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혁아, 빨리와!"

하윤이 양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전날에 비가 와서 공기가 눅눅한 감이 있었지만, 하윤은 전혀 심경쓰지 않는 듯 했다. 하윤이 뱃길을 달려가다, 빙글 돌아서서 헤실헤실 웃는다.

이탈리아에서 사준 '끈이 허벅지까지 닿는 옷'이 펄럭이며, 베네치아의 강과 전경을 이뤄낸다. 진혁은 그런 하윤의 모습을 감상하며 가려 했지만, 하윤은 마음 급히 굴며 진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얼른, 얼른."

"허리 아프다고 한 애 맞아?"

"아직도 아프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시간 낭비할 수는 없지."

하윤은 진혁을 먼저 곤돌라 쪽으로 밀었다. 베네치아 강의 작은 배, 곤돌라는 두둥실 뜨며 하윤과 진혁을 나란히 태웠다. 노를 젓는 사람이 함께 타며, 하윤과 진혁에게 알파오메가 부부냐고 물었다. 하윤은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으면서 맞다고 대답했다. 남에게 쉽게 빵긋빵긋 웃는 하윤이 못마땅했는지, 진혁이 하윤의 뺨을 쥐어, 자신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했다.

배는 수상가옥들이 줄줄이 이어진 집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하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낡지만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마을을 감상했다.

하윤은 지금 이 순간, 눅눅한 공기와 살에 달라붙는 옷의 천조각 하나까지도 모두 좋았다. 눈을 감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눈두덩이를 간지럽혔다. 눈썹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하윤이 진혁에게 기대었다.

"사진 찍을래?"

"응."

하윤이 휴대폰을 들어올려 진혁에게 내밀었다. 휴대폰이 높이 올라가자, 하윤이 입술을 쭉 내민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진혁은 그 모습에 빵 터져 웃으며 연속으로 휴대폰을 눌렀다.

"넌 베네치아 와본 적 있어?"

"이탈리아는 와본 적 있는데, 베네치아는 처음이야."

"오올.... 이탈리아는 와본 적 있는거야?"

"관광하러 온 건 아니었고, 이탈리아 쪽 사업 배우러 잠깐."

"아아..."

하윤이 진혁의 손을 마주잡고 깍지꼈다.

"그럼 나랑은 즐기면 되지. 공부말고 관광으로만."

하윤이 깍지낀 손을 흔들었다. 찬 공기 속에서도 점점 따뜻해지는 두 손은 두 사람이 곤돌라에서 내릴 때까지도 이어졌다. 습기 있는 환경때문에 손과 손의 살이 맞닿은 데에 쉽게 땀이 맺혔다. 그래도, 두 사람은 손이 미끌거리던 말던 더 거세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그보다도 깊은 감정들이 눌려 담겨있었다.

***

"아, 아읏!"

하윤이 벅찬 숨소리와 함께 고개를 꺽었다. 진혁은 하윤의 얄쌍한 허리를 감싸안고 허리짓을 반복했다.

진혁의 단단한 근육질의 허벅다리가, 하윤의 뒤에 수도 없이 부딪히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하윤은 푹신한 베게에 얼굴을 묻고, 쾌락이 잔뜩 담긴 비음을 내질렀다.

"오늘도 한 번만 하는 거야?"

"아, 아읏....윽, 으응....아프, 아프다고오..."

"살살했는데."

"이, 이, 흡, 사기꾼, 아.... 뭐가 살살이야, 흡, 끅..."

하윤이 베게를 팡팡치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진혁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뜨거운 하윤의 내부를 조금 느끼다가 그는 자신의 것을 뺐다. 하윤은 커다란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으으...윽!"

아래가 빈 듯 허전한 느낌과 함께, 구멍 입구의 쓰라린 고통이 뒤늦게 찾아왔다. 하윤이 베게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윤아, 그대로 베게 물고 있어봐."

"뭐? 왜?"

"물고 있어, 세게. 아니면 혀 깨물수도 있어."

진혁의 말에 하윤은 이번엔 또 뭐야, 하고 생각하며 푹신한 베게를 이로 물었다.

"무르쓰..."

"물었어?"

"으... 무르뜨느끄..."

진혁은 하윤이 베게를 물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곤, 고개를 숙여 하윤의 뒷덜미에 입술을 대었다. 따뜻한 느낌에 하윤이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므, 므..."

"조금 아파, 하윤아."

"믄드.....으..."

베게에 입이 막혀, 제대로 대답조차 못하며, 하윤은 머리를 굴렸다. 이번엔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다시 하자는 것일까, 하윤은 내일 일정을 생각하며 걱정했다. 또 다시 배를 맞추었다간 내일 파스를 잔뜩 붙이고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아예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윤의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진혁이 하윤의 뒷목에 댔던 입술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마치 짐승이 먹이를 사냥하듯 크게 베어물었다.

"아, 아....아아아악!"

하윤이 깜짝 놀라며 입에 물었던 베게를 놓았다. 입에서는 이미 쉬어버린 비명이 흘러나왔다. 고통에 흐르는 눈물을 쏟고, 하윤은 다시 베게를 입에 물었다.

진혁의 이가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목덜미는 불타는 듯 고통에 시달렸고, 너무 아파서 고통조차 다른 세상의 것 같이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게 비현실 적으로 느껴졌다.

"으으...으그극...흑.."

하윤이 베게 속에서 이를 갈며, 눈물을 흘렸다. 이가 혹시라도 깊은 데를 찌를까 두려워 고개를 흔들지도 못했다.

진혁은 그런 하윤의 상황을 알고 이를 살에서 천천히 뺐다. 피가 흐르는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뜨거운 혀로 햝기까지 한다.

"으윽....흑, 뭐, 뭐야, 뭐..."

하윤은 얼마나 지쳤는지, 말하다가 눈을 뒤집고 기절했다. 계속 목덜미를 햝아주다가 진혁은 하윤이 기절한 것을 알고 입술을 때었다.

"휴우...."

진혁은 급히 휴대용 구급상자를 들고와, 하윤의 뒤를 소독하고 거즈로 감쌌다. 하윤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하윤이 아파할 것을 알았지만 후회할 마음 따윈 없었다. 하윤이 곤돌라를 저어준 사람에게 받은 질문에, 두 사람이 부부라고 대답한 순간부터 진혁은 큰 결심을 내린 것이다.

그는 하윤과 평생을, 영원을 함께하리라고 마음속으로 깊이 다짐하고 맹세했다.

하윤의 뒷목을 거즈로 감싸고 의료용 테이프를 감싸는 손길이 부르르 떨렸다. 미안함 반, 사랑하는 자를 영원히 가졌다는 쾌감 반이었다.

《추가설명》

※ 알파가 성교시 또는 성교 후에, 오메가의 목덜미를 물어 자국을 남기는 행위를 오메가버스 세계에서는 각인이라고 합니다.

※ 각인이 된 오메가는 다른 알파의 아기를 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알파의 페로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각인이 된 오메가와 각인을 한 알파는 '짝' 이라고 불리며, 주로 부부관계를 형성합니다.

※ 각인을 하고 짝이 된다는 것은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 각인의 잇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평생 갑니다.

※ 각인은 중복이 불가하며, 다른 알파는 그 위에 다시 각인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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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3 01:04 | 조회 : 3,730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완결이 가까워지네욧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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