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비밀

오늘따라 너무나도 조용하다고 느낄만큼의 평화로움. 그런 평화로움에는 익숙하지 않아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화에 대한 신경을 돌리려 읽고있던 책에 애써 시선을 돌리며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신경쓰이는 것이 쉽게 떨쳐지지는 않아 가만히 제 입술을 잘근거리곤 결국 읽고있던 책을 무릎에 내려놓으며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티비를 켜자 아나운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보도되는 뉴스에 집중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집중하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어두워질 준비를 하는 하늘에도 기대하던 내용없이 언제나처럼 사건사고들만이 들려오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최근에는 그 장난스러운 녀석의 예고소식이 없는건지. 자신이 탐정이라는 사실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자신에게 얽힌 미스테리를 풀어달라는 듯이 다가오는데, 왜 녀석은 그렇지 않는걸까. 혹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걸까. 괜히 신경쓰여 오는 생각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 다시 소파에 걸터앉아 중얼거리기도.

" 내가 왜 그 바보녀석을 신경쓰는건데? "

그런 귀찮은 녀석이 예고를 하지않는다면 나야 편한거잖아. 쉴 시간도 늘어나고. 그런 녀석의 얼굴은 굳이 안 봐도 괜찮아.


그런데 ,

안 봐도 괜찮은데 ,

어째서 계속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는거지 ?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왜인지 선명히 떠오르는 녀석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행동. 괴도여서인지 혹은 그의 성격인지는 몰라도 특유의 미소와 능글맞은 말투가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녀석이 떠오르는건데, 대체 왜? 나는 그 녀석을 신경쓰지 않아. 녀석은 그저 괴도일 뿐이니까. 신경을 써줄 이유따위는 없어. 없어야만 하는거야. 그런데. 그게 당연한건데, 어째서 자꾸 생각나는거냐고.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네 얼굴을 보고싶어.


그러니까 얼른 그 망할 예고장을 보내란 말이야.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리다 문득, 들려오는 뉴스 속보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보도되는 내용에 집중했다. 아나운서는 아까와는 달리 약간의 긴장감을 띄웠고 사건을 보여주던 화면은 연신 키드의 예고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예고한 시간은 오후 10시. 예고시간에 맞춰 스즈키가에서 이번에 새롭게 준비한 보석 전시회장으로 온다는 것과 키드가 이번에 훔치는 보석은 5월의 탄생석인 에메랄드라는 예고장의 내용이 들려왔다. 어째서 평소와 다르게 일반적인 보석을 훔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즈키가의 전시회를 노릴 예정이라면 자신도 곧 초청을 받는다는 사실과 키드를 만날 것이라는 사실에 픽 미소를 지으며 옷을 갈아입고 어둠이 한껏 드리워지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있을 때, 문득 휙하고 지나가는 하얀 물체에 헛것을 보았나 생각하며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기도 잠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을 얼굴에서 떼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그러자, 제 볼에 맞춰지는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촉감에 살짝 놀란 눈을 뜨자 언제 온 것인지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고서 입을 떼는 키드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 .. 뭐야, 우리집은 왜 찾아온건데? "

언제나처럼 약간은 냉랭하게 물음을 던지자 잠시 그런 나를 바라보던 키드가 제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건네었다. 건네진 것을 받아보니 키드마크가 그려진 예고장. 손에 들려진 예고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뺨을 몇번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키드.

" 실은 직접 예고장 가져다주자고 생각했는데 언론에서 먼저 말해버려서, 고민하다 찾아왔달까. "

이렇게 빨리 뉴스에 뜰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슬쩍 시선을 피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픽 웃으며 어느 때보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해본다.

" 뭐, 늦었지만 상관없어. 저쪽은 방송분야라 빠른게 당연한거고, 너는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명백하게 다른 건, "

너라는 녀석은 고민을 하면서도 이렇게 찾아와서 얼굴까지 보여줬고.

가만히 대답을 들으며 밝은 웃음을 비추는 그의 모습에 참 순진하긴 순진하다.는 말을 덧붙여주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보기도 하면서.

" 오늘 와줄거죠, 탐정군? "
" 싫은데. 내가 왜 찾아가냐? 귀찮게. "
" 아아, 왜요. 탐정군 기다리는거 알잖아요. "
" 내가 왜 좀도둑의 마음까지 알아줘야 하는건데? "

싫다며 무관심한 표정으로 말하기도 잠시, 이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아, 그럼 잠시 허리 좀 숙여봐. "
" 에, 왜요? "
" 너랑 나랑 지금 키차이가 얼만데 그래. 대답 듣기 싫으면 그냥 그대로 서있고. "

싫으면 그냥 가라는 말을 전하며 표정을 바꾸자 알겠다며 얼른 허리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조용히 웃어보며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히 속삭이며 말을 전했다.

" 너 잡으러 가는건 당연해. 물론 이번에는 다른 이유도 존재하고. "
" 다른 이유라면 뭔데요? "
" 비밀이다. 바보야 -. "
" 사람 궁금하게 만들고서 뭐예요. 그게. "
" 그럼 너한테만 털어놓을테니 뺏기지말고 간직해. "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 네 얼굴 보러가는거니까. 나 기다리게 한만큼 네 얼굴보러 가는거니까 오늘은 바로 갈 생각은 집어치우는게 좋아, 괴도씨. "

말을 끝마치자 이어지는 짧은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깨며 들려오는 그의 장난스럽고도 능글스러운 목소리.

" 좋아요. 특별히 탐정군한테는 질리도록 얼굴 보여줄테니까 기대하라구요. "

역시 능청맞게 대답하는 저 모습이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손을 뻗어 턱을 들어올리며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녀석의 행동. 정확히 시선이 맞아버리자 움찔하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딱히 찔리는 것도 없는데 왜 이러는건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나도 한가지 비밀있는데. 탐정군한테만 들려주는거니 탐정군도 제 비밀. 지켜주는겁니다? "

" 뭔데 그래? "


" 저, 탐정군 좋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얼른 크라구요. 탐정군. 작으니까 그냥 뽀뽀하는 것밖에 못하잖아요. "
" .. 바보가, 지금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헛소리를 하는거야.?! "

말이 끝나며 이어지는 뽀뽀에 무슨 짓이냐며 한껏 붉어진 얼굴로 녀석을 두들기며 내쫓아버리기도 잠시, 괜히 자신의 감정을 들킨 것만 같아 그의 입술이 닿았던 제 빰을 손끝으로 문질거리다 조용히 그가 글라이더를 타고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 하여간.. 하마터면 나도 헛소리 할 뻔 했잖아. 바보녀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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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5 19:12 | 조회 : 7,553 목록
작가의 말
백 윤

너무 오랜만에 복귀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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