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를 훌쩍 넘기고 점심시간까지 자버릴 뻔했지만 미친 듯이 문을 쾅쾅 두들겨대는 소리에 화들짝 깼다. 두들겨 댄 사람은 시율이었고 걱정되서 와봤더니 둘이서 아주 즐겁게 자고 있었냐며 드물게 언짢은 표정이었다. 하긴 이런 건 원래 3명에서 하기로 약속했는데. 어쨌든 별 일도 없었지만 현재 나와 바다는 사이좋게 시율이에게 볼따구를 꼬집히고 있었다.
“아야야야!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대도?! 그냥 바다가 옆에서 잔 것뿐이고!”
“맞아맞아! 이 녀석 잠을 잘 못자는 것 같아서 내가 같이 옆에서 자 준거라고!”
“...쳇. 이럴 줄 알았음 내가 옆에서 자는 건데.”
그렇게 말하곤 쭉 당긴 볼을 놔줬다.
“그런 말을 한 양호선생님인데 같이 잘 수 있었을까.”
“난 자.”
당당하네.
“어떤 말이었는데?”
“밤 안 새고 자위라도 했냐고 말했어. 그래서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던지.”
그렇게 까지 직설적으로 그것도 말하기 뭣한 걸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처음 본다.
“뭐, 어때. 어차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맞아. 어차피 넌 스위치 돌아가면 우리 둘 보다 더 빠져들면서. 게다가 알몸 보여줘도 가장 부끄러워하지 않잖아.”
“너희도 만만치 않거든! 게다가 말은 바로 해! 너희 둘에게만 안 부끄러운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은 쉴 타임을 조금도 안 주잖아!
“에이~ 그거야 네가 가버리는 얼굴이 엄청 귀여워서 그렇다니까! 뭣하면 나중에 할 때 사진 찍어둘까?”
이것이 지 얼굴은 못 본다고 저렇게 말하네?
“시율아. 집에 산 거 더 있다고 했지.”
“응. 아직 해보고 싶은게 많은데.”
그 말에 약간이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그것들 오늘 이 녀석에게만 해보는 건 어때?!”
“아냐! 가버리는 얼굴은 나보다 강우가 더 어울리잖아!”
“오늘 네가 가버리는 모습도 엄청 귀여웠어! 신음소리도 그렇고!”
“신음소리는 가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거지만 가버릴 때 나오는 특유 얼굴은 널 따라올 수가 없다구! 그치, 시율아! 나보다 이 녀석이 가는 게 더 귀엽지?!”
이게! 지만 빠져나가겠다고!
“그냥 오늘처럼 둘 다 하면 되지.”
“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바다가 가버리는 얼굴을 봤음 좋겠다고! 게다가 ...잠깐 귀 좀.”
바다에겐 안 들리게 시율이에게 귀 좀 대달라고 했고 시율이가 귀를 대고 살며시 말했다.
“사실 좀 괴롭혀주고 싶지 않아? 너 몰래 바다가 나하고 양호실에서 같이 잤는데.”
“.......”
넵. 역시 그런 것 같다. 하긴 어제 나도 그랬는데.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바다만 넣어줘! 나머지는 네 맘대로 해도 되니까.”
“...바다야. 오늘은 네가 당해줘.”
“어어?! 나만?!”
“헹! 그렇댄다.”
당황하는 바다를 보며 난 브이자를 보여줬다. 앗싸! 오랜만에 맨 정신으로 이녀석이 가버리는 걸 마음껏 볼 수 있구나!
“양호실에서 같이 잔 게 괘씸해.”
“아니아니! 나만 분위기 탄 게 아니고 강우도 별 다른 저항 안 했는데?!”
“정말?”
“아니. 자는 도중에 갑자기 이 녀석이 옆에서 자고 있었어.”
이건 바다도 은근슬쩍 발뺌 못할 사실이다.
“그건 처음에만 그랬지 나중엔 너도 별 저항 안 했잖아!”
“난 그런 거에 저항을 못하는 사람이라.”
“우와! 철면피!”
뭘 배신당했단 표정이야? 그냥 오늘 밤이나 기대해라. 후후후후....
“너무해~ 괴로워해서 같이 자 줬는데.”
“괴로워... 아, 또 그 때 꿈꿨어?”
시율이의 표정이 굳어진 채 날 쳐다봤다. 당연히 시율이도 잘 아니까.
“괜찮아. ...이번에는 둘을 봤으니까.”
“...그래. 같이 못 잔 게 내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바다가 옆에 있길 잘한 것 같네.”
“응.”
그 꿈은 분명 괴로운 건 사실이지만 바다와 시율이가 있으면 그 악몽의 끝은 언제나 좋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예전에 비해 괴롭지 않은 거겠지.
“...잘해줬어 바다야.”
“그러면 오늘 밤은....”
“하지만 둘이서만 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머릿속에서 외치는군.”
“이 쫌생이!”
누가 가장 괴롭힐 맛이 있다고? 지금 저 녀석들, 아니 정확히는 바다만 봐라. 밝고 쾌활하면서도 건방진데 거기에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울상이기 직전인 얼굴이 귀엽잖아. 저게 또 보기가 드물어서 더 그렇다.
“그래그래~ 오늘 밤을 기대하니까 기쁨이 벅차나보구나?”
그래서 나도 시율이와 같이 바다를 다독여주었다.
“큭...! 오늘도 반드시 나만 가는 일은 없을 걸.”
“이번엔 안 따라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럴걸?”
이번에는 분위기에 말리지 않고 가버리는 거 꼭 볼 거다.
“그럼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참고로 오늘 맛없는 거야.”
맛없는 건데 왜 이리 표정이 밝을까?
“오늘 뭔데?”
양호실을 나오면서 바다에게 물어봤고 바다는 말없이 문을 잠그고는.
“밥, 콩나물 국, 김치, 멸치볶음, 사과, 감자와 당근 볶음.”
급식비 값 못하는 식단들을 나지막이 말했다. 와... 정말....
“무슨 채식주의자 식단도 아니고....”
“그러게. 그 많은 급식비 꼬박꼬박 내는데 왜 고기를 안 줄까?”
급식에서 고기 구경을 보름이나 못 보고 있다. 제육볶음까진 안 바라니 비엔나 소세지라도 주던가 좀.
“그래도 먹을 거지?”
“당연하지.”
“이미 돈을 냈는데.”
맛은 없지만 아깝게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보름이나 됐음 슬슬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이럴 거면 학교 나가서 뭐 사먹는 게 낫겠다.
“어? 쟤네 둘이야. 공주님과 왕자님.”
“왕자는 누구고 공주는 누구야? 저기엔 남자들 3명밖에 없는데?”
“왕자님은 저기 안경 쓴 애고 공주님은 가운데에 있는 애야. 저 안경 쓴 애가 가운데 있는 애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갔거든.”
“그럴 것 같지 않은 인상인데. 인상으로만 볼 게 아니네.”
“헤에~ 둘이 그렇게 다녔었구나?”
“저, 저기 바다야? 나 어깨가 너무 아픈데 꾹 잡지 말아줄래?”
게다가 얼굴은 밝게 웃고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야, 천시율. 아까 내가 강우와 같이 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내가 도중에 쓰러질 것 같으니까 들고 간 것뿐이야! 그것말곤 없었어!”
“딱히 별 것도 아니잖아. 가는 길도 좀 짧고.”
그니까. 시선 쏟아지는 복도와 힘들게 만드는 계단을 지나가면서 무슨 여유가 있겠어?
“그리고 이건들은 얘기지만 가면서 키스도 했다고 그러던데. 서로 사랑한다고도 말했다고 하고.”
“오오! 드디어 내가 BL을 현실로 보는 구나!”
“야! 우린 그런 적 없어!”
저것들이! 아무리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지만 학교 헛소문을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거든!
“헉! 미안해! 하지만 우린 전혀 신경 안 쓰니까 걱정 마!”
“맞아! 주위의 말은 신경 쓰지 마! 우린 응원할게!”
그 응원은 고맙지만 그렇게 밝혀서 하지 마! 진짜 엄청 화끈거리는데다가.
“...둘 다 자세히 말해봐.”
바다가 화낸단 말이야!
“헛소문이야! 그런 적 없어!”
“...학교에서 비밀인 건 알지만 그렇게 대놓고 부정하면 슬픈데.”
“아, 아냐!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럼 둘 다 학교에서 대놓고 애정행각 벌인 거야? 나만 빼고?”
“아 글쎄 아니라고! 정말 평범하게 안기고 간 것뿐이라고!”
아오 짜증나! 어떤 자식들이 소문을 부풀린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야구방망이가 간절할 때가 없었다!
“나 사실 시율이도 끼지 않고 둘이서만 같이 있어서 좀 찔려서 오늘은 가만히 당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듣고 생각 바뀌었어.”
바다는 얼굴은 밝지만 속심은 시커먼 기색을 풀풀 내며.
“오늘 밤 반드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겠어. 둘 다.”
“.......”
그 말에 절로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둘 다 작정하면 진짜 하는데. 큰일 났다....
<프로필 1>
공통사항: 남자, 17살.
천시율
키: 177cm 몸무게: 64kg
외관: 안경을 썼을 시 인상은 어둡고 조용하다고 보이는 반면 안경을 안 쓸시 인상은 정반대로 밝고 멋있으며 주위가 따뜻해질 것 같은 부드러운 외모. 체격은 가는 편이지만 근육이 많이 붙어있다.
특이사항: 안경 쓰고 안 쓰고의 분위기는 굉장히 크다. 남들에게 보일 때는 안경을 쓰고 강우와 바다와 있을 때는 안경을 안 쓴다. 안경 쓴 이유는 남들 눈에 띄기 싫다고 한다. 참고로 셋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
좋아하는 것: 강우와 바다. 한적한 곳. 말차나 녹차를 사용한 디저트.
싫어하는 것: 인파. 시험. 너무 단 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