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5"

"하아"

"4"

'이게 좋은거야.'

"3"

'그래도 행복했어.'

"2"

'너무 미워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1"

'... ... ...'

"자, 그럼 이제 끝내볼까, 에이스? 그동안 고생했어."

맞은 편에 있던 티치가 한 손에 칼을 들고 점점 가까워졌다. 미련은 없었다. 즐거웠고 행복했고 사랑받고 사랑했었다. 이 정도라면 좋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했다.

띵-

닫힌 문 넘어로 희미하게 엘레베이터 도착음이 들리고 단단한 대리석 바닥을 걸어오는 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이윽고 달칵이며 문이 열렸다.

"어이, 티치. 오랜만이군."

검은 슈트에 목의 단추가 몇개 풀린 흰 셔츠, 반짝이는 구두, 삐딱하면서도 결코 가볍지않은 무게감을 보이는 태도, 그 모든것과 어울리지 않는 노란 머리카락.

"마..르코"

갑자기 눈물이 터질듯했다. 알수없는 감정들이 온몸을 휘감았다. 결코 살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승에 남겨둘 미련따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사실은 죽고싶지 않았고 이승에 살며 조금 더 행복하고 싶었나보다. 내 미련의 끈이 마르코였다.

마르코의 시선이 닿자 결국 꾹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쓰리게 흘렀다.

"에이스 늦어서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살풋 미소를 지어보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어.."

'기다릴게.'라는 뒷말이 울음을 참는 울림 속으로 묻혀버렸다.

"아 아 우리 부회장님. 마르코. 난 또 네가 안 올까봐 걱정했잖아. 네가 안 왔으면 내가 좋아하는 에이스를 내 손으로 죽여야했거든."

"이제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점점 서있기조차 버거워지는 다리를 끌고 간신히 기둥에 기대었다. 퉁퉁 부은 눈은 뜨기조차 힘들었지만 마르코를 보고싶었다. 마르코와 티치는 서로를 탐색하듯 맴돌았다. 마르코는 이따금씩 바닥에 보이는 나의 핏자국을 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네가 올라올때까지 보고가 없었던걸 보면 우리쪽 애를 건드리고 온것같은데 맞아?"

"그래. 왜 문제되나?"

"아니. 전혀."

"훗, 티치. 네 녀석의 인내심과 끈기정도는 인정해줄만해. 1~2년도 아니고 수년을 우리 조직에 파고들어 있는듯 없는듯 대외적으로 노출되지도 않고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도 않고 잘도 살았어."

"내 계획에 있어서 꼭 필요했던 부분이니까 어쩔수없었지. 칭찬 고마워."

"별말을."

"아버지는 좀 괜찮으신가? 아들이 죽었는데 아버지는 건강해야지."

"전보다 좋아지셨지. 한동안 병원 관리를 받긴했지만 말이야."

"참 잘 됐어. 자신이 일군것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끝도 못 보고 간다면 얼마나 슬프겠어."

"그런면에서 너도 참 다행이야. 네가 원하는 그 시작과 끝을 넌 보고 끝낼 수 있겠어."

"제하하하 아직 새싹에 불과한걸. 벌써부터 끝을 이야기하다니 너무한데."

"잡초는 그 싹부터 뽑아버려야지."

여유를 가장한 긴장감 속에서 이어지던 대화가 끊기고 두 사람의 움직임이 변했다. 순간의 속도로 마르코가 티치의 안쪽을 파고들었고 그의 주먹이 티치의 복부에 꽂혔다.

"으아악!"

"후, 이정도로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되지. 난 네 녀석에게 돌려줄것이 아주 많단말이지."

'내가 했던 공격이 전혀 데미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듯해서 다행이야.'

그러나 고통스럽게 내지르던 비명은 이내 그치고 티치는 다시 자세를 잡아섰다.

"후우, 역시 에이스 주먹보다는 아프네."

"곧있으면 편하게 될테니 걱정마."

마르코는 이번에도 빠른 스피드로 파코들어 공격을 감행했지만 티치가 막으며 반격해들어왔다.

'나와 싸울때와 똑같아.'

공격을 받고 패턴을 파악한 후 그 공격을 역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티치의 공격법이었다. 문제는 녀석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아니야 마르코라면 할수있을거야.'

떨리는 주먹을 그러쥐며 마르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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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7-29 20:33 | 조회 : 1,339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913화는 휴재였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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