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에이스 계속 잠만 잘거야? 모처럼 쉬는 날인데 이제 그만 일어나."

"으음"

잠투정하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손길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따스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르코가 먼저 일어난 날이면 그는 늘 조용히 옆을 지키다 11시가 되면 이렇게 나를 불렀다. 그러면 나는 이 시간이 좋아 한번정도 못 들은척 계속 잠든척을 했다.

"아!"

평화로운 시간에 갑자기 볼에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떴다. 마르코가 키득대며 보고있었다.

"일어나."

꼬집혀 아픈 볼을 감싸쥐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웃기만 할 뿐이었다.

"밥 먹자. 아침도 거르고 배고프지? 어제 아주머니가 특별히 곰탕해놓으셨어. 그거 데워서 먹자."

"난 고기가 많은게 더 좋아."

"알아. 고기도 많이 해두셨어. 국 끓일때 같이 넣어 끓이면 된다셨으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

"으... 마르코는 수염이 빨리 자라네."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있는 그의 얼굴에 손을 데자 밤사이 까칠하게 자란 수염이 따가웠다.

"그런편이지. 넌 너무 없어."

이번에는 마르코가 손을 뻗어 나의 얼굴을 만졌다.

"부드러워. 아이 피부같아."

"으, 그만해. 일어나자마자 눈빛이 너무 느끼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웃으며 쪽쪽거리며 붙어왔다.

"비키지?"

"너무 잘 자길래 구경 좀 했어."

시야를 가득 채우고있던 남자의 얼굴이 한쪽 옆으로 사라졌다.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무언가 기분 좋은 꿈이었던것 같지만 안개에 둘러싸인듯했다.

"자는 사람 보는것도 좋아하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든게 좋지. 자는 모습도 먹는 모습도 어떤 모습이라도 보고싶은게 당연하잖아?"

능글맞은 남자였다. 며칠을 기다렸지만 사디의 전화는 오지않았고 어디서나 잘 먹고 잘 자는 나는 이 사무실의 소파와 한 몸이 되듯 붙어지냈다. 당연스럽게도 이 사장과도 어느정도 가까워졌다. 남자는 일관되게 나에게 흥미를 보이면서도 선을 넘지않았고 부담스럽지않게 관계를 이끌었다.

'그러니 이 일을 하는거겠지.'

"사장이면서 할 일도 없나봐? 남 자는거 구경이나 하고."

"너한테라면 이정도 시간은 충분히 할애할 수 있어. 넌 그정도 가치가 충분하거든."

"아, 그렇겠지. 사디는?"

"아직 연락없었어. 그보다 밥 안 먹을래? 내가 살게."

남자가 꼬고있던 다리를 바꿔 꼬아 앉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맛있지? 여기 싸면서 맛도 좋기로 유명한 곳이야."

입으로 끊임없이 음식이 들어갔다. 오랜만에 먹는 밥다운 밥이기때문인지 정말 맛있기때문인지는 조금 모호했다. 입 안의 음식물을 넘기고 유리잔에 든 찬 물을 마시고서야 답을 할 수 있었다.

"꽤 괜찮네."

"그렇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큼, 너도 먹어."

어두운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가게를 가득채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였다.

"애인은 안 보고싶은가봐?"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고기가 순간 턱 막혀왔다.

"콜록! 콜록! 큭! 애인이라니?"

"뭘 그렇게 티나게 잡아때?"

남자가 물을 내밀었다.

"그냥 한번 찔러본건데 진짜 애인이 있었어? 그래서 안기는 걸 거절한건가? 생각보다 애인을 무척이나 좋아하나봐?"

"상관 마. 너도 어차피 심심풀이정도로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잖아? 내 신상을 그 정도로 알고있으면서 그따위 제안을 하다니 진심은 아니었을텐데?"

"난 진심이었는데? 네 신상을 그 정도로 알았으니까 관심을 가진거야. 넌 아주 재미있는 존재거든."

이야기를 하는동안 남자는 계속해서 즐거워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나라는 존재와 나의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관심가지지마. 어차피 두번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더 파고들어봤자 네 신변에 좋을것도 없어."

"그렇지만 이렇게 눈 앞에 있으니 쉽게 포기가 안되는걸."

"사장님, 밥이나 먹고 갑시다."

"쿡, 그래. 관심 끌테니까 천천히 먹고 가자고. 그럼 다른 질문."

"궁금한게 참 많군."

남자는 시종일관 미소띈 얼굴이었다.

"응. 그렇지. 자, 질문. 애인은 남자야? 여자야?"

"... 밥 먹어."

"하하하하 알았어. 애인이 참 부럽네."

그 이후로도 남자는 시시한 농담과 질문을 해댔다. 덕분에 삿치가 죽고 오랜만에 웃었고 화냈고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때쯤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자는 발신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나에게 보였다.

'사디양'

화면에는 분명하게 발신인이 적혀있었다.

'며칠 걸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처리할 수 있겠어.'

"축하해.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럴줄 알았으면 이런 조건은 제시하지 않았을거야."

"고마워. 덕분에 수월하게 됐어. 밥 잘 먹었어."

사장에게서 받은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먼저 나섰다. 등 뒤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에이스, 사디양까지는 어떨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파고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너한테 해줄수있는 마지막 말이야."

"고마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어두운 도로 위는 눈 부셨다.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과 사방에서 반짝이는 자동차의 라이트들이 현실감각을 잊게 만들었다. 사장이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느끼고있었다. 티치는 절대 혼자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조직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혼자였다면 조직에서 찾는데 어렴움도 없었겠지.'

티치는 잘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조직의 뒤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던 녀석이 이제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동안 준비하던 혹은 기다리던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적어도 우리 조직을 무너트릴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녀석들이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에 막아야해.'

스쳐지나가는 불빛들이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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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7-14 19:49 | 조회 : 1,585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상당히 많이.. 오랜만이에요 죄송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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