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금지된 산

"네, 들어오세요."


카니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대답했다. 카니의 예상과는 다르게 들어온 건 라휠이었다. 카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노, 놀랐잖아요!"
"쉽게 놀라는구나 아가야."


라휠은 웃더니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들고 있던 것을 카니에게 건넸다.


"단검? 이건 왜..."
"호신용으로 쓸 만해. 마법이 걸려있거든. 너는 직접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해도 그 검에 마력을 흘려 넣으면 원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카니는 눈을 반짝이며 단검을 바라보다 라휠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에게는 어차피 쓸모없는 물건이거든."


라휠은 검이 없어도 얼마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카니는 그건 그렇겠죠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비싸 보이는데...이렇게 넙죽 받아도 괜찮을까요?"
"됐어.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만 기억하게 되니까."



라휠은 잠시 검을 바라보았다. 그가 줬던, 결국 사용할 수 없었던 검.


"아무리해도 바꿀 수 없더라고."


레스, 네가 틀렸어. 난 인간이 될 수 없어.




16. 금지된 산




순혈의 마을 중 한 곳에는 출입이 금지된 산이 있다. 마을 뒤에 있는 그 산은 특별할 것 없는 산이었지만 출입이 금지된 이후 산 안의 동굴에 보물이 숨겨져있다는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몰려왔다.

산에 들어간 수 많은 사람 중 살아돌아온 것은 몇 명 밖에 없었다.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말했다.

'괴물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산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산에 있는 알 수 없는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자네도 산에 올라가려고 왔나?"
"네?"


무시무시한 수호자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고도 꾸준히 산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이 마을에서는 낯선 사람이 보이면 산을 오르려 하는 여행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에요. 저 여기에 살잖아요."
"그럴 리가. 이 마을은 작아서 누가 사는지 서로 다 아는걸? 그런데 당신은 생전 처음..."
"무슨 소리하시는 거예요."


남자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가게 주인과 눈을 마주쳤다. 깊게 눌러 쓴 후드 밑에 숨은 눈이 마주친 순간, 주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렇지!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봐. 이렇게 깜박깜박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 정정하세요."
"어휴~ 어쩜 우리 아들이랑은 다르게 말도 잘한다니까."
"아, 전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볼게요."


남자의 말에 주인은 물건을 넘겨주고는 괜찮다는 그에게 덤까지 얹어주며 돌려보냈다. 주인을 지켜보던 그의 아들은 남자가 떠나고 난 후, 다가와 물었다.


"누구야 그 사람?"
"응? 누구 말이냐?"


태연하게 자신이 마을 사람이라고 말한 남자는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자는 금지된 산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한순간 사라진 남자는 산 안의 어느 동굴 앞에 나타났다. 동굴 앞 널찍한 바위 위에 한 소녀가 앉아있다.


"또 밖에서 기다린 거니?"
"아빠!"


소녀는 남자에게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빠 없을 때는 밖에 나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엔..."
"나쁜 사람들도 올라온다고?"
"그래."


남자는 아이를 안아 든 채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뒤덮여있던 동굴은 남자가 들어가자 벽에 박힌 돌이 환한 빛을 내 동굴을 가득 비추었다.

동굴 안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마치 사람이 사는 집처럼 꾸며진 그 안은 돌바닥만 아니라면 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소녀를 의자에 앉혔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아빠가 부탁했잖아. 안나가 밖으로 나오면 아빠가 안심하고 다녀올 수가 없어."
"그래도 심심했는걸."
"...그랬구나. 아빠가 미안해."
"괜찮아. 아빠는 언제나 안나를 위해서 노력해주잖아. 나도 알고 있어."


남자는 웃으며 후드를 벗었다. 흰색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그 밑에 짙은 보라색 눈이 드러났다.


"아빠, 오늘은 뭐 사 왔어?"
"응? 안나가 좋아할 만한 선물."
"와아! 뭐야? 뭐야?"


남자가 가볍게 손짓하자 물건들이 가지런히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남자는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보고 있어. 아빠는 잠시 둘러보고 올게."
"응!"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남자가 나타난 곳은 녹색 빛의 커다란 광석이 있는 어떤 공간. 남자는 녹색 광석 안에 있는 한 여자를 보고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깨어났어요. 누군가가 죽었겠죠."


남자는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의 노력을 배신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곁에는 죽음만이 맴돈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요?"


남자는 광석 안의 여자를 원망하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을 감은 채 광석 안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그렇게나 그를 죽인 인간을 원망한 건가요?
카루나."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7-01-14 10:57 | 조회 : 1,260 목록
작가의 말
B.B.ZZ

새로운 등장인물이 추가되었습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