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의 숲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자 살아있는 모든 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루젠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숲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그가 머물던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만류했다.
그것은 그가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사람들이 그를 붙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눈길과 손길을 거쳐가며 그에게 정이 든 사람들이, 그가 숲에서 홀로 비참하게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오직 저 멀리에 있는 숲에만 향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음에도, 그는 그들에게 그저 빙긋이 웃어 보이며 작별인사를 건넬 따름이었다. 이미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그가 어떻게 설득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걸 사람들은 직감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런 그가 가는 뒷모습만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발을 떼어 그는 결국 숲 앞에 도착했다.
누런색과 회색으로 가득했던 마을과는 달리 온통 초록색 일색인 숲가였음에도 숲에 가까이 있는 풀들은 밟힌 흔적 하나 없이 샐쭉하니 길게 자라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그 풀들은 숲에 들어오는 이방인을 배척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숲 앞에 울타리를 치는 것처럼 굵게 자란 나무들에서는 음산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경계하는 듯한 기운이 나오고 있었다.
물끄러미 숲 사이의 허공을 응시하던 루젠은 금지된 장소에 들어서는 사람답지 않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처럼 어딘가 쓸쓸한 웃음이 아닌, 당당한 미소였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그가 숲 안으로 내딛은 한 걸음에 풀들이 바스락거리고 나무들이 웅성거렸다.
맑지만 날이 서 있는 숲의 공기가 그의 얼굴을 찔러왔다. 하지만 그는 입을 벌려 공기를 받아들일 생각도 않은 채 묵묵하게 미소를 유지하며 걸음을 내딛을 따름이었다.
주먹을 꽉 쥔 채 걸음걸음을 내딛는 그의 모습에 태어나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아기새들이 제 둥지에서 파득거리고 어미새들은 그를 경계하듯 그의 위에서 빙빙 돌며 날고 있었다.
그렇게 오직 앞만 보고 걷던 루젠이 문득 돌아본 주위의 숲에서는 어느새 굵은 나무들이 사라져가고 얇고 흐느적거리는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그 찰나에 루젠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해 주려는 듯, 그의 위에서 맴돌던 새가 듣기 싫은 소리로 길게 울었다.
그 소리를 신호삼아 휘장처럼 늘어져 있던 나무들의 가지들이 그의 사지를 옭아맸다.
뱀처럼 다가오는 녹색 끈들에 루젠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다리를 붙잡은 나뭇가지에 그는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윽...”
루젠의 몸뚱이는 금방 허공으로 비스듬히 띄워졌다.
팔다리의 옷이 보이지 않을 정도고 꼼꼼히 매인 탓에, 그는 꼼짝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시간은 나이든 당나귀처럼 헐떡이듯 느리게 지나갔다. 주위의 빽빽한 나무들이 그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숲의 고요 속에 갑자기 사락거리며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나무들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에서 슬슬 비켜서고 있었다.
길이 만들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종종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에 루젠은 궁금증을 가지고 그곳에 시선을 주었다.
길 사이로 하늘빛 신이 보였다 이내 새하얀 겉옷에 덮혀 사라졌다.
루젠의 눈길이 닿는 곳에 선 남자는 하얗고 푸른 색에 물들어 마치 하늘 그 자체 같았다. 반만 묶은 길고 흰 머리에서 흩뿌려지는 빛의 조각에 잠시 루젠이 정신을 팔자 남자의 눈매가 잠시 찌푸려졌지만 이내 펴져 루젠을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호수같이 푸른 눈에 루젠은 이내 시선을 주었다. 멍하게 그 눈을 응시하던 루젠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그려졌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예를 갖춘 자세로 서 있던 많은 엘프들이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웅성거렸지만 앞에서 루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남자의 가벼운 손짓에 순식간에 고요를 되찾았다.
어께 높이로 올린 손을 거둘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남자는 루젠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곧이라도 폭풍우를 만들 것만 같은 먹구름과 같은 부드러움이 남자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었다.
“금지된 결계에 무단으로 발을 들이신 주제에 여유로우시군요, 당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루젠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폭풍은 오직 한마디에 순식간에 정리되어 사라졌다.
드디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