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등 뒤, 정확히 말하면 엉덩이골 사이에 느껴지는 위화감에 몸을 움츠렸다. 하윤은 뒤에 닿을락 말락하는 단단한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후......"

낮은 한숨소리가 들리며 목덜미에 작은 바람이 닿는다. 하윤은 간지러운 뒷목을 긁고 싶은 생각을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목덜미에 무언가 닿았을때, 하윤은 그것이 간지러움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참지 못한 자신의 손인 줄 알았다. 차갑고 말랑말랑한, 게다가 조금 축축했던 그것은 하윤의 손이 아니었다.

하윤은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어둠에도 긴장이 묻은 땀에 절여진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은 보였다.

"깼어?"

등줄기에 주르륵 땀이 흐른다. 동굴같이 낮은 목소리에 하윤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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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후 약속한 일본 온천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박하윤과 부랄친구인 윤성환을 포함한 다섯 명이 전부였지만 마구잡이로 같이 떠날 친구를 불러모은 애들 덕에 여행 직전 최종인원은 열 두 명이 되어버렸다. 오메가, 알파, 베타 그리고 남녀가 뒤섞인 애매한 조합에다가 다른 학교 학생으로 하윤에게는 초면인 사람도 있었다.

"미친, 누가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온거야?"

"하하핳....."

"원래 다섯 명 아니었어?"

열 두 명 사이 사이에 끼어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몇명을 노려봐 주며 하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윤은 그들이 뻔뻔한 웃음만 짓는 이유를 알았다. 예약해둔 일본식 전통집은 충분히 넓었고,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조용한 분위기의 여행보다는 축제 분위기를 원했을게 분명했다.

저녁에 도착한 숙소에서 마신 술은 썼다. 목구멍을 내려가며 끊임없이 목젖을 찌르는 느낌에 하윤은 눈살을 찌뿌렸다. 어른들이 권해서 한 모금 마셔본 맥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반대했던 애들도 지금은 하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잔을 비웠다.

"자. 그럼 방배치 좀 해보자."

"진작에 했어야지, 새끼야. 벌써 몇 명은 뻗었는데."

술 한 번 마셨다고 친해진 애들을 힐끔거리며 소극적인 몇은 감탄한다.

"별채에 잘 사람이랑, 본채에 잘 사람 정하자. 집 주인이 별채에는 두 명, 본채에는 열 명 자는 거랬어."

"일단은 알파 오메가랑 남녀 베타는 따로 구성해봐. 여기서 사고 터지면 우리 다 좆됨."

한 명이 종이를 가져와, 각자의 성별을 적었다. 놀랍게도 평소에 운이 없던 하윤은 가위 바위 보에 이겨 별채에 잘 사람으로 뽑혔다.

"음..... 그럼 하윤이는 이진혁이랑 자면 되겠다."

"이진혁?"

같은 반이었던 애가 가리킨 남자는 처음보는 사이였다. 아마 다른 학교 학생일 것이 분명했다. 동떨어지고 한적한 별채의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초면과 함께라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윤이 불편함에 몸을 조금 비틀었지만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진혁이는 인상은 무서워 보여도,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은 착해."

덧붙여진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참에 친해지면 되지. 너 조용한 여행 좋아하잖아. 별채는 본채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용할 걸?"

아마 나머지 열 명은 술에 떡이 될 때까지 놀 생각을 할 지도 몰랐다. 하윤이 진혁을 바라보자,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하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인원의 성별이 적힌 종이 쪽지였다.

《이진혁- 남자 알파》

"아, 알파? 이진혁 알파야?"

"응? 어. 괜찮지 않아? 넌 베타잖아."

"아...... 응. 그렇지."

하윤은 절로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오메가인 것을 아는 유일한 부랄친구는 술에 떡이 된 채 마룻바닥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성환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깨워서라도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지만 등 뒤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오래도록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뜨거운 시선은 진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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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28 00:35 | 조회 : 6,719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잘 부탁드립니다. 오타와 맞춤법 지적 모두 감사히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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