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아진이는...?

일어났다. 음... 사실 눈만 뜬 것 뿐이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아니, 어떻게 형이랑 내가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껴안고 자고 있는 건가?

심지어 이제 눈치 챘는데 형의 옷이 살짝 구겨져서 늘어난 것을 보니 이것은 필시 내가 잡았던 흔적 인 것 같았다. 물론 형이 나를 끌어안고 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일어났니?”
“으힉-! 아, 넷! 죄, 죄죄, 죄송해요! 빨리 떨어지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그, 어제는! 죄송했어요!”

일단 내가 잘못한 것 같으니 사과부터 했다. 재빨리 침대에서 튀어나와 차렷 자세를 했다. 고, 고개도 숙여야 하나.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보니 형이 옆으로 길게 누워서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윽! 잘생겼어!!! 아니, 일어나자마자 심장에 무리가게!’

“어제 기억은 나는가보네?”

나른하게 눈웃음을 치면서 형이 말했다. 멍하니 형이 하는 것을 보다가 침대를 톡톡 두드리는 손짓에 정신을 차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봤다.

‘………!!!!!’

그냥 생각하지 말걸! 어제의 나, 죽어라!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지껄인 거야! 아니, 왜 거기서 고백을 해! 펑펑 울면서 고백하다니! 완전 못생겼겠다!

“기억났나봐?”
“아, 아뇨!”
“그래?”

형이 침대에서 내려와 내 앞에 바로 섰다. 눈을 찔끔 감았다. 이 사람 말하는 것도 그렇고 왜 이렇게 능글맞아졌어!? 형이 내 콧등을 살짝 쥐었다가 놔주었다.

“에?”
“사랑해, 아진아.”
“네?”
“사랑한다고, 너.”

아항~ 형이 아진이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구나. 음? 아진이는 난데? 형이 날 사랑해? 아, 그럼 형이 날 사랑하는군. 사랑해.

‘……………’

“네에에에에--?”
“솔직히, 이렇게 놀라는 반응을 원한 건 아닌데 말이야.”

퍼뜩 놀라서 물러서는 나를 바라보며 형이 헛웃음을 흘렸다. 음, 이게 아닌가. 그래도 너무 놀라서 고백을 한 사람에게 답변은...

“아, 그러면 고마워요?”
“넌 참, 이상한데서 맹하다니까.”
“그러면요?”
“사랑해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 형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내가 잘못 들었나... 하하하.

“어제처럼 형아 사랑해요- 해봐.”
“제, 제가 언제...!”

형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잔뜩 흥분해서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 때 스치듯이 나는 기억들이 주인을 배반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형이 너무 좋아요. 정말, 정말 좋아요.’
‘……사랑해요.’

으아아악-! 생각나지 마. 생각나지 말라고! 됐어! 알았으니까. 고, 고백하면 되잖아! 눈을 찔끔 감으면서 입을 벌렸다.

“혀, 형아...”
“응~”
“사, 사, 사...”
“뭐라고?”

이 사람,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약간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발끈해서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사랑해요!”

말했다....? 근데 왜 아무런 말이 없지. 또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형도 나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차마 얼굴에다 대고 소리칠 수는 없었기에 숙였던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에...?”
“나도, 사랑해-”

부드럽게 몸을 감싸오는 감각이 나를 지배했다. 허리와 어깨를 동시에 끌어안은 형이 귓가에 스치듯, 그렇지만 확실하게 다시 한 번 고백해왔다.

“읏...”

이제야 실감이 났나보다. 어제 그렇게 울었음에도 눈물이 또 나왔다. 나 그렇게 울보 아닌데,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눈물이 헤퍼졌는지 모르겠다. 형이 눈꺼풀에 살며시 입술을 대었다.

“평생, 같이 있어줄게.”
“흐윽-! 흡!”
“사랑해. 사랑해 아진아.”

눈물을 닦으려는 손을 형이 붙잡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술로 가져다가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살짝 핥았다.

“흣,”

형의 고개를 숙였다. 그에 맞춰 입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약간 들었다. 그리고 형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기 직전,

지이이잉- 지이이잉-

“……………”
“……………”

지이이잉- 지이이잉-

“……받아요. 급한 전화면 어떡해요.”
“……미안.”

전화가 왔다. 형이 어깨를 감쌌던 손을 풀어 전화를 받았다. 허리에 가해지는 강인한 느낌을 받으며 형의 가슴에 톡 기대어 통화를 살짝 엿 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용건만.”

도련님? 생소한 호칭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전에 형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4명이 강아진이라는 분을 내놓으라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엥, 고등학생에 4명,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횡포를 부릴 녀석들은... 설마.

[네, 와보셔야 할 것, 피해!]
“흠...”

아니, 그 놈들은 남의 집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이가 없기도 하고 괜히 미안해지기도 해서 형의 얼굴을 쳐다보니 형이 괜찮다는 듯 웃어주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떻게 할까요.]
“내가 가지. 일단 끊어.”
[예.]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도 방에는 침묵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미 아까전의 열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형이 난처하게 머리를 쓸었다.

“아마... 그 녀석들인가 본데, 미안해. 잠깐 가봐야겠다.”
“미안해요...”
“네가 왜 미안해 해?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온 녀석들이 잘못한 거지.”
“그래도.”
“일단 가봐야 할 것 같다. 넌 여기에 있어.”
“같이 가요. 그래도 제 일이잖아요.”

도움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내 일이니까. 싸움을 그렇게 못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 녀석들이라니 망설여지기도 했다. 혀, 형이 지켜주겠지? 민폐 끼치는 것은 세상 싫어하는데. 혹시 모르잖아.

진지한 내 모습에 형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겉옷을 걸쳐주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방에서 나와 보니 왠지 바깥이... 조용해? 이런 내 궁금증을 알았는지 형이 설명해줬다.

“일부러 본가에서 가장 중심인 곳으로 데려왔거든.”
“방이요?”
“아니, 집.”

그러니까, 요 주택이... 본가에서 깊숙한 곳이라면. 본가는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그럼 집도 여러 채가 있다는 거야? 새삼 형의 정체가 의심이 되었다. 뭐하는 사람이지. 정말.

집을 나오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방이 너무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은데요. 나와 보니 이미 차가 대기되어 있었다. 형이 차 문을 열어주며 먼저 타라고 말했다. 엄청 좋아 보이는데, 심지어 기사 아저씨도 있어!

“가지.”
“네.”

‘어디로 가는지 아는 거예요...?’

심각해 보이는 얼굴에 궁금증은 날로 삼키면서 슬슬 눈치를 봤다. 형이 걱정하지 말라 면서 손을 잡아주었다. 형의 웃는 얼굴에 나도 웃었다.

몇 분이 지나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형이 눈에 이채를 띄며 멈추라 하였다. 이제 도착한 건 가요. 무슨 집이 이렇게 넓어?

“흐음-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생각보다 괜찮군.”

아니, 그럼 어디까지 올 거라고 예상했는데요? 형의 도움을 받아서 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집(?)의 풍경이 눈에 보였다. 조금 오래되었는지 옛 부잣집의 한옥, 아니 그보다는 한옥 마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설마, 이 한옥 마을... 전체가?”
“응. 본가야. 물론 중심으로 가까울수록 지위가 높아.”

무슨 지위요 라고 물어 볼 수 없었다. 첫째로, 물어보기에는 내 정신이 안녕하지 못할 것 같았고, 두 번째로는 저~ 기서 녀석들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를 뒤로 물렸다. 얌전히 뒤로 물러나서 상황이 어찌되나 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이거이거, 4명만 온 게 아니라... 아주 패거리를 끌고 왔네.”

전화한 놈 누구야? 형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 분을 위해 묵념했다. 확실히 싸우는 형태를 보아하니 4명만 온 것은 아닌 듯싶었다. 쟤네도 뭐 평범한 놈들은 아니니까.

“아진아~~~~ 내 꺼~~ 슬우 왔찌요!!!”

닥쳐요~ 누가 네 거라는 거예요~~ 윤슬우가 히히 웃으면서 옆의 상대를 쥐어 팼다.. 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형의 미간이 약간 꿈틀거렸다.

“앗, 나의 아기 고양이!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필요 없어! 채시원이 나를 발견하고는 상큼하게 웃으면서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려다가 형의 주먹이 떨리는 것을 보고 가만히 내렸다.

“괜찮습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마치, 저번에 단 둘이 있었을 때 처럼요.”

안 괜찮아! 너 때문이잖아! 그리고 단 둘이 있었다는 것은 왜 말하는 거야? 서하진이 제 딴에는 부드럽게 웃어보였지만 내게는 악마의 미소로 보였다. 형의 미소가 짙어졌다.

“시발, 안 비켜? 야! 강아진! 너 시발, 내가 아무나 홀리고 다니지 마랬지?! 저번처럼 당하고 싶어?”

아니, 뭘요- 내가 뭘- 뭘 당했다고. 강세찬이 욕을 섞어가면서 화를 냈다. 화는 내가 내고 싶은데, 형이 씹어뱉듯 말해서 선수를 놓치고 말았다.

“미친놈들이...”

네넹, 맞아요. 미친놈들이에요! 혼내주세요! 막 때찌때찌 해 주세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면서 동의를 표했다.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진아.”
“네?”
“아진이는 누구 꺼?”

형이 화려하게 웃었다. 와- 주위에서 꽃이 피는 것 같은 착각이 실제로 일어나는 구나. 막막, 후광이 비치는 듯.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마법에 걸린 듯 말했다.

“승현이 형이요.”
“잘했어.”

기분이 좋은 듯 형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놈들이 경악해서는 한 번에 외쳤다.

“아진이는 내 꺼야!”
“내 아기 고양이야!”
“내 것에서 당장 손 떼시죠!”
“시발! 너 내 꺼 건들지 마!!”

아, 이젠 나도 못 참겠다.

“이 미친놈들아----!!!”

5
이번 화 신고 2017-02-22 22:03 | 조회 : 4,047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진이의 시점은 마무리가 되요ㅠㅠㅠ 하- 힘들었다. 조금 아쉽지만 다음에는 승현이의 시점으로 오니까요!!! 그리고... 네, 아진이가 좀 많이 자욬ㅋㅋㅋ 약 기운 때문인가???? 아니면 형이랑 잉차잉차 조곰 했다고 나가 떨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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