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청산

"으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부엌에 울렸다. 눈을 부비며 나가보니 태호가 요리중이었다.

"태호 형~"
"잠시만 앉아있어"
"나도, 같이 할래~"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야!"
"엄마같아, 치"

툴툴거리면 식탁에 앉은 준은 불만스럽게 우물거렸다.

"귀엽긴, 먹자."
"우와, 이거 형이 한 거야?"
"오늘, 너 혼자 있어야 하는데. 괜찮아?"
"큼, 난 뭘로 보고?"
"나, 휴직계 내고 올거야. 그니까 오늘만 참아?"
"갑자기?"
"준도 찾았겠다, 좀 쉬려고"

밥을 다 먹은 태호는 여유롭게 설거지를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다녀올게"
"응응! 잘 다녀와!"
"참, 뽀뽀!"

볼을 들이밀며 웃는 태호 때문에 약이 오른 준은 넥타이를 끌어당겨 진하게 뽀뽀해주었다.

"여우같아..."
"뭐라고?"
"아냐, 아냐. 나 나갔다 올게!"

집을 나선 태호는 곧장 서로 향했다. 쫙 빼입은 태호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도 드럴것이 항상 트레이닝 복만 입고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다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적응 되지 않았다.

"잘생겼어..."

기분 좋은 듯 꽃미소를 남발하는 태호 덕에 넘어가는 이가 장난아니었다. 이를 준이 보았다면 아마, 질투를 엄청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장님!"
"오, 한 과장! 하산 했네?"
"뭡니까, 그 찜찜한 환대는?"
"뭐긴 뭐야, 일이 밀려있다는 소리지?"
"저, 휴직계 쓸건데요?"
"이 시점에?"
"4년동안 아껴놓은 휴직계가 장난아니거든요? 1달? 한달만 쓰고 올게요"
"애인이라도 생겼나봐?"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한 과장과 양 부장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누군데? 소개 시켜줘봐"
"결혼하면요!"
"벌써 결혼까지 생각했단 말이야?"
"부장님도 아시면서"
"아, 준 씨?"
"자, 잠깐만요!!!!"
"어, 신 형사네, 안녕?"
"지금 안녕할때가 아니잖습니까?!!!"
"어허,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요?!!! 덕분에 업무량이 2배나 늘었다고요!!"
"흐음, 대신에 강 형사랑 사귀잖아"
"아,, 아니,,, 그걸 어떻게?"
"강 형사가 말해주던데?"
"강 형사님 찾으러 가야겠네요"
"아참,"

하며 신 형사에게 속닥거리는 태호.

"누가 공이야?"
"아, 진짜!! 형사님!!"

얼굴이 빨개지는 신 형사. 그리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강 형사.

"어, 강 형사..."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라지는 강 형사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신 형사는 옆에서 박장대소하고 있던 태호에게 눈을 돌린다.

"뭔 짓을 하셨길래 도망가는 거예요?!!!"
"아학, 끄윽... 뭐해, 얼른 쫓아가지 않고! 귓속말한 거 오해한 모양인데?"
".... 갔다와서 봅시다."

신형사가 나가자마자 태호는 얼른 휴직계를 내고는 서를 떠났다.


-

"헉..헉.. 어디 계신거야, 대체?"
"옥상으로 가봐"
"한 형사님?"
"알려줄 때 가라?"
"갔다 와서 봅시다, 진짜로"

옥상-
쾅!
"강 형사님! 여기 계세요?"
"..."
"왜 우세요?"
"너, 내가 좋다며?"
"그게 무슨..?"
"근데 왜 한 형사님 하고 끌어안고 있는건데?"
"..."
"너 양다리야?"
"아, 진짜..."
"너,,"

강 형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신 형사가 불쑥 얼굴을 밀어 입을 맞췄다.

"이게 무슨..."
"풋, 귀여우셔라. 질투하시는 거예요?"
"아..아니거든?"
"그게 질투랍니다"
"씨, 너 나랑 사귀는 거야?"
"강 형사님이 유혹해보시라고 해서 제가 한창 유혹 중인거 아니었나요?"
".. 나 유혹에 넘어간 것 같아..."
"제가 공입니다?"
"공?"
"푸흐, 귀여워라"
"존댓말 써"
"네~"

이거, 한 형사님께 감사해야 하나?


-

태호는 서에서 빠져나가자마자 교도소로 향했다.

"한 재호, 보러왔습니다."

"또 뭡니까?"
"하아- 가인의 본 모습이 그럴줄은 몰랐다. 이거 고맙다고 해야할까"

담담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몇 년만에 마주본 형제는 말이 없었다.

"어떻ㄱ.."
"영상. 지켜보고 있었다, 준과 대화하는 것을"
"나..나는 그저 형이.."
"알고 있어, 고맙다."

그 한마디에 무너져버렸다. 담담한 척만 했던 아직은 어린아이.

"나, 준이랑 결혼할거야. 아이도 낳고 잘 살거야. 너 복역하고 나오면 우리 그때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내가 할말은 이거뿐이야."
"형... 늘 미안했어. 하지만 이게, 내 역할이니까"
"처음 니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죽여버리고 싶었어. 근데 준이 내 앞에 있으니까. 과거랑 관계없이 준이 지금 내 앞에 있으니까."
"날 용서하지마.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게 무슨...?"
"난, 주신의 종이자 모든 것을 알게 되어버렸어. 과거에도 형은 날 미워했고, 현재에도 형은 날 미워할거야. 그리고 미래에는, 원망하겠지"
"나, 나갈거야"
"과거에 형은 다 가진 사람이었어. 돈도, 황비도. 비록 허수아비 왕이었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형은 마왕을 소환했고, 마왕이 폭주해 왕국을 멸망시켰어. 종래에는 형의 아내까지 죽이려고 했어. 그런 형의 폭주를 막은 것은 사랑하는 황비의 죽음. 그리고 폭주를 멈춘 형은 자살해버렸지. 지극히도 슬픈 새드엔딩에, 그 업보가 현재까지 내려왔어. 미래에도 형은 시간여행을 한 죄로 또 다시 준의 영혼과 헤어질거야. 그래도 미래에는 해피엔딩이네"

눈을 감고 과거를 읊어주는 재호는 정말로 예언가 같았다.

"난, 간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태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호는 한마디했다.

"이번 생에도 해피네, 다행이다."

-

"형, 일찍 왔네?"
"준아, 이제 행복 할 일만 남았다"
"응?"
"과거 청산 끝, 한 달동안 신나게 놀자"
"뭐야, 곧 떠날 사람처럼..."
"신나게 놀고, 우리, 결혼하자"
"결혼? 벌써?"
"내꺼 불안해서 안되겠어."

쪽- 가볍게 볼에 뽀뽀한 태호가 으쌰- 하며 준을 안아올렸다.

"기쁜 기념으로 한판 뛸까?"

0
이번 화 신고 2017-01-25 15:05 | 조회 : 1,927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태호의 전생은 사실 차기작이었으나, 시간상 못할 것 같네요... 크흑...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