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삿치를 죽인 티치를 쫓지 말라는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마르코 역시 보기 힘들었다. 동료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감정을 공유한 가족이었다. 그런 가족을 죽인 자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여기 방 있습니까?"

"네~ 손님 혼자 묵을거유?"

"네. 한 삼일정도 잘 수 있습니까?"

"그럼~ 되고말고~ 따라오슈."

'양 여관'이라는 작은 간판만이 덩그러니 길가에 세워져있는 곳이었다. 늙은 남자는 느린 걸음으로 방을 안내했다.

"거, 젊은이가 오는게 얼마만인가 몰라. 요세는 다들 모텔에 가거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늙은 남자는 개의치않는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근처가 옛날에는 다 여관이었는데 지금은 여기랑 저기 아래 한 군데 밖에 안 남았어. 나도 돈벌이로 하는건 아니고 그냥 놀기삼아 하니까 하는거지.

손님도 없고 힘들거든. 자, 다왔군먼 여기 묵으면 되네."

늙은 남자가 잠긴 방문을 열쇠로 열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고 한쪽 벽면을 채운 행거와 그 아래 놓여진 이불이 다 였다.

"괜찮나?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방 보여줄수도있고."

"고맙습니다. 이 방으로 하겠습니다."

"계산은 나갈때 하면 돼. 열쇠는 여기 있고. 그럼 쉬시게나."

오른쪽 어깨에 걸쳐 맨 작은 짐 가방 하나를 한쪽 구석에 놓아두고 창문을 열었다. 이곳은 강이 흐르고 풀벌레가 시끄럽게 우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회색빛의 구불구불한 시멘트 골목이 보였다. 티치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이 근처였다.

"연고도 없는 곳인데 여기서 몇 번이나 보였다라.."

작은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티치는 솜씨 좋게 일을 처리했지만 단 한번도 대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그저 조용하게 조직 내부 깊숙히 파고 들어있었다.

"마치 기생충같군."

종이에는 티치가 연관된 사건들과 그가 맡았던 일들에 대해 적혀있었다. 그가 자진해서 나선 가장 최근의 일은 나를 백업했던 칠용 잔당 처리였다.

"그날 특별히 이상한 점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특이점을 찾기위해 노렸다.

"지나치게 깔끔했어."

티치는 본래도 일처리가 빠르고 깔끔했지만 그날은 유독 더 깔끔했다. 다른 날은 조금 미숙해 보이는 점이 하나라도 있었지만 그날은 완벽하고 신속하게 끝냈었다.

"티치도 그 여자와 칠용과 관계가 있나보군."

다른 일에서는 눈에 띄는 실력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일부러 실수를 했겠지만 그 일은 남겨두거나 소리가 나가면 자신이 위험해질까봐 본래 실력대로 처리한것일 것이다.

"이제 단서는 찾았고.. 그 여자는 어떻게 됐지?"

삿치가 여자를 가둬두고 정보를 캐내던 중이라는 것까지만 알고있었다. 어쩌면 삿치는 그 여자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 하나 알아내면 바로 다음에서 막히는군."

여자를 알만한 사람, 여자가 나타났던 곳을 찾아야했다. 그 여자의 특이점을 떠올려야했다. 처음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부터 회상했다.

"나를 콜이라 생각했었지? 전에도 불러본적이 있단 말이잖아. 그렇다면.."

내일 할 일이 정해졌다.

*

"여자가 사라졌다라. 예상 못한 일은 아니야."

죠즈가 '사디'라는 여자가 사라졌음을 알려주기위해 옆에 앉아있었다.

"티치가 일친 시점에 그 여잘 혼자 남겨두고 갔을거라곤 생각 안 했어. 여자 행방은 찾고있어?"

"응. 티치하고는 따로 움직이는 모양이야. 그 새끼는 머리털도 안 보이고 여자는 가끔 보고가 들어와."

"에이스는?"

"에이스도 역시 티치를 찾고있는건지 마지막으로 나타났었던 곳에서 지낸다는 보고가 있었어. 마르코, 에이스 그냥 둘 생각이야?"

"당분간은. 에이스 녀석 지금 붙들어 놓는다고 얌전히 붙잡힐 녀석도 아니고 위험한 상황만 아니면 주변 주시하면서 계속 보고하라고 해. 여자쪽은 기회가 되면 바로 잡아 와. 죽이지만 않으면 뭐든 상관 없다고 전해."

"알겠어."

죠즈는 할 말이 남은 듯 잠시 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스..."

텁텁한 입안을 맴도는 이름이었다. 모아쥔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름과 함께 참았던 숨이 내쉬어지며 조금이나마 살것같았다.

"다치지만 말아줘.."

기도하듯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

"사장님 좀 만나봽고 싶은데 안에 계십니까?"

한 낮에도 어두운 골목길 모퉁이에 위로 올라가는 유일한 계단 앞이었다. 이 질문은 그 앞을 막아선 싸구려 정장의 남자에게 두번째 묻는 것이었다.

"이봐, 여기 왜 왔어요? 사장님은 만나서 뭐하게? 일 하러 온거 아니면 저리 가세요~"

"여기 왜 왔는지는 사장님을 봽고 말하고 싶은데 안 됩니까?"

"아, 거 진짜 귀찮게 하네! 형씨 무슨 일로 왔는진 몰라도 우리 사장님 막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거든? 가라니까!"

남자가 어깨를 툭툭 밀치며 이야기했다. 남자는 내가 별다른 저항없이 골목의 반대편으로 밀려나자 귀찮은 일을 끝내 기쁜 모양인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안에는 계신거네?"

계단 끝 하나뿐인 문을 열자 큰 키의 남자가 의자에 기대어 여유롭게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남자는 내가 들이닥친것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일하려고? 꽤 귀여운 얼굴이네."

말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남자는 빙글 웃으며 위 아래로 물건을 살피듯 품평하는 눈빛을 보냈다.

"키도 적당하고 근육이 있어서 몸도 좋아보이고, 무엇보다 아직 어려. 그 점이 가장 좋은 점이지."

"전 일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실례지만 여기 고객 중에 사디라는 여자 있습니까?"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서 다가왔다. 흐르듯

유려한 맞춤 정장이 완벽하게 그의 라인을 비춰냈다. 생각보다 몸이 좋은 것 같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아니라 바닥을 구르며 만들어진 몸이었다.

"난 그런 거래는 안 하는데? 뭐, 내 애인이라도 된다면 나 몰래 보는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훑어보던 눈빛이 농밀한 손짓으로 바뀌는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하고 싶은데로 두었다. 남자의 손이 맨살에 닿는 느낌은 마치 수십마리의 뱀이 몸을 기어다니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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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23 08:14 | 조회 : 1,323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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