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w.무관심


'오를 수 없는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말아라.'




키가 조금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나보다 저 위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은데 난 항상 똑같은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을 올려다보기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연아-”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내 느낌이 아니란 걸 깨닫고 말았다. 그래-그 사람은 항상 나보다 위에 있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마른 몸과는 다르게 우뚝 솟은 키와 단단한 몸. 그와는 반대로 난 여전히 조그맣고 말랑거리는 몸을 가지고 있다. 물론-정신력도 말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정신력도 강했다. 나였다면 하나하나 상처 받았을 것 같은 말들도 그저 하하 기분 좋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게 가능한 사람이니까. 오히려 세상에 무관심한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이 사람의 이런 점을 우러러보고 오히려 내가 더 자랑스러워했을 터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사람은 성장의 동물이라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성장의 동물이 지금 예민한 성장기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모든 게 내 위주로 돌아가고 나만의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기 시작하는 그 시점인 바로 지금. 난 지금에서야 그 사람 옆에 서 있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하고 멀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가연아?”



사회생과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뿐만이 아닌. 애초에 난 이 사람과는 어울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참 미련하게도 1년여만의 시간 만에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만 그 순간.


우린 참 바보 같게도 미숙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헤어지자는 내 말에도 덤덤히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내심 날 사랑했던 이 사람의 고백과 속삭임들은 사실 장난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런 못된 마음과는 반대로 운전을 하며 핸들을 부드럽게 꺾어 다시금 날 바래다주던 그 사람의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은 나란 족쇄가 풀림으로서 반짝거리며 아름다운 동그란 악세사리를 달 수 있을 수 있을 터였다.


4800원짜리 초콜릿 쉐이크 한 잔도 벌벌거리면서 계산을 하는 한 낯 학생에 비해 어엿한 사회인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애초에 내겐 너무 과분했던 거일 수도..



“언제든지 필요하면 편하게 연락해줬으면 좋겠어.”



그랬기에, 이런 어이없는 이별의 상황에서 조차 무덤덤하면서도 자상하게 말을 내뱉어주는 당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가슴속에서 울컥울컥 따뜻한 액체들이 넘어올 것 같은데.


그런 나와는 다르게 무덤덤한 당신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탁’



대답을 하지 않고 닫은 차 문과 뒤를 돌아 걷는 무거운 걸음 사이로 훅-무거운 숨이 튀어나왔다.


이걸로 이제 갓 19살을 넘겨가는 한 낯 꼬맹이도 사랑의 아픔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를 수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던가.


입고 있는 기모 스타킹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려 들었지만, 후끈한 가슴 속은 내심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으면, 하는 반대되는 기분도 들었다.


오를 수 없는 나무는 역시 이렇게 지나쳐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쉬움과 아픔은 잠깐일 뿐이니까.


얼른 돌아가서 전날보다만 드라마를 줄줄 이어보다가 펑펑 울고서는 잠에 들어야지. 그리고는 다음 날 퉁퉁 부은 눈과는 다른 후련한 마음으로 다 잊어버릴 거다. 1년간을 함께 있어준 그 사람의 존재를 말이다.

2
이번 화 신고 2017-10-05 01:44 | 조회 : 1,994 목록
작가의 말
무관심

이번엔 완결을 목표로!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