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혼령도(魂零島)의 장무극(2)

무혈이 장무극의 제자가 되고, 어디론가 향하며 따라오라고 하는 장무극의 말을 따라, 함께 향한 혼령도의 깊숙한 숲 속에, 투박하게 만들어진 통나무 집 한채가 보였다.

"뭐, 일단 오늘 하루정도는 귀어 두거라. 나의 가르침은 내일부터로 하지.. 아, 뭔가 물어볼것이 있느냐?"

통나무 집에 들어서며 한 장무극의 질문에, 무혈은 장무극의 이야기를 물었다.

옛날,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극악무도라고 불리는 악적이 되었으며, 왜 무림 공적이 되어 쫓겼고, 그리고 혼령도에 들어오게 됐는지.

무혈의 물음에 뭔가 씁쓸해 보이는 모습으로 투박한 나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장무극이 말문을 열었다.

"그렇구나.. 일단 내가 옛날에 사용하던 별호부터 말해줘야 하겠구나.. 나는 예전, 무룡(武龍)이라 불리우던 몸이다"

무혈은 그 말에 숨을 삼켰다. 무룡은 다른 사람의 별호가 아니던가? 현 무림맹주가 쓰는 별호가 무룡이며, 그가 행한 협행과, 수 많은 무용담을 들어오던 무혈로써는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 무혈의 반응을 보며 장무극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대강 예상은 했다마는.. 너의 그 표정을 보니 알겠구나.. 하아... 그래,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꼬.."

깊게 생각을 하는지 잠시 조용해진 장무극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나긴 이야기를.

* * *

내가 아주 어렸을적.. 그래 너의 나이쯤 되던 때였을 게다..
그때의 나는 아주 친한친우가 있었지.. 그 친우는 나와 같은 스승을 두고 따랐으며, 함께 수련을 했고, 함께 웃고 떠들며 자란 친우였다.

그 친우는 언제나 무얼해도 항상 내가 이겼음에도 열등감은 커녕 오히려 대단하다며 웃어주던 그런 친우였다.
그 친우는 어느 날 매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곧 다음날 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지.. 하지만 그 아이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자 살짝 걱정도 했었다..
뭐 그 날로부터 약 15년쯤 지나고, 나는 그 나름대로 주변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별호가.. 그래, 독룡(獨龍)이던가.. 언제나 혼자 다녔기 때문에 붙은 별호였다.

그때 나는 어느 마을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마을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거기서, 어떤 한 미인을 봤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지, 나는 그 미인에게 말을 걸었고, 내 이름을 들은 그 사람은 놀란듯 했지만 곧 살짝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그 이름을 듣고 놀랐다. 어렸을적 작별인사조차 없이 사라진 그 친우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일인물이었지..
나는 곧 그 친우와 다시 친해졌고, 나는 곧 사랑에 빠졋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을 그 친우에게 고백했다. 그 친우도 흔쾌히 받아 주었고, 곧 우리는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나는 친우의 부모님께 혼인의 허락을 받기위해 집에 찾아갔다. 일단 돈은 벌려고 하면 얼마든 벌수 있었지만, 그때는 딱히 그런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때문에 적당한 옷을 입고 찾아뵈었지, 결론으론 그건 상당한 실수였다. 나의 차림새만으로 판단한 그 사람들은 나를 내쳤다. 한 마디 꺼내보지도 못하고 나는 쫓겨났지. 곧, 나는 친우와도 만날수 없게 되었다. 며칠 후, 나는 옷을 멀끔히 차려입고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완전히 달라진 나의 모습에 그들은 나를 집에 들여보냈고, 나는 그들에게 혼인의 허락을 원했다.
어렵사리 혼인의 허락을 받은 나는 친우..아니,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며 평화로운 생활을 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했다. 나는 기뻐했고, 곧 아내의 몸 상태를 염려해 적당한 변두리의 마을에 정착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지, 그리고 아내에게 좋은 음식을 차려주기 위해 사냥하러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돌아온 마을은 불타고 있었고, 급하게 마을에 들어간 나에게 아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아내에게 달려갔고, 내 아내의 옷을 찢고 웃고있는 그 쓰레기를 보고 머리에 열이오른 나는 그들을 죽여버렸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쓰레기들이 남궁세가 장문인의 아들과 종남파 장문인의 아들일줄은... 곧 그 두 문파에선 은밀히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나에게 온 자객들은 모두 간단히 처리했지만, 결국 어느 날 아내와 아이가 인질로 잡혀버렸다.

나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명령에 따라 수 많은 악행이 나에게 누명이 씌워졌고, 나의 무룡이라고 하는 별호의 명성에도 먹칠이 되어갔다. 곧 나는 희대의 천상천하제일악인(天上天下第一惡人)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했지... 뭐, 그 다음은 너도 알고있을거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나에게 수 많은 고수들이 왔고, 자신이 정의라는 착각을 하고있는 개같은 자식들에게 아내와 아이를 인질로 잡히고 혼령도로 쫓겨났다. 뭐, 운 좋게 사초를 찾아내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

무혈은 장대한 이야기에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면 이렇게 상세하게 말할수 없다. 아주 예전부터 만들었다고는 해도, 도중도중 새어나오는 장무극의 감정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말에는 담지 못할 진심.

잠시 감정을 가라앉힌 장무극은 무혈을 보고 살짝 당황한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졌구나. 허허! 뭐, 그냥저냥 흘려 듣거라, 신경쓸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차피 모두 과거의 일이니.. 이제와서, 달라진다거나 하는 일도 없을테니.."

억지웃음, 무혈은 장무극의 웃음이 억지웃음이라 단정지었다.

자신에게 안심하라며 나갈때 어머니의 웃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가면, 가식.

무혈은 장무극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고, 손톱이 손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세상의 어두움을 보았다.

지금까지 믿어오던 정의는, 정의가 아니었으며.

지금까지 믿어오던 악은, 악이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며 자신의 바보같음에 한탄했다.

"......"

"아, 슬슬 자야겠구나, 많이 어두워졌어.. 미안하지만 침구가 하나 뿐이라 같이 자야하는데.."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잘 자라. 내일 하나 더 만들어다 주마"

장무극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무혈은 함께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이 든 후. 장무극의 품에 파고들며 꼭 안아오는 무혈에 잠이 깬 장무극은 이내 무혈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람의 품이 그리웠던 모양이구나.. 그래, 잘 자거라.."

한차례 무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장무극은 무혈이 편하도록 자세를 고친뒤 다시 잠에 들었다.

* * *

붉다.

뜨겁다.

차갑다.

어둡다.

눈 앞에 마을이 불탄다.

차가운 땅 바닥과, 뜨거운 공기.

마을이 불타며 하늘의 어둠을 일시적으로 몰아낸다.

부모님이 죽었다.

마을 사람도 죽었다.

친구도 죽었다.

모두가 죽었다.

나만 살았다.

갑자기 풍경이 바뀌었다.

마을이 평화로운 때로 돌아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다가가...

"왜?"

그 순간, 모두의 얼굴이 기괴하게 꺾이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왜? 우리는 모두 죽었는데, 우리는 모두 괴로워 하는데"

"아... 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은 의미없는 소리만 내뱉는다.

"왜, 너만 살아남았어? 왜, 너만 행복해?"

"우리는 모두 괴로운데"

"우리는 괴로운데"

"우리는 모두 죽었는데"

"왜?"

"왜?"

"왜?"

"왜?"

"너만"

"왜?"

"살아 남았어?"

기괴하게 소리가 곂친다.

"아니.. 아니...야... 아니라고..!"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냐..!"

"왜, 우리를 버렸어?"

"버린게 아니야..!"

"왜, 우리가 죽게 내버려 뒀어?"

"나는, 아무것도 못했어.. 나는 약했다고!"

"그래서? 우리가 괴로워하게 내버려 뒀어?"

기괴하게 비틀린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저리가..! 이미 죽었으면 빨리 극락이든 어디든 사라지란 말이야!"

"아들.."

갑자기 등 뒤에 들린 따스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 봤다.

"아들은... 엄마가 사라지길 원하는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들.... 아들이 엄마를 배신했어"

갑자기 온화했던 엄마의 형상이 비틀렸다.

"으, 아아아악!!!"

뒷걸음질 치다 발이 걸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나, 나는.. 난...

".....!"

어디서 뭔가가 들린다.

"..혈아!"

나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내 안에 울려 퍼진다.

"정신차리거라 무혈아!"

그 말에 나는 악몽에서 빠져나왔다.

* * *

온 몸이 축축해서 찝찝하다.

눈 앞에서 나를 깨운것 같이 보이는 스승님이 보였다.

머리가 약간 묵직한거 같은데.. 하던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적신 천을 접은것 같은게 떨어져서 내 다리 위에 안착했다.

머리에 열이 있었나?

"후우.. 다행이구나, 정신을 못차리면 어쩌나 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보는 스승님의 모습에, 순간 울컥- 하고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놀란 눈으로 보던 스승님은 나를 자신의 품 안에 넣고 안아 등을 토닥였다.

"그래, 울어라. 울고 싶을때는 울어야 하는것이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우는걸 참는걸 그만둔 나는,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 흐르듯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입에서도 울음소리가 퍼졌다.

손으로 스승님의 옷자락을 꾹 쥐고 울었다.

목놓아서, 그저 지금은 우는 것 만이 내 사명이라는 듯이 마냥 울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7-12-09 15:27 | 조회 : 1,240 목록
작가의 말
Elfen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