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단 한 번 보았을 뿐인 그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루젠은 한동안 아무 말도 않은 채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적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늘색과 하얀색에 휩싸여 마치 하늘을 닮은 듯한 그 엘프는 루젠의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볍게 원을 그리는 손짓에 루젠을 묶고 있던 가지들은 일사분란하게 그의 팔다리에서 떠나 언제 움직였냐는 듯 다시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땅바닥에 쓰레기처럼 패대기쳐진 그는 금세 털고 일어나 깊고 푸른 눈을 마주한 채 시립하여 섰다. 도망가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나뭇가지들이 그를 다시 붙잡을 것이 뻔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엘프의 생김새가 눈에 더욱 잘 들어왔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듯 길고 흰 속눈썹과 머리칼 뒤에는 흰 나무로 된 장신구가 보였다. 넓은 옷자락에는 역시나 하얀색의 꽃들이 오밀조밀하게 수 놓여 있었다.
자수로 놓인 꽃에서 향이라도 나는 것인지, 화사한 꽃향기가 문득 주위로 퍼져나가는 듯 했다.
루젠의 벌꿀색 눈이 계속해서 그 엘프를 응시하고만 있자 몇걸음 뒤에 떨어져 있는 엘프들 사이에서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침묵을 깨고 나왔다.
“왕이시여, 그 인간의 이름과 이곳에 감히 들어온 목적을 물으십시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왕이라 불린 엘프가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보낼 사람인데 그런 의례적인 것이 무어 필요하겠느냐.”
달싹거리는 입술 끝에 그가 지은 웃음은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뒤에서 많은 엘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왕은 천천히 눈앞의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조심스러움을 담고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가 멈추어 섰을 때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 후의 움직임은 루젠에게는 마치 물 먹은 모래시계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눈앞의 엘프가 양 손을 뻗어 루젠의 양 볼을 마치 유리 세공품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레 붙잡았다.
들어올려진 그의 발뒤꿈치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그의 고개
그가 가볍게 내쉬는 한숨
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그 모든 느낌이 어우러져 잠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문득 꽃내음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의 입술이 루젠의 입술 위에 포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