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꺄아악!!"

불타는 마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여자들의 절망에 찬 비명.
습격해 온 사람들의 낮게 깔린 음흉한 웃음소리로 가득 차버린, 불과 몇 시진 전 까지만 해도 매우 평화로웠던 마을.

그 마을의 가장 큰 저택의 가장 구석진 방에 아이를 끌어안은 절세미인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은 한 여자와 그 품에 안겨 벌벌 떨며 울고있는 이제 갓 6살 정도쯤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자신의 소매를 꼭 붙잡고 떨고있는 아이를 달래기위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여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거다. 무혈아"

"하...하지만.."

무혈이라 불린 아이는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겁에 질려 그조차 잘 나오지 않는 듯 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몸의 떨림이 많이 줄어들어 여자의 위로가 효과가 없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무혈은 여자의 품에 깊게 파고들며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저의 곁에 있어주실거지요?"

그말에 무혈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무혈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무혈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뒤에 말했다.

"그야 당연한것을 묻고 그러느냐"

"...어머니.."

무혈은 못내 불안한즛 여자의 옷소매를 꼭 붙잡았고, 여자는 살짝 미소지으면서 다시 한 번, 무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무혈아, 이 어미가 잠시 할 일이 있어 그러는데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수 있겠느냐?"

"어머니.."

약간 무너져내릴듯한 미소를 알아챈 무혈은 더욱 울상을 지으며 자신의 어머니의 옷 소매를 꼭 쥐었다.

"..."

그저 미소를 짓고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이내 포기한건지 소매를 쥐고있던 손의 힘을 점점 풀며 무혈이 작게 말했다.

"꼭, 다시 돌아오실거지요?"

무혈이 비록 어리다 하나, 머리가 비상하여 다른 또래에 비할 바 없이 뛰어난 아이다.
분명히 지금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고,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밖에 나가려는 이유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임을 알고있다.

물론 알고있는것, 즉 이해하는것과 그것을 받아들여 공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자신이 어머니를 막아선 안됀다는 것쯤은 예상이 가능했다.

"....."

"제 곁에 있겠다는 약속 지키실거죠?"

"..물론, 내 우리 무혈이가 장성(長成)한 모습까지는 보고 갈것이니, 걱정 말거라"

"어머니.."

불안에 떠는 무혈에게 작게 미소를 지어주며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준 여인는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게 빛나는 무언가를 무혈의 작은 손안에 쥐여주었다.

"이것은 이 어미의 아주 중요한 물건이다. 꼭 소중히 해주거라"

작게 빛나는, 아름답게 세공된 목걸이를 받아든 무혈은 이미 울음에 목이 매여 말이 나오지 않는듯,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무혈 장하네.."

무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작게 중얼거린 말은 형용할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이내 손을 거둔 여인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섯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혈은 방의 구석, 그림자에 숨어서 자신의 주변에 있을 무언가를 찾고있었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거리는 소리는 점점 무혈이 숨어있는 방쪽으로 다가왔고 이내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덜컥-

그 소리에 놀란 무혈이 살짝 몸을 떨었고, 그 탓에 옆에있던 상자가 흔들리며 떨어졌다.

'헉!'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 발소리는 점점 무혈이 숨은 방의 구석쪽으로 다가왔고, 무혈은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긴장에 가득차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런 기도를 배신하듯, 이내 무혈을 발견한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뭐야? 아직 여기에 쥐새끼 한마리가 남아있었잖아?"

살짝 비열한 느낌을 품은 남자의 목소리가 무혈의 귀를 파고들었다.

무혈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분명히 이곳에서 먼저 살고있던것은 우리다. 원래 이곳의 주인도 우리다. 그런데 왜, 이런 파락호같은 놈들에게 떨어야하는 처지가 됀건지, 수많은 만감이 교차했다가 흩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기엔 이미 눈 앞에 닥친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자신을 발견한 쥐새끼같은 얼굴을 한 남자는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오고있었다.

"가.. 가까이 오지마!!"

어릴때 졸라서 받은 작은 단검을 쥐고 남자에게 휘두르며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해보려 외치던 무혈이었지만 남자는 그런 외침이 무색하게도, 너무 간단하게 무혈의 앞에 왔고, 무혈의 뒷목을 내려쳐 기절시켰다.

"이제야 좀 조용하네.. 그럼 이제.. 요녀석을 어떻게할까?"

남자는 큭큭거리며 무혈을 들어올려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자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은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무혈을 보며 웃었다.

"어이구, 새로운 장난감이냐?"

"아니, 이녀석은 꽤 값이 나갈것같으니 팔려고"

"하하, 뭐 어느쪽이던 저 아이에겐 재앙이겠지만"

"그야 그렇지"

남자의 동료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듯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이런것에 죄책감을 느낄정도라면 애초에 이런 일 자체를 벌이지 않았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까, 이정도 어린아이들을 산다던가 모은다던가 하던데 거기에 팔아넘길까?"

"그럴까?"

어찌 되었든, 무혈의 운명은 사람을 죽이는 재미와 욕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간단하게 정해지고 말았다.

* * *

무혈(無血)

피가 흩날리는 세상이 끝나기를, 평화로운 세상, 피를 더이상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지은이름. 이 아이만은 행복하길 바라며 지어진 이름.

그 모든 염원이 무색하게, 무혈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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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09 15:25 | 조회 : 1,33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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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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