들었다. 허나, 망할 다리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딱 달라붙었다. 극한의 흥분감에 하윤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터질 듯이 피부는 달아올랐다.

"하윤아."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올라와."

목소리가 명령하는 말투로 하윤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누군가에게 맞은 듯 멍해졌다.

"침대 위로, 올라와."

하윤이 눈을 겨우 뜨고 진혁을 바라보았다. 흥분감에 가득 찬 반들거리는 맹수의 눈이 보였다. 이런 어두는 공간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눈빛이 빛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었다.

"혀, 혁아....나...."

"최대한 자제할 테니까, 어서."

진혁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그나마 다정하게 울렸다. 진혁 그도 급박한 상황인 것인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하윤은 조금 용기를 내어 기어갔다.

무릎이 바닥을 쓸며 조금 아팠다. 아마 따끔거리는게 상처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뜨거워진 몸은 감당을 못해내며 침대 앞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진혁의 커다란 손이 쓰러진 하윤의 허리를 잡아챘다.

침대위로 끌어올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하윤에게 눈치 챌 새도 주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순간 하윤은 새하얀 나체였다. 몸은 속살까지 차가운 공기에 닿았지만, 아까보다 더욱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진혁이 하윤의 나체를 하나 하나 감상하듯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으아.....하...."

"괜찮아, 하윤아."

진혁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그는 기분이 좋은 것인지 입꼬리가 좀 올라가 있었다. 늘 좋았던 그의 웃음이었지만 지금은 뭔가 섬뜩해 보였다.

진혁이 하윤의 어깨선을 타고 입술을 흘렸다. 손은 하윤의 뒷덜미에 대고 자신의 잇자국을 만져댔다. 부부의 맹약을 만지는 진혁의 손길에 느끼며, 그는 정신줄을 놓쳤다 붙잡기를 반복했다.

진혁이 자근거리며 깨물던 어깨에서 입술을 때었다. 한 손으론 침대를 짚고 반쯤 일어난 그의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위압적이고 아름다웠다. 진혁의 눈에 맹수처럼 새파란 빛이 났다. 그는 먹이를 뜯기 전, 전후를 즐기듯 제 입술을 햝았다.

진혁의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하윤의 뺨 위에 투둑- 떨어졌다. 진혁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닫혔다. 마치 정말로 하윤을 잡아뜯으려다 겨우 그걸 참은 모습이었다.

"하윤아.... 콘돔있어?"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하윤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자신의 바지를 가리켰다. 진혁의 표정이 이상하게도 무언가에 대해 실망한 듯 보였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번식본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알파가 콘돔을 먼저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내심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진혁에게도 번식본능이 없는 것은 아닐테다. 진혁은 미간을 찌푸린 표정을 지으면서 콘돔을 꺼내들었다.

"으윽...."

한 손으론 하윤을 유린하면서 진혁이 콘돔을 뜯었다.

"아, 자제 안되네."

"으응...흑, 윽...."

"씨발 돌겠다."

진혁의 낮은 욕설에 하윤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진혁은 급히 말을 정정하고 사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뺨에서 땀이 흘렀다.

진혁의 손가락이 하윤의 입속으로 진입했다. 끈적한 타액이 진혁을 감쌌다. 동시에 하윤의 페로몬도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진혁은 아까 사과해놓고 다시 욕을 짓씹었다.

단단한 것이 하윤의 뒤에 닿았다. 뭉근하게 문질러오다가 예고없이 안으로 진입했다. 하윤이 헉헉거리며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순식간에 진혁의 페로몬이 안정되게 바뀌었다. 흥분감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지독한 향수같은 페로몬이 아니었다. 솔잎나무 향을 풍기며 하윤의 심장을 잠재우듯 두드렸다. 하윤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더 넣을게."

"아, 아직......으윽! 아! 아악...학..."

"하윤아. 안아."

"윽, 응....앞, 아프잖아...흑, 으응..."

"안아."

하윤이 진혁의 목을 양 팔로 그러안았다. 늘 그렇듯 진혁의 목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하윤만큼이나 뜨거웠다. 하윤이 헉헉대며 진혁의 어깨에 턱을 받쳤다.

콘돔을 낀 진혁의 것이 하윤의 안에서 움직였다. 내벽에 불을 지르듯 뜨겁게 안으로 파고들었다가 빠지길 반복했다. 하윤의 눈가에 그렁그렁 거리던 눈물이 떨어졌다.

***

"진짜, 진짜 아팠다고!"

하윤이 투정을 부리며 진혁의 어깨를 탁 때렸다. 나름 힘을 주었지만 전혀 타격을 얻지 못한 진혁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하윤아. 그리고 미안."

"미안한 거 알면....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줘."

하윤은 진혁을 더 갈구려다가 말았다. 러트싸이클이 히트싸이클 만큼이나 자제 안되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으니 되었다. 사고없이 그걸 이겨낸 진혁과 자신이 장할 뿐이었다.

"근데 그 상처는 뭐야? 그것도 내가 한거야?"

진혁이 하윤의 무릎을 보며 물었다.

"아, 이거... 어제 기어가다가 바닥에 쓸렸나봐."

"줘 봐. 이런거 그냥 놔두면 부어올라."

"이따 빨간 약 바르면 돼."

"일단 씻고."

진혁이 하윤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바닥 전체에 러그를 깔까? 그럼 쓸려도 안 다칠 텐데."

진혁의 말에 하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바닥을 기어갈 일을 만들지 않는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나중에는 '공주님 안기'해서 들고가야겠네. 함부로 무릎에 상처내지 못하게."

진혁이 마주 웃었다. 장난스런 눈빛에는 어제의 위압감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윤은 다시 실없이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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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9 22:54 | 조회 : 4,590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독자님들 사랑을 작가가 ☆ get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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