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잊은 자들의 마을(1)

엘프 숲의 성, 중앙.

창문이 달려있지 않은 대부분의 방 사이에서 특이하게도 태양빛을 받아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창문 사이로 샛노란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어린 새는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빛바랜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을 빠르게 지나 곧장 방 안의 남자의 어깨에 다가가 앉는다.

거대한 고동빛의 책상 위에 책으로 숲을 만들어 놓은 채 그 사이에서 태연히 책을 읽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새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의 깊은 갈색 눈이 검은 유리 구슬같은 새의 눈과 마주치자 어린 새는 남자의 어깨 위에서 재잘거리며 무어라 떠들어댄다.

“어디서 파충류 새끼가 기어들어왔네...”

재잘거리던 새를 자신의 손가락 위로 옮기면서 남자가 짜증난 듯이 중얼거렸다. 낮게 깔려있는 목소리와는 달리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꼭,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듯 했다. 근처에 보이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 만 붓으로 뭐라고 휘갈겨버린 그의 글씨는 꽤나 지저분했다. 한 번, 두 번 대충 접은 종이를 새의 다리에 매다는 남자의 손길은 글씨를 쓸 때와는 달리 비눗방울을 만지려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갑자기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남자의 고개가 기우뚱거렸다. 그러고서는 혹여나 새가 떨어질까 조심스레 일어나는 남자의 태양을 엮어놓은 듯한 긴 금발이 찰랑였다.

창문가로 다가가는 남자의 발걸음이 고양이마냥 조용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남자의 발소리를 온통 잡아먹는다. 남자가 움직이는 동안은 미동도 하지 않던 노란 새가 바깥의 선선한 바람을 맞자마자 남자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돈 채 그대로 그린 듯 청명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티, 아가, 이상한 놈한테 걸렸구나.”

창가에 턱을 괸 채 새가 지나간 길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외로워 보였다.

*

에르미온은 흙냄새가 가득하던 토굴에서 바깥으로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귀 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에도 뒤에 남겨놓고 온 찜찜한 무언가 때문에 그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그의 속눈썹이 유난히 그림자를 많이 드리우는 듯, 에르미온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서렸다.

꽃잎 하나조차 흔들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쉰 에르미온이 채 다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의 그 병사였다.

“수장! 오베론님께서 보내시는 전언이 와있었습니다.”

병사의 위쪽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따라간 곳에 보이는 것은 하늘에서 빙빙 맴돌고 있던 검은 새였다. 에르미온이 새를 올려다본 순간 함께 있던 다리에 무언가를 매단 듯한 노란 새가 재빠르게 감옥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왜 그 새가 그곳으로 들어가는지 에르미온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오베론이 결정한 영역은 그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란 새에게 시선을 빼앗긴 검은 새가 신경질이 난 듯 시끄럽게 울어댔다. 검은 새는 계속해서 에르미온을 재촉하듯 북쪽으로 화살표를 그리면서 빙빙 돌았다. 에르미온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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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4 03:55 | 조회 : 98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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