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고백

무슨 정신으로 씻었는지 모르겠다. 걸려있는 하얀 수건으로 머리를 톡톡 털면서 나오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형은 어디 나갔나?’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려다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아니야 내가 형을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한 직후니까 오히려 바로 만나지 않은 것이 더 좋지.

침대 위에 폭 앉아서 발을 동동 거렸다. 너무나 부드러운 촉감에 발끝으로 이불을 비비기도 했다. 그러다가 팍 누워서 넓은 침대 위를 한 바퀴 데구루루 구르기도 했다.

그보다 형이 언제 오나 싶어서 벌떡 일어났더니, 아까 구르던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머리가 띵 하면서 시야가 바뀌었다. 예쁜 하늘색 천장이다. 바닥도 푹신하구나.

벌컥-!

“아진아!!!”
“으앗! 형?”

아니,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들어와요! 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는데! 부끄러워! 이런 내 속마음도 모르는 지 형이 재빨리 다가와서 안아들었다. 요즘 왜 이렇게 공주님 안기를 많이 당하는 거야!

“몸도 안 좋은데, 왜 자꾸 움직여.”
“괜찮아요.”
“방금도 쓰러졌잖아.”
“그냥 넘어진 거예요.”
“벌떡 일어나다가 쓰러졌지.”
“어떻게 알았어요?!”

형 방금 들어왔는데? 하긴 아까 들어올 때만 해도 그래. 그렇게 급하게 들어올 이유는 없었는데 엄청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허겁지겁 들어왔지. 덕분에 난 공주님 안기를 당했고. 형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내가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봐서 잘 알아.”
“그렇구나. 그럼 형은 의사에요?”
“그건 아니고.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못 지나치겠더라고.”
“와아- 형 정말 대단해요!”
“그 정도 까지는 아닌데.”

감탄스럽다. 솔직히 많은 사람을 만나 봤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니까 라는 심정으로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 주겠지 라는 심정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형은 그런 사람들을 못 지나치겠다고 그런다. 역시 인성도 바르구나!

“에이~ 겸손은! 저도 형처럼 되고 싶어요!”
“안 돼!”

깜짝이야. 갑자기 형이 소리를 높여서 놀랐다. 그냥 형처럼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고 한 건데 왜 안 되는 거지? 혹시 혼자서 그런 일을 독차지 하고 싶은 걸까? 물론 그런 사람이란 것은 알지만 이유가 궁금했다.

“왜, 왜요...?”
“아, 그러니까. 형은 네가 너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해서.”
“아- 하긴, 그런 일은 그냥 쉽게 되는 건 아니죠.”
“응. 그러니까 너는 좀 편했으면 좋겠어.”

그래. 형은 너무 다정해서 나중에 결혼할 상대에게도 진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것 같았다. 형이랑 결혼할 사람은 참 행복하겠네. 이렇게 다정하고 인성도, 실력도(?) 있는 사람이랑 함께 한다면,

‘어? 그러고 보니 나 형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사람. 내가 자기 좋아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너무 매너가 넘쳐. 솔직히 좀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티가 안나나?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피곤하다.

“하아- 읍!”
“방에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그런지 좀 지겹지?”
“네.”
“그, 그래.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네.”
“근데, 아직 쌀쌀 할 텐데...”
“네.”
“…아진아, 어디 아프니?”
“네.”
“……잠 오는구나.”

아까 쓰러져서 이야기하다보니 또 평소처럼 이야기 하게 됐다. 이게 아닌데. 의식하게 되니까 자꾸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말도 건성으로 하고. 아까 형이 뭐라고 했더라? 일단 대답하기는 했는데, 거절해야 하는 대답이었으면 어떡해?

나도 모르게 하품이 계속 나왔다. 형이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웃다가 갑자기 움직여서 그러니 한숨 더 자라고 일렀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좀 자겠습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조금만 잘게요― 라고 덧붙였다.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보니 여전히 형이 곁에 있었다. 나 얼마나 잤어요? 하고 물어보니 몇 시간 자지도 않았단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불에 얼굴을 비볐다. 부드러운 감각이 너무 좋았다. 이불이 뭔가 시원하기도 했고 말이다. 가만히 있던 형이 갑자기 말했다.

“아진아, 형 봐 볼래?”
“네...?”
“열이 다시 오르나...”

얼굴이 잡혔다.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지만 이 큰 손이 형의 손이라고 의식하니 닿은 부위가 화끈화끈 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마에도 손이 올라오며 가볍게 열을 재는 것 같았다.

나 어디를 봐야 하지? 아, 그래. 형의 몸은 오늘도 완벽하구나. 저번에 정장 입은 것도 멋있더니 편하게 입으니까 또 다른 느낌이네 머리도 차분하게 내려와 있고 가볍게 입은 것 같았는데 이게 바로 기본으로도 존잘을 내뿜는 사람들의 특권인가. 뭔가 부럽다.

얼굴도 잘생겼어. 오늘따라 더 빛나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인가. 단단한 검은색 눈동자가 예쁘게 휘었다. 콧날도 날카롭다. 그렇지만 균형이 잡힌 형태였다. 그리고 입술은, 진짜 잘 익은 사과 같이 붉어서 달콤할 것 같았다.

“아..ㅈ...?”

입술이 벌려지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네? 뭐라구요? 입술을 뚫어져라 살펴보면서 뭐라고 하나 집중했다.

“아진아? 형 얼굴 뚫어지겠다. 왜 그렇게 쳐다봐? 뭐 묻었어?”

아하, 형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아서 부담이 되었군요. 뭐 묻은 게 있긴 하네요. 잘생김.

‘……난 쓰레기야.’

되도 않는 드립을 하려고 하다니 이럴 때는 생각만 하는 이 머리가 기특했다. 말했다면 대대손손 수치플 이었을 거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형의 얼굴이 점점 당황으로 물들어가며 내게서 약간 떨어졌다. 억! 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형이 난처해 하니까 더 난처해졌으면 좋겠어!

이 기세를 몰아서 그냥 한 번 장난이나 처 볼까 싶었다. 뒤로 물러나는 형의 옷자락을 꼬옥 잡으면서 불쌍하게 올려다봤다. 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혀엉~ 승현이 형아~”
“아, 아진아...?”

슬픈 생각, 슬픈 생각. 눈동자에 눈물을 맺히게 한다. 약간 어지러운 듯이 비틀거리자 형이 깜짝 놀라면서 나를 붙잡아주었다. 그리고는 걱정되는지 침대에 눕혀서 이불을 덮어주는데...

‘형 그거 아니에요!’

이대로 쉬라면서 방을 나갈까봐 당황했다. 옷자락, 옷자락을 주세요. 형의 옷자락을 마지막 생명줄인 마냥 꼭 쥐고 베개에 푹 파묻힌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서 울먹였다.

“형아도 갈 거예요?”
“무슨...?”
“우리 엄마도, 아빠도 갔는데. 형아도 나 버리고 갈 거예요?”

아, 이건 좀 좋지 않다. 확실히 전생(?)의 난 고아였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환상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모님은 안 계셨고 그 설움이 이제야 터졌나보다. 눈물샘이 고장 났는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가지 마요. 나, 나 버리지 마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 잘 할 테니까...”

처음에는 당황하던 형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점점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미움 받았나봐. 형은 내가 싫어졌나봐.

겁이 나서 재빨리 옷을 놓았다. 그러자 형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엄청 무섭다. 화났나? 혼낼까?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예전처럼 맞을지도 몰라. 어? 왜 맞을지도 모르는 거지?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잘, 잘못, 잘못했어요... 얌전히 있을,”

포옥-!

“어...?”

따뜻하고, 단단한 품이다. 안정이 되고, 기분 좋은 향이 나는, 형. 모든 것을 막아줄 것 같은 모든 것에서 지켜줄 것 같았다. 형이 나를 끌어당겨 힘차게 안았다.

“안가.”
“……?”
“안 간다고.”
“그치만,”
“절대 아무데도 안가. 가도 너 없이는 안가.”
“………응...”

단호한 목소리가 망설이는 마음을 붙잡았다. 그제야 안심이 돼서 잔뜩 긴장하던 몸에 힘을 빼고 형의 어깨에 툭 기대었다. 그런데도 울음이 계속 나왔다. 형 옷 젖으면 안 될 텐데. 애써 참아보려고 했지만 그 결과로 딸꾹질만 나왔을 뿐이었다.

“흐읍- 흑, 흐윽, 응, 히끅! 읍”
“괜찮아, 울어도 돼...”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랗고 따뜻한 손에 그동안 쌓였던 걱정이, 설움이, 아픔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다정함에 목 놓아 울어버렸다.

“으아아앙-”

어린 애처럼 펑펑 울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형은 자기 옷이 축축하게 젖는 것도 상관없는지 그저 내 머리를, 마음을 연신 쓰다듬어주었을 뿐이었다.

“괜찮아, 이제 내게 네 곁에 있어 줄게.”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덜컥 고백하고만 것은,

“좋아해요.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뭐...?”

형이 잠시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이 묻더니 나를 팍 떼어내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얼굴은 눈물로 엉망일 테지만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고백하는데 너무 그런가 싶어서 양손을 들어 자꾸 나오는 눈물을 닦아냈다.

“형이 너무 좋아요. 정말, 정말 좋아요.”
“너... 네가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그냥 친한 형으로서 좋아하는 걸 착각한건 아니냐고요? 손을 멈추고 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평생에 할 고백, 여기서 다 하는 심정이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웃으면서 다시 한 번 고백했다.

“……사랑해요-”

빙글,

또 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아, 예쁜 하늘색 천장이다. 이제 보니 높은 가을 하늘 색깔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그럼. 아무런 걱정 없는 색. 나는 이 색이 참 좋았다.

‘아니...’

그 색보다는 이 색이 더 좋았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만을 바라봐주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다정한 검은색. 순수하게 검은 눈동자에 동그랗게 눈을 뜬 내가 비추었다. 그것이 재미있어 배시시 웃고 말았다.

“너...”
“………흡?!”

입술이 막혔다. 형이 몸을 기울여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너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맞닿은 입술로 미소 짓는 것이 느껴졌다. 살짝 입만 맞추고 떨어졌지만 왠지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어디 봐?”

형이 작게 웃었다. 서로의 숨소리마저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을 아니었는지 형은 나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뒷머리를 받치는 손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허리 사이로 강인한 팔이 들어왔다.

“으음-”

입술을 조금씩 빨아들이다가 점점 강하게 마찰시켰다. 점점 호흡이 가팔라지면서 부족한 숨을 보충하려 저절로 입을 열게 되었다. 마치 받아들이는 것처럼.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섞었다.

부드럽게, 원으로 얽으며 애무를 하던 형이 입천장을 한 번 훑더니 혀를 힘껏 빨아 당겼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형의 혀를 살짝 깨물고 말았지만 형은 잠시 멈칫하는 것 빼고는 더욱더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응, 음,”

오랫동안 계속되는 키스에 저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달리고 말았다. 그리고 흥분되는 몸과는 다르게 울어서 그런지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을 약하게 깜박였다. 형이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놔주었다.

“졸리면, 자렴.”
“………으응...”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부드럽게 흘렀다. 이마를 살짝 맞대었다가 뗀 형이 이불을 덮어주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잠결에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5
이번 화 신고 2017-02-22 20:17 | 조회 : 4,489 목록
작가의 말

드, 디, 어!!!!! 여러분! 드디어 아진이가 고백을 합니다아아아아아!!!!!! 워후--! 흥해라!!! ....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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