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이번에도 딱 거기까지였다. 먼저 씻고 나온 마르코는 침대 위에서 책을 보고 있었고 막 샤워를 마치고 내가 침실로 들어서자 책을 덮고 잘 준비를 했다. 마르코의 옆에 자리를 잡자 살짝 움직인 그에게서 시원한 바다향이 났다. 그의 향이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설마 오늘도 그냥 자려는 건가?'

"에이스.."

지그시 내려다보는 마르코의 짙푸른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담겼다. 서로의 눈동자에 더욱 짙어져갔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잘 자."

마르코가 이마에 쪽 소리나는 뽀뽀를 하고 스텐드의 불을 껐다.

'... 응?'

살며시 감았던 눈을 다시 떠서 본 세상은 고요함이 가득한 어둠이었다.

'이게 뭐야! 이럴거면 분위기는 왜 잡아?! 하루가 멀다하고 틈만 나면 덮쳐오던 사람이 이럴 수 있어?'

어둠에 익은 눈이 비죽한 마르코의 머리카락을 쫓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애꿏은 이불을 끌어올리며 등을 돌려야만했다.

"마르코 바보"

*

"뭐가 그렇게 불만스럽냐?"

"뭐가?"

"뭐가라니. 오랜만에 찾아와서는 맥주만 들이키고있는데 게다가 얼굴에 '나 불만있어요.' 아주 큼지막하게 적혀있구만."

한동안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느라 바쁘다던 에이스가 오랜만에 옥탑방에 찾아온것이었다. 녀석은 도착하자마자 평상에 앉아 사들고온 맥주를 땄다. 언제나처럼 안주는 오다리 하나였다.

'또 그 아저씨 일이겠지만.'

"너 그 아저씨랑 잘 되고있지않아? 혹시 싸우기라도 한거야?"

"싸우기는. 잘 지내."

"퍽이나 잘 지내서 이러고 있겠다. 잘 지내면 여기 있겠냐? 그 아저씨 옆에 있겠지."

방금 딴 맥주를 홀짝였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시원한 음료가 밀려들었다. 여름밤의 더위가 한결 가시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보.. 너 여자 사귈때 어땠어?"

"어떻긴. 좋았지. 보고싶고 손 잡고싶고 안고싶고 그렇지."

"그렇지? 푸하.."

"너.. 설마 그거때문에 이러는거야?"

"응."

망설임없이 대답한 에이스에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옥탑의 여름 밤이 후덥지근하다고 느껴졌다. 녀석은 다음 캔을 따서 맥주를 마셨다.

"너, 취한거 아니지?"

"아직 안 취했어. 완전 말짱해. 하.. 이제 가야겠다."

"벌써 간다고? 아직 얼마 안 지났는데?"

"늦으면 싫어해."

녀석의 고민거리와는 별개로 풀죽어 기운없는 녀석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언제나 힘이 넘치던 녀석의 어깨가 축 처진듯했다.

"하.. 에이스 정 답답하면 네가 먼저 다가가봐. 그럼 되잖아."

"뭘?"

'더 이상 자세히 말하게 하지마!'

"아, 그.. 네가 먼저 손도 잡아보라고."

".. 아.."

"역시 너 취했잖아!"

"안 취했어.. 알았어. 가서 해보고 연락할게."

'아니야!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연애사를 더 깊게 알고싶지 않아!'

사색이되어 그럴필요 없다고 외치려던 나를

두고 갑자기 나타났던 에이스는 자신의 고민 이야기와 함께 맥주 몇 캔을 비우고는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진 옥탑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나에게 남은것은 맥주 한 캔과 아직 뜯지않은 오다리 한 봉지뿐이었다.

"애인도 없는 난 혼자 마셔야지.. 아.. 갑자기 처량하네.."

*

"에이스, 너 또 어디서 술을-"

"음-"

요 근래 그랬던것처럼 에이스보다 먼저 퇴근 후 침대에서 책을 보고있었다. 슬슬 평균적으로 퇴근하던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계속 흘러도 들어오지않는 녀석을 걱정했다. 책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얼마뒤 돌아온 에이스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상태였다. 덕분에 주근깨와 도톰한 입술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렇지만 녀석을 씻기고 재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가선 순간 에이스가 먼저 키스를 해왔다.

'술 냄새..'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맥주냄새가 훅 풍겨들었다. 어디서 마시고 취한것인지 알 수 없는 녀석의 이런 갑작스러운 덥침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그만 해. 에이스."

"윽.."

떨어진 에이스가 고개를 숙였다.

"에이스?"

"... 나 안 취했어. 맥주 몇 캔 마셨을 뿐이야."

고개를 들더니 이번에는 천천히 다가왔다. 손을 들어 뺨을 쓸고 옷단을 잡아왔다. 술에 취해 이런다는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설프게 손짓하며 유혹하는게 귀여운것은

사실이었다. 웃음을 참고 녀석이 하고 싶은데로 놔두었다. 옷단을 쥐고 앞장서서 침실 문을 연 에이스가 침대에 나를 앉히고 자신이 위에 올라 앉았다.

'음, 이건 좀 마음에 드는데?'

"후우-"

닿은 에이스의 몸은 이미 달아올라 뜨거웠다. 녀석이 이번에는 뒷머리를 잡고 천천히 다시 입을 맞추어왔다. 깊어지는 키스에 익숙하지 못한 녀석이 먼저 입을 땠다.

"아.. 그러니까.."

무언가 순서를 떠올리는 듯한 말을 하고서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위에서부터 단추를 풀어내렸고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나갔다. 탁력적인 피부가 드러나고 에이스가 먼저 서랍을 열어 젤을 찾았다. 젤을 두고 심호흡을 한 녀석이 나의 몸을 쪽쪽거리며 간질렀다.

"하- 이건 네가 먼저 시작한거니까 안 봐줄꺼야? 에이스."

"응. 아- 마르코-"

지쳐 잠든 에이스의 등에 이마를 기댔다. 아래로 보이는 곳곳 마다 울긋불긋한 꽃잎들이 세겨져있었다. 한동안 둘 다 금욕한 탓인지 지난 밤은 에이스도 어설프지만 적극적이었다.

'그게 귀여워서 또 무리시킨것 같지만.'

들이마시는 숨에 녀석의 달콤한 체향이 가득했다.

쪽-

기대고있던 등에 입을 맞추고 잘록하게 근육이 붙은 허리를 쓰다듬었다.

"흣! 간지러워.. 그만해.."

에이스가 빙글 몸을 돌려 나를 껴안았다. 두근거리며 일정하게 뛰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체온과 평온함이 전해졌다. 녀석의 평온함은 곧 나의 평온이었다. 나보다도 작은 이 몸이 나의 몸을, 나의 마음을, 나의 주변을, 그렇게 모든것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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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16 01:03 | 조회 : 1,613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네.. 뭔가 빠진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 /폭스툰 진짜ㅠ 또 날려먹었어! 나뻐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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