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1995년 06월 11일 소년과 소녀

00. 1995년 06월 11일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자칫하면 어둠에 삼켜질 것만 같은 후미진 곳에, 소년은 있었다. 자신의 몸에 몇 배나 되는 의자에서 기나긴 기다림에 지친 듯이 허리까지 드리운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나올 듯 말듯하던 하품으로 졸음을 쫓아낸 뒤에야 소년의 눈길이 맞은편의 인물에게로 향했다.


빠드득


소년의 시선이 향하자 소녀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무심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롭다는 눈. 그 속으로 비춰지는 절대적인 자신감과 경시를 알아챈 것이다. 그 시선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는 것과 같은 종류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사실, 소년의 눈의 한층 깊은 곳에는 타오르는 혐오가 일렁였지만 그것을 깨달을 만큼 소녀는 냉정하지 않았다.


멸시의 시선을 받아내며, 소녀는 자신의 모든 기운을 사용하여 소년을 노려보았다. 동굴의 침전된 어둠을 양단하듯이 쏘아지는 시선. 거기에 담긴 것은 농담은 일절 섞이지 않은 살의였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의를 받아내면서도 소년은 불쾌하다는 눈치는 전혀 없고, 아니, 오히려 가벼운 미소마저 띄우는 여유를 보였다.


“뭐가 우스운 거야!”


소녀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소년이 미웠다. 이토록 증오하는데도 여전히 싱글거리는 걸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것을 자각이나 하는지 의심이 갈 뿐이었다.


소녀의 옆에는 일찍이 아버지라 부르며 존경해 마지않던 사람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직면한 듯 경악한 표정의 그에게는 몸이 없었다. 정수리를 관통한 나무 꼬챙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흔치 않은 표정이, 빛을 잃은 두 눈이 이렇게 묻는 듯 했다.


――내가 어째서 이런 꼴이 되어 있는 거지?


“큭!”


감정의 파도가 불쑥 치솟아 올랐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부를 수도, 자신이 불리는 일도 없어져 버렸다.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억누르고 소녀는 다시 소년을 쏘아보았다.


소년은 많은 죄를 저질렀다. 소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죄를 말이다. 죄 없는 시민들 10만 여명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 특히 소녀와 친했던 친구를 죽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소녀와 그 동료들을 속이고,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을 차례차례 앗아갔다.


한때 동료라 생각했던 소년을 향해 말했다.


“어째서 이런 짓을… 동료라고 믿고 있었는데….”
“하하, 동료?”


마치 더러워서 입에 담기도 싫은 말을 억지로 내뱉듯이 소년은 그 단어를 말했다.


“웃기지 마. 나는 너희들과 지내면서 단 한순간도 너희들을 동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너는 내 진정한 이름을 모르잖아?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데 그걸 동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녀의 감정이 폭발했다.


“용서하지 않겠어, 적귀!”


소녀의 통렬한 외침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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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8 14:20 | 조회 : 1,622 목록
작가의 말
nic49117918

잘 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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