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으으.. "
찌뿌듯한 몸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풀자, 찌르르하게 울려퍼지는 고통이 허리에서 강렬하게 일어났다.
" 으아악.. "
일어나고 보니, 시간은 오후 4시.
꼬박 하루는 자고 일어난 듯 싶었다.
알바에 늦었단 걸 깨달은 도진은 급히 핸드폰을 들어서 주방장에게로 다급하게 전화했다.
" 주..주방장님? "
" ...아 도진이구나. "
어제와 달리 사뭇 수척해진 듯한 주방장은 안그래도 호들갑떨며 말하던 말투를,
더욱 더 과장스레 말하며 대답했다.
" 니가 어제, 그 또라..아니, 주혁님이랑 나가는거 보고 우리가 얼마나 살떨렸는지 알아?
어휴..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자꾸 피식피식 웃더라고?
진짜 사람 하나 조지고 온 줄 알았잖아! 혹시 막내는 어제 주혁님이 뭐했는지 알아?
응? 주혁님이랑 단 둘이 나가서 뭐했던건데? "
다다다 쏘아붙이면서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는데 어찌 대답을 하냔 말인가.
휴대폰을 살짝 거리를 두며 전화를 받자, 주방장이 이내 더욱 하이톤의 목소리로 물었다.
" ..너 설마 납치당한거야!? 장기라도 털린거냐!!!! "
..그럴리가.
차마 주방장에게 어제 당신들이 님까지 붙여서 부르는 사람이랑 섹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게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 ..아뇨, 저한테 뭘 물어볼게 있으시다길래 답해주고 왔습니다. "
" 어머어머, 그게 뭔데? "
..귀찮아.
도진은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참은 뒤,
사근사근한 말투로 주방장에게 대답했다.
" 그걸 제가 말해야 하나요? "
" 아, 참 그렇지. 주혁님이 그러시더라. 너 오늘 못 나올 것 같다고.
그 말 하려고 전화했지? 알아, 알지.
흠흠, 그럼 난 이만 끊겠다. 몸 조리 잘하고 내일 봐. "
" 예. "
" 아 참참, 내 정신! 주혁님께서 너한테 전해달라 하셨던게 있는데! "
잠시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휴대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음은 야외에서 하는 걸로. "
" .. "
도진은 몸이 돌처럼 굳었다.
세상에, 미친 또라이 새끼.
야외에서하자니, 미친놈.
험한 말들이 뚫린 담처럼 우수수 뿜어져나왔다.
제기랄, 어제 그렇게 박아놓고 오늘은 또 어디간거야.
***
콰직 -
" .. "
뭐 더 할 말이 있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 히, 히익..괴물..! "
바닥에 샛노란 액체가 질질 흐르기 시작했다.
" 쯧, 더럽긴. "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자의 턱을 잡아 거칠게 비틀어 턱 뼈를 부셔뜨렸다.
" 그러니까, 왜 우리 구역에 발을 들여. 쥐새끼처럼. "
" .. "
주혁에게 턱뼈가 으스러진 남자는 어딘가에 홀린 듯이 실실 웃음을 짓고 있었다.
" 하아, 그렇게 잔머리를 써서 빠져나갈 수 있으려 보면 오산이지. "
뒤에서 단단한 방망이를 들고 휘두르는 남자의 얼굴에 팔꿈치를 박고는,
그대로 코 뼈를 부셔뜨린 뒤, 멱살을 잡아 명치를 칼로 찔렀다.
" 큭..웃기네,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더 흥분 돼. 아저씨. "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주위에 칠흑같이 어두운 짙은 붉은 색이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질퍽질퍽하게 웅덩이를 이루기 시작했다.
" 하아, 난 이왕이면 살인을 하진 않는다는 주의긴 하지만. "
명치에 칼을 쑤셔박은 남자의 얼굴을 신발로 짓밟고는 나직히 속삭였다.
세상 그 누구라도 넘어갈 듯한 감언이설을 내뱉는 듯 한, 소름끼치게 달콤한 목소리로.
" 하지만, 내 것을 건드리는 자는 죽는다. "
남자의 명치에 찔러뒀던 칼을 빼내어, 남자의 얼굴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망가트렸다.
" 내가 누누히 말했지, 우리 구역만 넘보지 않으면 너희의 그 좆만한 곳은 금방 없어지진 않을거라고. "
희게 질려 바닥에 질질 실례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두 발로만 남자를 차기 시작했다.
얼굴, 팔, 다리, 배 안맞는 곳이 없도록, 간결한 동작으로 흠씬 두들겨팼다.
이내 남자의 입에서 쿨럭, 하고 짙은 피가 쏟아져나왔다.
주혁은 기분 좋다는 듯, 싸이코틱한 미소를 짓고는 낮은 목소리로 뒤에 있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 여기, 대가리 잡아와. "
오늘은 기분이 더러우니, 한번 더 해야겠어.
라고 마음먹은 주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얗고 보드랍던 도진의 살결과,
복숭아처럼 붉게 상기된 얼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눈을 상상하니,
금방이라도 자신의 것을 먹고싶어 하던 도진의 몸이 떠올랐다.
하아, 그 남자는 왜 이리도 좋은 건지.
주혁은 자신의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기만 하며 곧 마주볼 조직의 우두머리의 고문 방법을
147가지나 생각해내며 눈을 차갑게 가라 앉혔다.
***
" 아이고.. "
정현놈의 집에 쳐박혀서 뒹굴거리기만 하니 정말로 천국이였다.
단, 쓸데없이 정력만 좋아서 박아댔던 남자와의 섹스로 인해 허리가 아픈건 제외하고 말이다.
어제 과도한 운동으로 지친 자신의 몸을 달래줄 니코틴을 찾아 길게 들여마셨다가 내쉬었다.
" 후으으.. 살 것 같다 "
담배를 피며, 가만히 앉아있자, 어제 주혁과 있었던 일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얼굴이 불덩이가 된 도진은,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잊으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애를 썼으나, 전혀. 하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자신을 집어 삼킬 듯한 맹수같은 그윽한 눈길도.
몸 중간중간에 각이 잘 잡혀져 있는 근육도.
싸움으로 인해 생긴걸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흉터도.
전부, 그 남자의 것이라서 섹시했다.
전부, 그 남자의 것이라서 좋았다.
" 으으.. "
자신의 감정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와의 관계로 이성적인 감정으로 쳐다보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막상 얼굴을 맞대고, 섹스를 하고 나니. 잊으려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원래 돌직구인 도진은 이런 류의 고민은 깊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도진은 주혁을 만나기 전까진 완벽한 스트레이트였고,
남자를 전혀 이성적인 감정을 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였다.
도진이 끙끙거리며 감정을 정리하고 있자, 현관문에서 띵동 - 하고 울려펴지는 벨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세요? "
" 나. "
주혁? 주혁인가? 목소리가 똑같은데.
끼익 - , 문을 살짝 열고 주혁으로 추측되는 인물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 세상에, 어디서 피를 이렇게나 묻혀오신 거예요! "
도진은 잘 동요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주혁의 앞에선 그의 반응 하나하나에 희비가 갈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했다.
" 내 피 아니야. "
" 그럼.. "
" 딴 사람 피. "
도진이 안절부절하며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나니, 확신이 생겼다.
이 남자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주혁은 싱긋 - , 꽃밭에나 어울릴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도진에게 다가갔다.
" ?! "
살짝 놀라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다보는 도진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어제 할 것 도 다 한 사이인데 말이다.
도진에게 다가가 짙은 피 향이 나는 자켓을 벗어 던지고, 도진의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쓱 - , 흝었다.
쪽 -
눈가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도진의 얼굴을 잡아 눈을 마주치게 한 뒤, 다정스런 목소리로 속삭였다.
" 다시 한 번 울어줘. "
" ..? "
" 니가, 행복에 빠져 허우덕거리며 우는 모습을 말이야. "
주혁의 뜻을 해석하자면 내가 널 행복하게 해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줘. 정도였다.
도진은 당황스런 눈으로 주혁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 꼴사납게 우는 모습말고, 웃는 모습이나 보세요. "
" 말은 잘하는군. "
"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의 연인이 될 사람한테 우는 걸 보여주고 싶겠어요. "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하자, 주혁이 낮게 쿡쿡거리며 웃었다.
" 어제 그렇게 죽어라 목놓아 울던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믿음이 안가. "
비아냥거리는 말투와는 달리, 주혁은 도진에게 다가가, 도진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봄날의 따스한 바람이 나무에게 속삭이듯, 주혁이 도진에게 속삭였다.
" 미안하군, 처음부터 거칠게 다뤄서. "
" 지금이야, 원래 그런 사람인걸 알았으니 딱히 아무런 생각 없어요. "
도진이 잠깐 뜸을 들이며, 자신을 보고 웃는 주혁을 함께 바라보며 마주 웃은 뒤,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키스해줘요. 부드럽게. "
주혁은 피식 - , 웃고는 고개를 비틀어 다가갔다.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 노력해보지. "
" 당연하죠, 사랑스런 애인의 부탁을 안들어주시진 않을거 아니예요? "
키스하기 전, 주혁의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