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혼령도(魂零島)의 장무극(1)

혼령도(魂零島)
일단 들어가면 절대로 살아나올수 없다고 알려진 사기가 들끓는 죽음의 섬.
넋이 떨어져 나간다고 붙은 혼령이란 이름이 붙은 섬이다.

그러나 이 혼령도에서 살아 나온 단 한명이 존재했다. 그는..

-무사무신(武士武神) 중(中) 발췌-

* * *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팔려온지 2년째.

뭔지도 모르겠는 말을 말하며 그저 상대를 죽이는 법만을 단련시키는 곳에서 무혈은 복수심을 태우며 얌전히 모든 훈련을 따랐다.

여기서 훈련을 하면 자신이 강해진다. 그러면 복수를 하는것도 꿈은 아닐거라는 계산하의 행동이었다.

그 덕분인지 무혈은 여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암기를 다루는 실력이 월등했고, 그걸 눈여겨본 검은 복장의 사람들은 무혈을 정식으로 자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첫번째 임무를 내렸다.

아니, 인정한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저 무혈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바둑돌중 하나로 보고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미친 임무를 내릴수 있었겠지.

그 임무는 이랬다.

혼령도.

죽음의 섬으로 불리는 그곳에 들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아니면 거기에 있기는 한건지 확실하지도 않은 한 사람을 죽여달라는 임무였다.

장무극.

무림공적으로 선포된, 천상천하 제일의 악인이라 불리는 한 사내가 이번 임무의 목표였다.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무혈은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악인이 있다니!

수많은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겁탈하며, 자신의 무력을 앞세워 수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그 말에 분노를 불태우던 무혈은 뒷일이고 뭐고 바로 임무를 받아들였고, 이내 혼령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죽음의 강(死川)으로 몸을 던졌다.

한참을 물길을 따라 헤엄치던 무혈은 갑자기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고, 혼령도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타고 천천히 흘러갔다.

* * *

"으윽..으..."

무혈은 자신의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찌뿌리며 일어났다.
헤엄을 치던 도중 의문의 통증과 함께 정신을 잃었던 곳까지 기억해낸 무혈은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 가득하게 차오른 사기(死氣)에 이곳이 혼령도라고 불리는 땅임을 증명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무혈은 비릿한 혈향(血香)에 눈살을 찌뿌렸다.

자신의 몸에 다친곳은 없다. 그럼 이건 누구의 피냄새란 말인가.

주변을 둘러보던 무혈은, 피로 범벅이 됀 땅의 위에 누워있는 기괴한 형상을 가진 시체(屍體)를 보고 인상을 찌뿌렸다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이건.. 마물(魔物)?"

무혈에게 마물이라 칭해진 이 것은, 보통 동물의 형태를 닮았지만, 신체 능력과 몸집, 그리고 그 강맹함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동화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묘사돼던 것들이다.

전설속에서나 나오던, 어린아이를 놀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줄 알고있던 마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된 무혈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마물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말은, 이 마물을 죽인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는 소리다.

"..."

바짝 긴장하며 짧은 단도 하나를 꺼내는 무혈은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바스락-

갑자기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자 몸을 흠칫하며 놀란 무혈이 소리가 들려온 쪽의 수풀을 보며 마른침을 한번 더 삼켰다.

마침내 점점 가까워지던 부스럭거리는 수풀소리가 멎자, 잔뜩 긴장한 무혈이 바로 공격할수 있는 자세를 잡고 수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무혈의 생각을 배반하고 수풀에서는 꽤나 늙은듯한 흭색머리에 흰색 수염을 마구잡이로 기른 허름한 복장의 노인이 나왔을뿐이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려던 무혈의 뇌리에 혼령도에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쳤고, 이내 장무극이라는 이름과 연결됐다.

허나, 그런 생각은 신경쓰지 않는듯 앞의 노인은 꽤나 쉰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뱉었다.

"일어났느냐"

막 장무극이라는 이름과 연결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무혈은 갑자기 말을 걸어온 노인때문에 생각을 끝내고 눈 앞의 노인에게 정신을 집중해야했다.

장무극은 극악무도한 악인. 저렇게 나를 방심시키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어찌되었건.. 옛다"

수염과 머리칼이 제멋대로 자란 노인이 무혈을 향해 어떠한 풀을 한 무더기 던져주었다.

"이게 뭐죠?"

경계심이 다분한 목소리로 노인을 향해 물으며 전투 태세를 풀지 않는 무혈의 모습에 그 노인이 허허롭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그건 사초(死草)다. 사기에 오염된 사람에게 쓰는 약초지, 여기가 혼령도라 불리는 사기의 집약소인 것은 알지?"

"알긴 합니다만.."

자신이 혼령도에 있다는걸 다시 상기시킨 무혈은 약간 얼굴을 찌뿌렸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오게된 경위..

따스했던 집이 불타는 모습, 다정한 어머니와 무뚝뚝하지만 꼭꼭 이것저것 챙겨주던 아버지..
저를 예쁘게 봐주며 자상하게 대해주던 마을 사람들... 갑자기 그 생각이 나자 순간 울컥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그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눈 앞의 노인에게 다시 신경을 쏟았다.

"알고 있다면 말이 좀 쉽겠군. 넌 쉽게 말해 이 혼령도의 극음의 사기에 오염된 상태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 안가 몸에 감감이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한기를 느끼다가 점점 쇠약해지고 보름 정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거다"

"....."

갑자기 듣게된 충격적인 말에 놀란 눈을 한 무혈은 이내 눈을 다시 떳다.

저걸로 말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안것이다.

"그 약초는 사기를 몰아내는 약초고.. 뭐, 사기를 더 강한 사기로 뱉어내게 하는 약초라서 사기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에게 먹이면 더 빠르게 사기에 오염되서 칠주야 정도를 끔찍하게 고통스러워 하다가 절명해버리는 극약이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요?"

무혈의 말이 의외였던지 헛웃음을 흘리며 노인이 말했다.

"반대로 내가 여기서 너같은 꼬마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야하는 이유를 묻고싶구나? 그럴거 같으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여기 마물한테 얼마안가 죽을 녀석에게 신경을 써줘야 하는 이유가 있더냐"

그 말에 인상을 살짝 찡그린 무혈은 나름 설득력 있는 말에 경계를 약간 풀고 말했다.

"당신이 장무극인가요?"

무혈의 말에 멈칫하며 눈을 크게 뜬 노인은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장무극, 그게 내 이름이지..."

"......"

"그러면, 내 이름도 알게 되었으니, 네녀석의 이름도 말해보거라"

"....무혈"

"..음?"

"제 이름은 무혈입니다. 네녀석도, 꼬마도 아니에요"

장무극은 무혈의 말에 놀란 눈으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구나, 미안하다 무혈아. 허허허!"

그렇게 잠시 웃던 장무극은 웃음을 삼키며 무혈을 지긋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그래, 무혈아. 너 내 제자 해보지 않으련?"

사초를 씹던 중인 무혈은 사초를 빠르게 씹어 삼킨 뒤에 장무극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극악무도한 무림공적이라는 장무극을 죽이러 온 암살자입니다만?"

"호오.. 그래서?"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는 장무극의 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무혈은 장무극을 보며 말했다.

"아니, 암살하러 왔다니까요? 당신을"

"그래, 그래서. 지금 니 실력으로 나를 죽일수는 있고?"

"....."

그랬다.

무혈은 자신의 눈앞에 있으면서 전혀 기척을 잡을수 없는 장무극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지금 당장 싸우면 백에 백, 무조건 자신이 질것이다.

눈 앞에 있지 않았다면,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를것 같았다.

처음에 기척을 내며 다가온건, 아마 자신을 경계하지 말라는 일종의 표시였겠지.

"나는 니가 마음에 든다. 그 눈은 절대 여기서 썩어 사라져야할 사람의 눈이 아니야"

"......"

"자, 그러면 다시 한 번 물어보도록 하마. 나의 제자, 해볼테냐?"

"...."

"나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마. 어차피 나는 이제 살 날도 얼마 안남았거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그 말에 무혈은 눈을 크게 떳다.

"처음에 여기에 왔을때, 나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던 데다가, 사기에 하루하루 침식되어 얼마 못가 죽을 운명이었다. 사초의 군생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나마도 늦게 발견한 탓에, 몸에 치명적인 상처가 남아버렸다"

그리 말하며 장무극이 옷을 걷어올리자 무혈의 눈에 복부에 흉하게 일그러진 흉터가 보였다.

"........"

"뭐, 그리 신경 쓸것은 없다. 어차피 이렇게 외롭게 살다 갈줄 알던 인생에 늘그막히 제자 하나를 얻었으니... 나름 시간을 때울만한 일도 생겼겠다. 남은 여생이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

무혈은 장무극의 눈을 봤다.

회한에 젖은 눈.

그리고, 어딘가 아련한 눈.

저런 눈을 '극악'이라는 말까지 붙어있는 악인이 할수 있을리가 없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 사람은 정말 말도 안돼는 연기력을 보유한 사기꾼의 기질까지 있는 거겠지.

무혈은, 장무극은 사기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사기꾼이라면,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 얻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혈을 바라보는 장무극의 눈.

그것은 무혈이 자주 봐오던..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이들의 눈과 닮았다.

그것으로 무혈은 결정을 내렸다.

"제자, 절 올립니다"

무혈은 장무극을 향해 정확히 아홉 번,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리며 제자의 예를 표했고, 장무극은 그런 무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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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09 15:26 | 조회 : 1,42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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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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