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녀와 사냥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에서 소녀는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는 그녀를 쫓는 수십 개의 발소리와 위협적인 고함이 들려왔다.


"잡아!!! 놓치지 마!"


겁에 질려 나뭇가지에 팔이 긁히고, 옷이 찢겨 나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소녀는 그저 앞으로만 달렸다.

그러나 그녀 앞에 펼쳐진 것은 까마득한 깊이의 낭떠러지. 낭떠러지 밑에는 가지뿐인 회색의 나무들이 널려있었고, 그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이 숲의 경계에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가지뿐인 나무 말고는 어떤 식물도 자라지 않는다는 죽음의 숲. 만약, 정말로 운 좋게 살아서 내려갈 수 있다고 해도 저 밑에는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조용한 숲에 울려 퍼지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자신이 절대 살아서 숲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멍하니 밑을 내려다보던 소녀는 가까워진 발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소녀의 발이 얽히고 순식간에 그녀의 몸은 밑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버렸다.

하늘의 어둠이 사라지고, 날이 밝아 온다.




1. 소녀와 사냥꾼




죽음의 숲을 지나면 나오는 죽음의 땅. 그곳은 오래전 추방당한 죄인들, 혼혈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이다.

오래 전부터 대륙에는 수많은 종족이 살고 있었다. 동족끼리만 교류하던 그들은 한계를 느끼고 다른 종족들과도 교류하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혼혈이 생겨났다.

혼혈들은 너무 능력이 좋아 순혈들이 밀려난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받았다. 순혈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에 혼혈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혼혈들보다 신체 능력이 낮은 순혈들은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순혈의 왕과 친했던 현자가 순혈들에게 마법이라는 축복을 전해주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순혈들만이 쓸 수 있는 마법은 혼혈의 신체 능력으로 이길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혼혈들은 패배한다.


"이것들을 전부..."
"잠시만!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모든 혼혈을 죽이려던 순혈의 왕은 혼혈의 대표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자 자비를 베풀어 죽음의 땅으로 추방하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그곳에 보내지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나운 마물들, 식물이 자라지 않는 그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혼혈의 대표는 다시 한번 순혈의 왕에게 빌었다.

그리하여 혼혈들은 죽음의 땅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순혈들과 교환을 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음, 얼마나 잡았더라. 까먹었네."


죽음의 땅에 사는 마물들은 귀한 마법 재료가 되었고, 때로는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되었다. 마물들은 아주 흉포므로 혼혈들에서도 그들을 잡을 수 있는 자들은 한정되어있었다.

그들은 사냥꾼이라 불리며 마물을 잡아 혼혈의 마을을 먹여 살린다. 그런 사냥꾼 중에서도 숲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는 레바는 특히나 뛰어난 실력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꺼내서 세어봐야지."


레바는 허리에 찬 주머니를 확인하듯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작은 주머니는 평범한 주머니가 아닌 특별한 마법 도구인 아이템 중 하나로 크기에 상관없이 많은 양을 넣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다.

마법 도구인 아이템은 마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값이 비싸고 급에 따라 기능 차이가 크지만 레바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

아침부터 리카가 그를 닦달하며 쫓아내 버려서 아침 일찍부터 벌써 손가락 개수를 넘는 수의 마물들을 잡았다. 돌아갈까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이른데."


지금 돌아가면 분명 리카는 화내겠지. 그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제 두 명의 사냥꾼이 심하게 다쳐 며칠 간은 움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그럴 수도 없다.

그 두 명의 몫만큼 그가 잡아야 다가오는 겨울을 보내기 편하다.

능력 있는 게 죄지.

레바는 중얼거리면서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이게 뭐야?"


그의 앞에 집채만 한 크기의 기괴한 짐승이 가만히 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다. 보라색 가죽을 가진 이 마물은 예전에 레바가 잡을 때 꽤 고생했기에 기억하고 있다.

그런 마물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바는 커다란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박수도 쳐보았다. 반응이 없다. 눈동자는 생기가 없고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시선은 그 어디에도 향해있지 않다.


'죽었다고?'


상처나 피도 없이 죽었다. 레바는 가볍게 뛰어올라 마물의 등으로 올라갔다. 마물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다른 마물이라면 이렇게 깔끔하게 죽일 수 없다. 사냥꾼도 마찬가지. 남은 것은 마법사라는 존재밖에는 없다.


'순혈이 이 숲에는 왜 온 거지?'


레바는 고개를 돌려 마을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순혈들은 이 숲이 불길하다고 오지 않을뿐더러 마법사는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레바는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작게 들려온 한 노랫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달이 지고...다시...만들어질..."


드문드문 끊기는 작은 노랫소리. 그 가느다란 음성이, 따뜻한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이 익숙해서 레바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대의 이마에 입을 맞출게요."


노랫소리 끝에서는 어둡고 불길한 숲에서 이질적이게도 밝은 햇살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절대 내려오지 않는 새들이 햇살 안에서 그 노랫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눈을 감고 노랫소리를 부르는 소녀의 모습에 레바는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연한 새싹과도 닮은 색의 긴 머리카락, 하얀 피부와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볼, 녹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때, 레바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가슴 쪽에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눈앞의 소녀를, 그는 이제껏 찾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만난 건가. ...잘 풀릴 수 있기를 바라.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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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9:45 | 조회 : 1,248 목록
작가의 말
B.B.ZZ

폭스툰에도 도전합니다! 모처럼 삽화를 넣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컴퓨터가 고장나서 그림을 못 그리네요...다음에는 손그림으로 라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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