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째 날 오후

*미리 알립니다. 이번 괴담에는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괴담을 넘겨주세요.


평일의 한가운데에 고고히 서 있는 수요일의 오후입니다.
수요일은 마치 양팔저울의 받치는 다리처럼 한쪽에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다른 쪽에는 목요일과 금요일을 균형을 이룬 채 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수요일이 굉장히 좋더군요.

여러분도 이렇게 균형잡힌 것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굳이 균형잡힌 것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좋아하는 게 있으시겠죠.
문제는 얼만큼 좋아하는지, 혹은 집착하는지겠죠.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그 이상으로 집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좋아하는 게 아니라 병에 가깝다는 것을.

당신이 집착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어릴 적 추억이나 친구, 성적, 가족, 수집품, 캐릭터 등등- 당신을 망치게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 그럼 오늘 같은 균형 잡힌 날에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죠.
균형에 집착하다 못해 스스로를 망쳐버린 어리석은 남자랍니다.


나는 균형잡힌 것을 사랑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균형'이라는 콘셉트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더럽고, 자기 자신의 물건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내 방 안의 물건들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놓여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가족 중엔 어느 누구도 '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균형'은 이제 '그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냐면 나의 안에 융합되어 있는 것이었으니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가벼운 버릇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원하지 않는 일부, 내 몸에 몰래 스며들어온 욕망.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싶은 소망.

어른이 된 나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정된 직업 하나 얻을 수 없었고, 여자들은 모두들 나와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갔다.
그녀들이 떠날 때는 언제나 어지러웠던 내 물건들을 원상복귀 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기는 했지만, 역시 2인용 침대에서 균형잡힌 자리를 잡은 채 잠드는 것이 문제거리이기는 했다.
인간 관계를 빼고 말하자면, 내 인생은 거의 완벽했다.

그렇다. '거의' 완벽했다.
내가 완벽할 수 없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나의 유전자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홍채 이색증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즉, 나는 오드아이였다. 양쪽 눈의 색깔이 맞지 않는 것이다.
오른쪽 눈이 파란색인 반면, 왼쪽 눈은 연두색이었따.

불결했다.
완벽하지 못했다.
균형잡히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는 했다.

내 가족들은 모두 다 파랗고 완벽한 두 눈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만 이 연두색이라는 증오스러운 실수를 왼쪽에 달고 있었다.

내가 숟가락을 왼쪽 눈구멍 밑에 쑤셔넣었을 때,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곧이어 왼쪽 눈알이 눈구멍에서 튀어나와 나의 볼을 탁구공처럼 가볍게 튕기고 있었을 때에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쇼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것과 다른 무언가?
난 내 두개골과 눈알을 이어지게 하고 있던 시신경을 가위로 자르고 볼 위로 흐르는 눅눅한 액체들을 대충 닦아내었다.
갑자기 반쪽으로 잘린 내 시야는 신선했다.
시신경을 잘라낸 후 아직 달랑거리며 남아있는 살덩이는 도로 눈구멍 안으로 쑤셔넣어버렸다.
그리고 상처를 붕대로 감은 뒤, 스푼을 깨끗하게 닦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깨었을 때, 난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정말 그 날 밤만큼 편하게 잔 적은 없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드디어 해결한 것이다.
온몸이 지끈거렸고 두통 때문에 머리가 타 버릴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화장실로 몸을 이끈 나는 전등 스위치를 켰다.
갑자기 비춰오는 밝은 빛이 눈을 멀어버리게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천천히 피로 흥건해진 붕대를 푼 후 거울을 바라보았다.

토할 것만 같았다.
이제서야 알아챈 것이다.
내 왼쪽 눈구멍에는 눈알이 없었지만 오른쪽 눈구멍에는 새파란 눈알이 있었다는 것을.

내 얼굴은 균형잡히지 않았다.

결국 난...

두 번째 눈알을 파내는 작업은 처음 파낼 때보다 더욱 힘들었다.
내 두 손이 너무 떨린 나머지, 눈구멍의 밑에 숟가락을 제대로 집어넣지 못해 동공에 세 번이나 구멍을 내고 말았다.
드디어 원하던 곳에 숟가락을 집어넣는 것에 성공했지만, 눈알이 튀어나온 후 가위로 시신경을 자르려고 하니 어젯밤에 묻어있던 피가 굳어버려서 이 질긴 살덩이를 쉽게 자를 수 없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종이를 두껍게 겹겹이 접은 후 그것을 가위로 자르려고 했을 때 그 두께에 견디지 못한 나머지 가위의 두 날이 서로를 지켜나가서 종이가 양날 사이에 끼어버렸던 경험.

그 상황이 내 시신경을 자르려고 시도했을 때 일어나고 말았다.
다시 자르려고 가위를 도로 벌리려고 할 때 바닥에 흘러내린 내 피가 고인 웅덩이에 발을 미끄러뜨려버려서 내 몸은 바닥으로 덜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떨어지는 내 몸을 받치려고 가위에서 손을 떼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달랑거리는 내 눈알과 연결된 시신경에 매달려 있는 가위의 무게는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다.
부엌에 가서 식칼로 이 살덩이를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런 힘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난 살덩이를 당겼다.

내 눈알과 연결되어 있던 시신경과 그 시신경에 달라붙어 있었던 살덩어리들을 한꺼번에 눈구멍에서 뽑아내었다.

내 두개골 안에서 살점이 찢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것이 찢어지는 동시에, 알 수 없는 액체들이 사방을 향해 튀었다.

난 울고 있었지만 지금 내 볼 위를 흐르는 액체가 눈물인지 피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 증오스러운 피덩어리가 바닥에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을 들은 순간, 나는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난 타인들의 더럽고 균형잡히지 않은 인생을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난 내 삶 중에서 이렇게 커다란 희망과 기쁨과 희열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나는 화장실의 차갑고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바닥에 볼을 대고 누운 채 난생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 남자의 집착이 결국 남자의 모든 눈을 잃게 했네요.
누가 봐도 절대 '정상'적인 좋아함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최후에는 그 이상의 것을 가져갈지도 모르죠.
이럴 때 보면 우리가 매달리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그 대상이 사람이고, 당신이 집착함으로서 해를 끼치지 않은 경우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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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5 18:49 | 조회 : 1,058 목록
작가의 말
Beta

여러분은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집착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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